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순님의 창작동화를 소개합니다. 즐거운 감상되세요.
도깨비와 순사
공동묘지 근처에 도깨비들이 모여 사는 도깨비마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도깨비마을에 난데없이 아기무덤이 하나 둘씩이나 생겨
났습니다.
“왜 하필이면 이곳에 아기송장을 묻었지?”
졸병도깨비는 기분이 나빠 투덜댑니다.
“어때요. 우리와 함께 놀아줄 친구들인데요. 뭐.”
아기도깨비들은 언젠가는 아기송장들이 아기도깨비로 태어나
자기들과 친구가 될 것이라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연 사흘 동안 궂은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그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아기도깨비들은 입이 심심해서 군것질을 생각합니다.
“메밀묵이나 한 양푼 먹었으면 좋겠다.”
“그래, 나는 단간장에 찍어먹는 메밀묵의 맛이 기똥차게 좋더
라.”
“팥소를 넣어서 둥글게 하여, 번철에 지진 부꾸미 맛은 얼마나
맛이 있다고? 너 못 먹어 봤지?”
“나는 핏빛처럼 뻘건 팥죽은 싫어. 팥소도 싫어.”
도깨비들은 원래 말의 피를 제일 싫어합니다. 빨간 팥죽도 말
피의 빛깔과 같다고 해서, 아기도깨비들은 그것을 싫어합니다.
아기도깨비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하얀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아기무덤을 찾아왔습니다.
“애고애고, 불쌍한 내 새끼들, 비가 오는데 산속에 누워있다니?
애고애고, 불쌍한 내 새끼들!”
젊은 여자는 대뜸 아기무덤에 너부죽이 엎드려서 웁니다.
“애고애고, 내 새끼들, 못 입히고 못 먹이고, 헐벗고 굶주리고,
애고애고, 내 새끼들!”
여자는 가난에 쪼들려서 어린 자식들을 못 먹이고 헐벗겼다고
슬피 웁니다.
“애고애고, 우리 아기 금동이야, 옥동이야. 어미가 젖을 줄게 어
서어서 젖을 먹어라. 금동이야, 옥동이야. 어서어서 젖을 먹어라.”
젊은 여자는 풍선처럼 부푼 젖가슴을 내놓고, 두 손으로 꾹꾹
눌러 짭니다. 그러자 하얀 젖이 젖꼭지에서 퐁퐁 솟아납니다. 그는
그렇게 자기의 젖통을 한동안 눌러 짭니다.
“금동아 옥동아, 배가 부르지? 얼러리 얼러리 까꿍! 얼러리 얼러
리 까꾸-, 우리 아기 배부르지? 히히히 히히히 얼러리 얼러리 까
꿍!”
여자는 아기들이 젖을 먹어서 자기의 가슴이 시원하다고 젖가슴
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깔깔깔 웃어댑니다.
“저것 봐. 아까보다는 저 엄마의 젖통이 많이 홀쭉해졌지?”
“그래, 아까는 고무풍선처럼 부풀어서 터질 것만 같았었는데, 지
금은 훌쭉해졌구나.”
“그래, 퉁퉁한 가슴이 훌쭉해지니까 저렇게 좋아서 웃고 있잖
아?”
아기도깨비들은 나무 뒤에 숨어서 젊은 여자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그는 하얀 적삼을 벗어 아기무덤을 덮어
줍니다. 그리고 치마를 벗어 또 하나의 아기무덤에 덮어줍니다.
그래서 그는 속옷만 입고 있습니다.
여자는 그런 속옷 바람으로 무덤가를 뱅글뱅글 돌며 춤을 춥니
다. 궂은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그는 계속 춤을 추고 있습니다.
“치마 적삼 홀랑 벗고 은가락지 낀다더니, 저 여자가 대낮에 발
가벗고 왜 저러는 것이냐?”
졸병도깨비가 여자를 보고 비아냥거립니다.
“그렇게 비아냥거릴 일이 아니란다. 저 젊은 여자는 한꺼번에
두 아들을 잃고 실성을 했단다. 갑자기 미치광이가 되었단다.”
대장도깨비는 젊은 여자가 사랑하는 두 아들을 잃고, 머리에 이
상이 생겨 미치광이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왜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게 되었나요?”
아기도깨비들은 젊은 여자가 가엾고 불쌍하게 생각됩니다.
“호열자에 걸려 그렇게 되었단다.”
“호열자가 뭔데요?”
“콜레라라는 급성 전염병이란다.”
“우리가 그 콜레라를 이 도깨비방망이로 때려잡을 수는 없을까
요?”
아기도깨비 아도가 도깨비방망이를 치켜듭니다. 둘째인 아끼와
셋째인 아깨비도 정신장애자가 된 젊은 여자를 도와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아서라. 너희들 아기도깨비가 어떻게 콜레라를 때려잡겠다는
것이냐?”
그러나 아기도깨비들은 여자가 불쌍해서 도와주고 싶습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별들도 잠이 든 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앞뜰과 뒤뜰에는 아가 양도 잠자는데.”
여자는 너부죽이 엎드려 두 손으로 아기무덤을 다독다독하며 자
장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때 젊은 남자가 숲 속으로 달려왔습니다.
“여보, 여보. 이러지 말아요. 우리는 아직 젊지 않소?”
남자는 달아나려는 여자의 다리를 꽉 잡았습니다.
“우리가 젊으면 뭘 해? 당신은 벌레 먹은 물렁 감이야! 내가 발로
뻥 차면, 뚝 떨어지는 물렁 감이야!”
여자는 발로 남자의 가슴팍을 힘껏 찹니다. 그러자 남자는 여자
의 속곳 가랑이를 잡고 뒤로 벌러덩 넘어집니다.
“히히히, 히히히. 그 봐, 당신은 힘없이 떨어지는 물렁 감이지?
히히히, 히히히. 물렁 감이지.”
여자는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히히덕거리며 손뼉을 칩니다.
“그래 알았어. 나 벌레 먹은 물렁 감이야. 그런데 당신은 누가
보면 어쩌려고 벗고 있어요. 자자 옷을 입읍시다.”
“히히히, 볼 테면 보라지. 나는 탱탱한 땡감이니까. 히히히.”
“자, 어서 옷을 입고 이야기합시다. 당신은 정말 탱탱한 땡감이
야.”
남자는 여자를 살살 달래서 겨우겨우 옷을 입혔습니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갑시다. 여보, 그리고 두 번 다시 여기에
오지 말아요. 알겠지요?”
“싫어요. 여기에는 땡감처럼 당당한 놈들이 있는데, 왜 벌레 먹
은 물렁 감을 따라가요?”
“여보, 이러다가 당신까지 잘못되겠소. 여보, 정신 좀 차려요.”
“당신이 무슨 시인이라고? 히히히, 웃기지 말아요.”
“맞소. 나는 엉터리 시인이오. 아니 그냥 벌레 먹은 물렁 감이
오.”
“그런데 왜 그런 엉터리 시는 쓰는 것이오?”
땡감처럼 당당한 놈들이 없다.
땡감처럼 떫은 놈들이 없다.
“땡감처럼 당당한 놈들이 왜 없어요? 우리 금동이와 옥동이는
땡감보다 더 당당하고, 더 떫은 놈들이었는데, 애고애고, 헐벗기고
굶주리고, 애고애고.”
여자는 또 슬프게 웁니다.
“여보, 우리는 젊으니까 그렇게 당당하고 떫은 놈을 다시 낳읍
시다.”
“내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냐? 뚝딱하면 나오는 도깨비방망이냐?
이 벌레 먹은 물렁 감아!”
여자는 남자의 뺨을 힘껏 후려칩니다.
남자는 하는 수 없이 여자의 두 손목을 끄나풀로 비끄러맵니다.
“네가 순사냐? 왜 남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느냐?”
“여보, 여보. 정신 좀 차려요.”
“이 엉터리 시인아, 순사질 그만두고 엉터리 시나 써보아라. 나
처럼 이렇게 시를 써 보아라.”
돈 나와라 뚝딱 도깨비방망이
나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
그 꽁무니를 따라 다니는
물렁한 물렁 감을 나는 싫어한다.
여자는 자기가 정말 시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4행시를 지어 낭독
을 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4행시를 지었소? 참으로 신기하오.”
정말 모를 일입니다. 미치광이 정신병자가 시를 짓고 읊는다는
것은 너무나 신기한 일이라 남자는 어처구니가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 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것은 너야. 너는 남들과 똑같이
일본에 유학을 가서 같은 대학을 졸업했는데, 어떤 사람은 군수가
되어 ‘영감님’ 대우를 받는데, 너는 뭐냐? 엉터리 시인? 벌레 먹은
물렁 감? 히히히, 히히히.”
여자는 그렇게 푸념을 하다가 히득히득 웃습니다. 그는 그렇게
웃다가 결국 남자에게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비가 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아기무덤을 찾아왔습
니다. 그리고 그는 그 비가 다 그치고, 검은 구름이 걷혀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날은 공동묘지에 장사지내는 일이 있어서, 도깨비들은 하루
종일 마음이 답답하고 슬프게 지냈습니다. 더구나 오후에는 바람
까지 불어서 장지에서 쓰다 버린 흰 종이들이 이리저리 나부끼는
바람에 더욱 어수선합니다.
바람이 한 차례 지나가자,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저녁때, 그 젊은 여자가 아기무덤을 또, 찾아왔습니다.
“얘, 아도야, 저 여자가 오늘 밤에도 이 비를 몽땅 맞겠구나? 이
제는 가을비라 무척 춥겠지? 그런데 비를 안 맞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아깨비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도를 바라다봅니다.
“글쎄?”
“좋은 방법이 있다. 우리가 작은 초막을 지어 주면 되겠다.”
아끼가 요술방망이를 번쩍 들어 보입니다. 그것으로 뚝딱, 요술
을 한 번 부리면 초막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초막 하나 나와라. 뚝딱!”
아끼가 그렇게 방망이를 휘두르자 아기무덤 옆에는 조그만 초막
이 생겨났습니다. 사람들이 참게를 잡기 위해 개울가에 만들어 논
게막처럼 생긴 초막입니다.
그날 밤중이 되자, 비는 그치고 구름 사이로 달님이 가끔 얼굴을
내밀곤 합니다.
한편 군수영감 집에 초대를 받아, 술이며 기름진 음식들을 배가
터지도록 얻어먹은 일본순사 사이토가, 공동묘지 사이로 난 길로
걸어오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귀신은 없다. 조선 놈들은 귀신이 있다고 믿는데, 그
건 모두 미신이다. 뭐? 채알 귀신이 덮쳐 올 때는 혓바닥을 깨물어
피를 뿜으면 된다고? 하하하, 군수영감도 조선 사람이라 형편없는
놈, 놈? 놈은 아니고, 아무튼 조선 사람들은 미신만 믿는 미치광이
들이다.”
사이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습
니다.
“저게 뭐야? 하얀 소복 차림의 귀신이 춤을 추고 있잖아? 아니야,
아니야, 귀신은 없어.”
사이토는 옆구리에 찬 긴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얏! 돌격!”
사이토는 하얀 귀신을 향해 돌격했습니다. 그리고 귀신의 정면
을 칼로 내리쳤습니다.
“척!”
그런데 그것은 소복차림의 귀신이 아니라, 하얀 한지였습니다.
장사를 지낼 때 날아간 흰 한지가, 바람에 날려서 나뭇가지에 매달
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 이 세상에 귀신은 없어. 마음이 약한 조선 놈들은 이런
종이쪽을 보고도 귀신이 나왔다고 기겁을 하니까. 뭐? 달걀 귀신은
나막신 뒤축으로 으깨면 된다고? 하하하, 게다 굽으로 으깨면 더
좋겠지? 그런데 나막신과 게다? 조선 신과 일본 신? 그래 그놈의
군수영감의 몸에는 조선 놈의 피가 흐르고 있어. 조선 놈의 피가
흐르고 있단 말이다.”
사이토는 이를 부득부득 갈다가 또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하, 이상하다. 오늘 낮에까지도 이곳에 초막이 없었는데?”
이때 초막 안에서 귀신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애고애고, 금동아, 옥동아, 애고애고, 금동아, 옥동아.”
사이토는 또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초막을 향해 살금살
금 다가가고 있습니다.
“팽-, 팽-.”
그때 초막에서 하얀 옷을 입은 여자귀신이 밖으로 나와 코를 팽
하고 풉니다. 그것을 본 사이토는 뒤로 벌렁 넘어질 뻔했습니다.
그러나 사이토는 정신을 가다듬고, 칼을 높이 치켜들었습니다.
그때 긴 칼은 달빛에 반사되어 번쩍 빛났습니다. 그는 그 칼로 여
자귀신을 단칼에 벨 작정입니다.
“얍!”
사이토는 우렁찬 고함소리와 함께 칼을 힘껏 내리쳤습니다.
“쨍!”
그때 사이토의 칼날에 쨍하고, 쇠붙이와 부딪치는 소리가 났습
니다. 그 소리는 사이토의 칼과 졸병도깨비의 도깨비방망이가 맞
부딪치는 소리였습니다.
졸병도깨비는 사이토의 날카로운 칼을 도깨비방망이로 잽싸게
막아낸 것입니다.
“너는 또 뭐하는 놈이냐?”
사이토는 두세 걸음 뒤로 물러서며 소리칩니다.
“나는 이 마을에 사는 졸병도깨비, 졸깨비다. 그런데 너는 무슨
까닭으로 이 밤중에 칼을 뽑아들고, 우리 마을까지 쳐들어 왔느
냐?”
졸깨비도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졸깨빈지 허깨빈지? 이 순사나리께서 가시는 길을 감히 막아서
다니? 무례하구나! 졸깨비놈아, 길을 썩 비켜라.”
“못 비켜주겠다면?”
“그렇다면 이 칼로 너를 두 쪽으로 갈라놓겠다. 얍! 받아랏!”
“못 받겠다. 쨍! 쨍! 쨍!”
졸깨비는 번개같이 내리치는 사이토의 칼을 도깨비방망이로 요
리조리 잘도 받아냅니다.
졸깨비와 사이토는 그렇게 한참을 싸웠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승부는 나지를 않습니다.
“졸깨비 아저씨, 공격을 하세요. 공격을 하세요. 공격!”
아기도깨비들은 답답합니다. 사이토는 일방적으로 공격을 하는
데, 졸깨비는 공격을 할 수 있는 틈이 보이는데도, 언제나 방어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답답합니다.
“이놈들아, 어른들이 싸우고 있는데 애들이 끼어들면 못 쓴다.”
대장도깨비는 아기도깨비들을 마구 꾸짖습니다.
“싸움은 밤새도록 하여도 끝나지 않겠어요. 차라리 씨름을 해서
승부를 내세요.”
그렇게 꾸중을 듣고서도 아기도깨비들은 어른들 싸움판에 끼어
들어 소리치고 있습니다.
“씨름? 그거 좋겠다.”
사이토는 씨름을 하자고 얼른 덤벼듭니다. 그는 도깨비들의 다
리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씨름을 하자고 덤벼든
것입니다.
“만약 씨름을 해서 진다면 무엇을 주겠소? 내기를 합시다.”
내기를 좋아하는 졸깨비가 그런 말을 합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은 이 칼뿐이다. 내가 만일 진다면 이
칼을 주마. 그런데 네가 진다면 내게 무엇을 주겠느냐?”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금덩어리를 주겠소.”
순사와 졸깨비는 그렇게 약속을 하고, 씨름경기가 시작되었습니
다.
첫판에서는 1초도 못 넘기고, 졸깨비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
니다. 사이토는 호미걸이로 한 판을 쉽게 이겼습니다.
둘째 판도 사이토가 이겼습니다. 그리고 셋째 판은 졸깨비가 어
렵게 이겼지만, 넷째 판에서는 졸깨비가 뒤집기를 하려다가 다리
가 꼬여서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결국 1승 3패로 졸깨비가 지고
말았습니다.
졸깨비는 약속한 대로 사이토에게 금덩어리를 넘겨주었습니다.
대장도깨비는 억울했지만 다음을 생각하여 꾹 참았습니다.
“금덩어리가 생각나면, 또 씨름을 하러 오시오. 이번에는 내가
상대를 하리다. 그런데 비가 오는 날 밤이면 더욱 좋겠소.”
대장도깨비는 사이토에게 커다란 금덩어리 하나를 보여주며 그
렇게 말을 합니다.
“고맙다. 씨름은 얼마든지 해 줄 터이니, 금덩어리나 많이 준비
해놓고 기다리게나.”
사이토가 금덩어리를 들고 좋아하며, 도깨비마을을 떠난 뒤, 아
기도깨비들은 대장도깨비로부터 호되게 꾸중을 듣고 밖으로 쫓겨
났습니다.
들판으로 쫓겨난 아기도깨비들은, 도깨비불로 불장난을 하며 놀
고 있습니다. 이쪽에서 번쩍! 저쪽에서 번쩍! 번쩍, 번쩍, 번쩍. 온
들판에 도깨비불이 어지럽게 떠돌아다니며 춤을 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깨비는 움직이지 않는 불빛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
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곳으로 찾아갔습니다. 그건 개울가 게막
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었습니다.
아깨비는 틈새로 게막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게막에는 군수영감네 머슴이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머슴 옆
에 놓인 네모난 물통에는 참게 몇 마리가 물통 밖으로 기어 나오려
고 달가닥달가닥 소리내며, 바스락거리고 있습니다.
‘군수영감은 인정도 없는 사람인가 봐. 온종일 농사일을 한 머슴
에게, 참게를 잡아오도록 시키다니, 저렇게 밤잠을 못 자면 내일
농사일은 또, 어떻게 한다지? 옳지, 좋은 수가 있다.’
좋은 수를 찾아낸 아깨비는, 아도와 아끼를 그곳으로 불러 모았
습니다. 그들이 친구를 부르는 일은 참 쉽습니다. 도깨비불로 신호
를 하면, 금방 알아듣고, 달려옵니다.
“아도야, 아끼야, 너희들은 저 위쪽으로 가서 솔방울만 한 돌멩
이 백 개씩만 주워 와라.”
“돌멩이는 무엇에 쓰려고?”
“참게를 만들려고 그래.”
“참게?”
“응, 저 게막에 있는 군수영감네 머슴이 불쌍해서 그래.”
아도와 아끼가 개울 위쪽에 가서, 돌멩이 백 개씩을 주워 왔습
니다.
“돌멩이야, 돌멩이야, 참게가 되어라. 참게가 되어라. 뚝딱! 뚝
딱!”
아깨비가 도깨비방망이를 두드릴 때마다, 돌멩이들은 참게로 변
신을 합니다. 그리고 참게들은 소풍을 가는 어린이들처럼 한 줄로
나란히 서서 게막을 향해 기어갑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참게 떼가 줄줄이 몰려오는구나.”
졸고 있던 머슴은 눈을 화들짝 뜨고, 참게를 잡아 물통에 넣고
있습니다.
“바쁘다, 바쁘다. 정말 바쁘다.”
머슴이 한참동안 참게를 주워 담자, 어느새 큰 물통으로 참게가
하나 가득 찼습니다.
이제 물통이 넘쳐서 참게를 더 넣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놈들은
물통 밖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나갑니다. 그렇게 물통 밖으로 도망
치는 참게는 머슴이 초저녁에 잡은 진짜 참게들입니다.
“어유, 더 주워 담을 그릇이 없네.”
머슴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물통을 들어봅니다.
“참게가 왜 이렇게 무거울까? 돌멩이라도 주워 담았나?”
머슴은 무거워서 낑낑거리며 물통을 들고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야, 아깨비야! 머슴은 불쌍해서 도와준다고 쳐도, 군수영감까지
좋으라고 참게를 듬뿍 주는 것이니?”
아도와 아끼는 걱정이 대단합니다. 못된 군수영감에게 참게를
많이 잡아 준 사실을 만약에 대장도깨비가 안다면, 아기도깨비들
은 도깨비마을에서 영영 쫓겨날 것이라고 그렇게 걱정을 하고 있
습니다.
“걱정할 것 없어. 그 돌멩이 참게들은 내일 아침이면, 모두 다시
돌멩이로 돌아오고 말 거니까.”
아깨비가 그 돌멩이들에게 요술을 살짝 붙여서 몇 시간 동안만,
참게로 변신을 시켜 논 것입니다.
“아마, 군수영감은 지금쯤 물통으로 가득 찬 그 참게를 보며, 만
족해서 머슴을 칭찬하고 있겠지? 그러나 내일 아침에 일어나 보면,
물통도 참게도 간 곳이 없고, 그집 마당에는 돌멩이들만 한 삼태기
수북하게 쌓여 있겠지?”
아깨비는 얼마 뒤, 군수영감 집으로 숨어들어가 가짜 참게, 그
돌멩이들을 마당에 쏟아 놓고, 물통은 울 밖으로 멀리 집어던졌습
니다.
‘군수영감님, 내일 아침에 일어나 보면, 게도 그릇도 다 잃었다고
억울해 하시겠지요? 그러나 어디 그것이 당신이 노력해서 마련한
것들입니까? 다시는 게를 잡아오라고 머슴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그날은 아침부터 입동을 알리는 늦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
습니다.
울긋불긋한 단풍잎에 빗방울이 맺혀, 도깨비마을은 예쁜 그림처
럼 아름답게 보입니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자 젊은 여자는, 또 아기무덤을 찾아왔습니
다. 그는 초막에 들어가 저녁때가 될 때까지 그 속에 다소곳이 앉
아 있습니다.
‘저 여자가 오늘따라 왜 저렇게 얌전할까? 도깨비 들린 정신장애
자들은 날씨에 따라 변덕이 심하다더니?’
대장도깨비가 그런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사이토가 도깨비마을
로 찾아왔습니다. 그의 옆구리에 찬 긴 칼집이 철꺽철꺽 소리를
냅니다.
“어이, 도깨비상, 씨름 한판 할까?”
순사는 의기양양하여 대장도깨비의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옵니다.
“순사나리,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대로 돌아가셔야 하
겠습니다.”
대장도깨비는 기가 죽은 것처럼,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 이번에도 질 것이 뻔하니까 꾀병을 부리는 것인가?”
“꾀병이 아니라 오늘은 사정이 좀 있어서 그럽니다요.”
“꾀병이 아니라면 지난번에 가져간 금덩어리보다 세 배쯤 큰 것
으로 주면 내가 돌아가지. 이대로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순사는 기어이 금덩이를 갖고 가겠다고 떼를 쓰고 있습니다.
“씨름도 하지 않고 어떻게 금덩어리를 거저 내줍니까?”
“뭣이라고? 씨름은 하나마나 내가 이긴다. 바가야로(바보야), 금
덩어리나 내놓아라.”
사이토는 소리를 버럭버럭 지릅니다. 상대가 약하게 보이면 더
욱 사납게 달려드는 것이 그의 습성인 것 같습니다.
“사실은 씨름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사정이 있어서 그런다니
까요.”
“그 사정이란 것이 뭐야? 바가야로, 빨리빨리 말해 봣!”
“사실은 지금 우리 마을에는 도깨비들이 멀리 외출을 나간 까닭
에, 씨름경기의 심판을 봐줄 심판관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대장도깨비의 진짜 속마음은 아기도깨비들에게
자기의 멋진 씨름 묘기를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자기의 씨름 실력
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아기도깨비들이 없으니, 그렇게 뭉그적거
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따위 심판관이야 없으면 어때? 심판관이 꼭 필요하다면, 저
초막의 미친년을 불러오면 되겠네.”
순사가 이곳으로 오면서 보니까 초막에 미치광이 여자가 혼자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불쌍한 정신장애자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심
판을 봐달라고 합니까?”
“정신장애자고 뭐고 따질 것 없어. 어서 우리끼리 씨름을 하자.”
사이토가 그렇게 달라붙는 바람에 대장도깨비와 사이토는 서로
의 샅바를 거머쥐고 씨름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씨름판은 심판관도 없고, 더욱이 구경꾼도 없어서 싱거운
경기가 될 것만 같습니다. 다만 그들의 씨름경기를 초막에서 젊은
여자 혼자만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어라찻차, 뱅글뱅글 도려치기다. 어라찻차, 뱅글뱅글 어라찻
차!”
대장도깨비는 배지기로 사이토를 번쩍 들고는 뱅글뱅글 돌립니
다. 어지럽게 어지럽게 팽이처럼 마구마구 돌립니다.
“야, 잘한다. 우리 대장 잘한다. 돌려라, 돌려라. 미치도록 돌려
라. 뱅글뱅글 돌려라. 팽이처럼 돌려라. 우리 대장 잘한다.”
젊은 여자는 초막의 앞으로 나와서 손뼉을 짝짝 치며, 대장도깨
비가 이기라고 응원을 합니다.
대장도깨비는 여자의 응원소리를 듣고는 더욱 신바람이 났습니
다. 그런 그는 순사를 팽이처럼 돌려서, 세 판을 거듭거듭 이겼습
니다.
“야, 우리 대장 만세! 우리 대장이 이겼다. 우리 편이 이겼다.
만세! 만세! 만세! 세 판을 이겼다. 만세!”
여자는 두 팔을 번쩍번쩍 들며 거듭거듭 만세를 부릅니다.
대장도깨비의 돌려치기 도깨비씨름은 정말 멋진 묘기입니다. 그
가 사이토를 거듭거듭 메어다꽂자, 땅바닥으로 나가떨어진 사이토
는 술에 흠뻑 취한 사람처럼 한동안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한참 뒤, 사이토는 안간힘을 다 써서 일어나 보려고 합니다. 그
러나 그는 몇 걸음 걷지를 못하고 비틀비틀하다가 다시 쓰러지고
맙니다.
대장도깨비는 그렇게 쓰러져 있는 사이토의 입에 빨간 알약 하
나를 넣어줍니다. 그렇게 알약을 먹은 그는 기운이 되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자, 이제 그 칼이나 풀어놓고, 그만 댁으로 돌아가시오.”
대장도깨비가 씨름판은 끝이 났으니, 돌아가라고 점잖게 말을
합니다.
“이건 진짜 씨름이 아니야. 속임수야! 도깨비씨름은 엉터리야.”
사이토는 오히려 칼을 뽑아들고, 대장도깨비에게 달려듭니다.
“이런 못된 인간이 다 있나? 씨름에 졌으면 깨끗하게 물러갈 일
이지 칼을 빼어들다니? 너는 정말 비겁하구나.”
대장도깨비는 도깨비방망이로 사이토의 칼을 받아 쳐냅니다. 그
바람에 순사의 칼은 멀리 날아가 초막 앞에 떨어집니다.
순사의 칼을 젊은 여자가 주워들었습니다.
“이 미친년아, 그 칼을 이리 내놓아라. 그건 내 칼이다.”
사이토가 정말 미치광이처럼 소리를 버럭버럭 지릅니다.
“자, 그럼 칼을 받아보아라. 이것은 미친년의 칼침이다. 자, 미친
년의 칼침을 받아라.”
여자는 사이토를 향해 칼을 곤두세우고, 거센 바람처럼 달려듭
니다. 그는 곧 순사의 가슴팍이라도 찌를 것 같습니다.
“하이, 하이. 항복합니다. 목숨만 살려주세요. 하이, 하이. 목숨
만 살려주세요.”
사이토는 젊은 여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싹
싹 빕니다.
김영순 선생님은 -------------------------------------------------------
∙ 1934년 충남 서천군 한산에서 출생.
∙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 저서 : ≪늦동이≫, ≪고구려의 왕자≫, ≪우차꾼의 아들≫ 등.
∙ 현대아동문학상, 민족동화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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