"결코 호사스런 덕담은 아니지만 내겐 호사품 이상의 향기를 품는다. 예쁜 인형을 갖는 호사 못지않게 귀한 것을 얻었다. 본질을 먼저 살피고 단순화해서 과장하지 말라는 언니의 충언, 내 삶에 지워지지 않는 일 점 호사로 간직하고 있다."
일 점 호사 - 박숙자
가끔 어린 시절의 꿈을 꿀 때가 있다. 자면서 꾸는 경우도 있지만 생시에도 곧잘 꾼다. 추억과 상상은 날개를 달고 몇십 년을 아우르다 금방 잡은 싱싱한 날것을 물어다 놓는다. 바로 어제 일처럼.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혼자 히죽이 웃는 사람을 보며 갸웃거렸던 때가 있었는데 그들도 아마 나처럼 긴 시간 여행을 하고 있었나 보다.
인형이 무척 갖고 싶은 때였으니 초등학생 때인가. 당시 우리 또래의 계집애들은 제각기 인형을 소유했다. 언니가 있는 동무가 단연 인기였다. 솜씨 좋은 언니들은 걸맞게 색색의 저고리, 치마를 자주 갈아입혔고 때론 원피스로 멋을 부려 줘 우리의 부러움을 한껏 샀다. 어려도 계집애들은 태생적으로 모성을 잉태하고 있었는지, 까만 무명실로 머리를 길게 땋은 헝겊인형을 마치 제 살붙이인 양 끼고 살았다.
헝겊인형이 없는 친구들은 종이인형을 만들기도 했지만 원조는 헝겊인형이었다. 나 또한 그런 욕심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종이인형보다 헝겊인형이 훨씬 낫지. 그즈음의 우리 집에서는 인형을 만들어 달라고 떼를 쓸 형편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반짇고리를 뒤져서 광목천과 몇 가지의 자투리 천을 손에 넣는 것으로 만족했으니까. 인형을 갖고 싶은 욕심에 방안이 어둑해진 것도 몰랐다. 손에 땀이 배여 끈적이면서도 미끈거렸던 바늘과 실과 헝겊의 숨바꼭질이 한 나절 내 이어졌다. 인형 만들기에 몰두했지만 쉽게 품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려놓은 본에 맞춰 어찌어찌 꿰매기는 했으나 한 판에 팔과 다리가 다 붙은 인형을 뒤집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솜을 넣는 작업은 시작도 못하고 뜯고 꿰매고, 뜯고 꿰매고…. 목도 아팠지만 귀가한 식구들의 웅성거림과 어질러진 방바닥은 더 이상 사용금지였고 인형 만들기는 한동안 중단되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갑갑함을 너머 몸살이 날 즈음, 언니가 살짝 귀띔을 한다. 몸판을 먼저 만들고 팔과 다리를 따로 만들어 붙이라고…. 듣고 보니 참으로 간단하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살면서 가끔 그때를 회상한다. 풀기 어려운, 때론 본의 아니게 일이 엉킬 때 인형 만들 때 들려준 언니의 말이 생각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살피면서 먼저 단순화하라고. 한 개씩 붙이거나 한 개씩 떼어내면 본질에 가장 가까이 가는 지름길인 걸. 기본을 놓치고 화려하게 덧댄 위장을 무기 삼아서로 흠집을 내고 상처를 입힌다. 본질을 외면하면서 해결점을 찾는다고 허둥대면 결국 화가 되는 것을 인형놀이가 끝나고도 한참이나 지난 뒤에 알았으니 참 부족했던 지난날이다.
마트에 온 김에 완구 코너를 둘러봤다. 여섯 살배기 손자녀석은 아직도 자동차 진열대를 빠져나오질 못하고 새 모델을 잘도 구분하며 할미의 눈치를 살핀다. 서너 살 때는 만지작거리다 품에 안더니 이제 철이 드나 카드를 긁어야 제 것이 된다는 것을 아는 눈치다. 나의 로망이었던 인형들도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노랑머리 파랑머리, 손안에 쏙 들어오는 바비인형부터 세 살배기 손녀딸만큼 커다란 인형이 손길을 기다린다. 할머니가 된 이 나이에도 인형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은 남았는지, 세세하게 살핀다. 그리고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목이 뻣뻣할 정도로 인형 만들기에 전념했던 생각이 난다. 그 기억은 생생한데 열정이 식었나, 마음대로 고를 수 있고, 한꺼번에 몇 개씩 얻을 수 있어 좋은데 망설인다. 내가 만든 헝겊인형은 내 분신처럼 익숙했는데, 진열대의 인형들은 나를 이방인처럼 내려다본다. 익숙하지 않음과, 산고를 겪지 않고 덥석 안긴 아기 같아 편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옷과 섬세하기 이를 데 없이 세련된 인형 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동심童心에서 갖고 싶었던 것이 어찌 인형뿐이었을까. 잘 깎은 색색의 연필도, 질 좋은 공책도 그 시절 우리에게는 다 갖고 싶은 호사품이었다. 제대로 바늘을 잡을 줄 모르면서 인형을 만든다고 천을 오리고 꿰매면서 가슴 졸였던 어린 날, 언니에게 들었던 조언이 삶을 동행한다. 결코 호사스런 덕담은 아니지만 내겐 호사품 이상의 향기를 품는다. 예쁜 인형을 갖는 호사 못지않게 귀한 것을 얻었다. 본질을 먼저 살피고 단순화해서 과장하지 말라는 언니의 충언, 내 삶에 지워지지 않는 일 점 호사로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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