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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월간 좋은수필 2018년 7월호, 농촌에서 온 수필 I 참 다래 - 임혜숙

신아미디어 2019. 2. 19. 11:25

"꽃망울이 가지마다 제법 많이 달렸다. 때가 되면 늘 제가 알아서 할 일을 하는 자연의 세계가 그저 신기할 뿐이다. 꽃망울을 보면서 그래도 새로운 희망에 젖어본다."

 

 

 

 

 

   참 다래        /    임혜숙

 

   참 다래에 꽃망울이 맺혔다. 일 년 농사가 시작된 지 한참이다.
   지금은 풀과의 전쟁 중에 있다. 새파란 헤어리비치 풀이 점령한 참 다래밭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고행의 길이며, 풀과의 싸움에서 늘 패잔병의 신세가 되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다.
   풀들이 우세하여 영양분을 빼앗아가도 참 다래나무는 잘 자란다. 앙증맞게 튀어 올라온 꽃망울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급변하는 날씨에 적응하느라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참 다래 가지들은 바둑판 모양의 지주 위에 양팔 벌리듯이 간격을 두고 뻗어야 한다. 넝쿨성 과수로서 수정 시기에 맞추어, 위로 곧게 자란(도장지) 가지는 가차 없이 끊어 주어야 하고, 노지와 시설에 따라 수정 시기가 다르므로 잘 참고하여 시집을 보내야 한다. 노지보다 시설 하우스의 수정 시기가 일주일쯤은 빠르다.
   5월은 농번기로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 때문에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가 없다.
   참 다래 수정 시기가 시작되는 5월 초에서 5월 중순까지는 눈곱 뗄 시간도 없을 만큼 몸이 고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참 다래는 암수가 따로 있어서 수꽃 피는 시기가 암꽃 피는 시기보다 일주일쯤 빠르므로, 수꽃을 따서 수분할 수도 있으며, 그 전 해에 미리 저장해둔 수꽃 가루를 시, 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꽃가루 은행을 통해 발아율 검사를 무료로 받아 볼 수 있다. 한해 농사를 좌우하는 인공수정에 지장이 없도록 최선을 다 해야만 한다.
   매해 그랬듯이 올해도 우리 집은 협회를 통해 꽃가루를 사들였다. 필름 한 통에 팔만 원 하는 고가라 구입하는데 조금 부담은 가지만, 수정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는다.
   수정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우리 집은 물 수정을 한다. 증류수와 현탄액 그리고 속 성자 꽃가루를 혼합한 물 수정은 자가 수정보다 수정률은 낮지만, 시간과 인건비를 낮추는 효과가 있으므로 이 방법을 택하고 있다.
   농사는 기술이며 예술이라고 한다. 본인이 재배하는 작물에 대해 친근해야 하며 종류에 따라 접근성이 쉽고 파급효과도 커야 한다.
   참 다래는 종류가 여러 가지다. 그중에 내가 농사를 짓고 있는 종류는 ‘헤이워드’이다. 후숙 과일로 수확 후 저온 저장고에서 약 3개월간 섭씨 0도 시에서 습도 95% 이상 정도에서 보관한다. 당도 8브릭스가 되어야 수확할 수 있으며 11월 초가 수확하기 가장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어느 농사든 본인만의 기술과 비결이 있겠지만 나는 ‘내 자식이 먹는다.’ 라는 생각으로 억지로 키우려는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 크도록 조금 도와주는 일을 해 준다. 가지치기, 우분 퇴비 주기, 열매 솎기, 풀 작업 해주기 등,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놀이터라고 여기며 즐거운 마음으로, 작지만 실속 있는 참 다래 농사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 현재 8년이란 농사 이력을 지녔으며 큰 소득은 없으나 자부심만큼은 강하다. 참 다래 농사로 큰 이익을 얻으려는 생각은 버렸지만, 다년간 힘들여 가꾸어 놓은 밭을 보면 농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저 씁쓸함을 금할 수가 없다. 일 한 만큼의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 버거운 현실 때문일 터.
   내가 농사짓고 있는 참 다래 문제뿐만이 아니라, 지금 거주하고 있는 현지의 작물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한창 수확 중인 양파 역시도 제 가격을 받지 못해 갈아엎고 있으니, 참으로 슬프고 애석하다.
   미래가 불투명한 농촌이다. 농촌이 잘 사는 건강한 나라가 되어 청년들이 농촌에서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는 선진 농촌을 꿈꾸어 보지만, 정령 그 길은 멀기만 한 것인가!
   참 다래는 자조금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출하량과 출하 시기를 조율할 수가 있다. 우리 식탁에 날마다 쓰이고 있는 양념 채소 종류도 가격변동에 피해가 없도록 하루빨리 자조금 운영법이 이루어져 안정된 영농 정착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꽃망울이 가지마다 제법 많이 달렸다. 때가 되면 늘 제가 알아서 할 일을 하는 자연의 세계가 그저 신기할 뿐이다. 꽃망울을 보면서 그래도 새로운 희망에 젖어본다.

 

 


임혜숙 님은 고흥군 농업기술센터 토양검정실 근무.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