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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월간 좋은수필 2018년 9월호, 신작수필23인선 I 무지 - 백남오

신아미디어 2019. 3. 21. 09:03

"무지는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공동체를 위해서도 반드시 벗어나야할 죄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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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           /    백남오

 

   나는 어렸을 때 뱀을 보면 무조건 때려서 죽였다. 어쩌다 놓치기라도 할 때면 풀숲까지 따라가서라도 잡아 죽여야만 했다. 그것은 당연했고 그래야 되는 것이라 여겼다. 그 흉측스런 물건은 인간을 해칠 뿐만 아니라 그 징그러움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햇볕이 화창한 어느 초여름 날, 어린 우리들은 형들과 함께 동구 밖 평평한 바위에서 뱀 죽이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수십 마리의 뱀을 죽여 한 무더기 모아놓고 또 다음 뱀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가끔은 어른들도 그곳을 지나갔지만 12간지 중의 뱀시에 해당되는 ‘사시巳時가 되어 온 동네 뱀들이 다 나오는구나’ 하면서 예사롭게 지나칠 뿐이었다.
   모내기가 막 끝나고 개구리소리 요란하던 그 여름 한나절이 내 유년의 풍경 속에는 생생하게 저장되어 있다. 그날 밤은 꿈속에서도 뱀과 싸우는 악몽을 꾸며 고함을 질러대기가 일쑤였다.
   뱀뿐만 아니다. 지게를 지고 가 산속에서 나무를 하다가 산짐승들을 만날 때가 허다했다. 산토끼를 비롯해 고라니, 노루새끼, 오소리, 너구리, 꿩 등이다. 이런 짐승들을 볼 때도 당연히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해코지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참새는 고무줄 새총을 가지고 다니며 보이는 대로 쏘았다. 하지만 이런 녀석들은 워낙 빠르고 날쌔어서 한번이라도 잡아본 기억은 없다. 집안에 돌아다니는 쥐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길고양이들은 당연히 그냥 두지를 않았다. 하다못해 큰 돌멩이라도 던져서 상처를 내거나 위협이라도 해야만 직성이 풀리었다.
   요즘은 벌레 한 마리 죽이는 것에도 주저하고 망설여진다. 그 생명 하나가 태어나기까지의 기다림과 시간의 의미를 생각해 보기 때문일까. 우리 집 뒤 ‘무학산’ 체육공원에는 주인들이 데리고 나온 강아지들이 저마다 재롱을 피우며 즐겁게 놀고 있다. 남의 집 애완견인데도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말을 걸기도 하고 함께 놀아주기도 한다. 모두가 개성이 있고 예쁘기만 하다. 어떤 녀석은 내게 덥석 안기기까지 한다. 전생에 무슨 업이 있어 강아지로 태어났으련만 이승의 업을 부지런히 닦는다면 저들도 언젠가는 사람으로 태어날 때도 있으리란 가당찮은 상상도 해본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람의 마음은 분명히 변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특별히 회갑을 지나면서 부터는 그 인생관이라는 것이 급격히 바뀌는 것만 같다. 그것은 심성의 본질이 변하는 것인지,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서 오는 변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지난가을 무학산 산책길에서 참 오랜만에 뱀을 만났다. 화들짝 놀라면서도 수만 겁의 인연을 타고 내려온 생명 하나가 무사하기를 기원했다. 가만가만 숲속으로 들어가는 긴 몸뚱아리가 추위와 바람에 무사히 겨울나기를 바라며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물러 서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 마구잡이로 여린 짐승들을 죽인 것은 결국 무지때문이란 생각이다. 아는 것이 없고, 미련하고 우악스러움 말이다. 생명의 소중함도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내게로 온 그 인연의 아름다움을 몰랐던 것이다. 이제는 미물의 생명이라도 함부로 죽이지 못함은 생명이 얼마나 큰 가치인가를 깨달았음이 아니겠는가.
   소년은 성장하면서 사랑을 배우고 인연의 중요성을 깨닫고 생명이야말로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가 없는 핵심 정수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리라. 모든 생명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며 나의 생명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임을 배우게 되었다.
   어린아이 한 명이 무지해도 그렇게 숫한 생명들을 희생시킬진대, 성인이라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짓밟을 것인가. 만약에 말이다.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무지하다면 그 구성원들의 자유와 인간적 존엄은 어찌할 것인가. 더 나아가서 무지한 통치자가 나라를 이끈다면 그 백성들은 얼마나 많은 편견 속에서 고통 받을 것인가. 그것도 약소국이 아니라 강대국의 수장이 미련하고 우악스러워 전쟁이라도 꿈꾸고 실현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고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비극적이고 참혹하다. 이미 동서고금을 통한 인류의 역사가 명백히 밝혀주고 있는 사실이지 않은가. 생명과 인간을 사랑하는 따뜻한 휴머니티 또한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임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배움이란 협소한 경험의 울타리를 벗어나 하나의 사물이나 현상이 맺고 있는 관계성을 깨닫는 일이라 했던가. 그 정의가 어찌되었건 배움이라는 것이 깨달음 자체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깨달음은 무지를 극복하고 현실을 통해서 실현시켜야만 하는 것이라 본다. 가령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악한 본성마저도 배움의 힘으로 억누르고 생명의 파괴를 막을 때 완성되는 것이라 믿는다.
   무지가 얼마나 무섭고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는가를 깨닫는 요즘이다. 그렇다고 나는 지금 세상의 이치를 모두 알았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모르는 것으로 인하여 또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사물들이 고통 받고 괴로워할 것인가를 통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끊임없이 사유하고 정의로운 진리를 깨우치는 일에 게을리해서는 안 될 이유다.
   무지는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공동체를 위해서도 반드시 벗어나야할 죄악이 아닐까 싶다.




백남오 님은 2004년 《서정시학》 수필, 2015년 《수필과 비평》 평론 등단. 작품집 《지리산 황금능선의 봄》(2쇄) 《지리산 빗점골의 가을》(3쇄) 《지리산 세석고원의 여름》, 《지리산 종석대의 종소리》, 경남대학교 수필교실 지도교수 겸 청년작가아카데미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