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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수필과비평』[2018년 11월호, 통권205호 I 세상 마주보기] 새엄마, 헌 엄마 - 이용미

신아미디어 2019. 1. 2. 08:13

보호받는 어른으로, 보호하는 청장년으로 바뀐 역할이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것은 세월의 힘일까? “너희가 있어 이렇게 좋은 걸, 너희들이 있어 이렇게 든든하고 이렇게 힘이 나는 걸, 고맙다. 정말 고맙다.”라는 서른두 살 새엄마가 그리도 하고 싶던 말을 예순일곱 된 헌 엄마가 속으로 수없이 되풀이하고 있었다."







   새엄마, 헌 엄마     -    이용미


   난 TV 드라마를 무척 좋아한다. ‘아침부터? 유치하게…….’ 등 옆 사람이 온갖 소리를 해도 못 들은 척 빠져서 버스 타고 갈 곳도 택시를 타야 하거나 가끔은 약속 시각을 어기기도 한다. 20여 년 전인가 보다. 그때도 인기리에 방영되던 드라마 주인공인 새엄마 행보에 같이 울고 웃다가 행복한 결말로 끝이 난 뒤 한없이 운 기억이 있다. 그때 끼적여 놓은 것을 보니 “그 역을 맡았던 배우는 홀가분하게 털고 일어나 또 다른 역을 맡겠지만, 극이나 기삿거리처럼 극단적이지 않은 나의 새엄마 역할은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아직도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에 더 적극적인 딸, 해주었으면 하는 일을 외면하기 일쑤인 아들. 그네들을 극처럼 끌어안기엔 내 가슴의 넓이가 턱없이 모자란다. 더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아이들 앞에 앉혀놓고 “너희가 있어서 참 행복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며 내 운명이기도 한 새엄마.”라고 쓰여 있다.
   새엄마의 명칭인 계모는 동서양에서 권선징악이 주제가 되는 얘기의 주 모델. 어디 옛날얘기뿐인가. 실지 우리 역사의 인물 중에서도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 씨나 그 유명한 조선 중기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 윤씨 등은 대표적인 계모가 아니던가? 사람은 너나없이 선하기를 바라고 잘되기를 바라는 것 같지만, 내 일 아닌 남의 일은 꼬였다가 풀리고 다시 얽히는 갈등을 은근히 기대하는 본능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야기 속 계모는 악하면 악할수록, 전실 자식들은 너나없이 착하고 순할수록, 그리고 후처에 빠진 남편은 전실 자식에게는 무심할수록 손에 땀을 쥐고 듣거나 보는 것 아닐까. 다 지어낸 이야기라면 좋으련만, 현실에서도 다를 것 없이 학대받는 아이들 옆 잔인한 계모는 세기를 넘어 지금도 매체에 얘깃거리로 드물지 않게 전파되고 있으니. 그래서 흔히 친아들 딸한테라도 조금 소홀하거나 엄할 때면 ‘계모인 모양이지.’라는 말을 쉽게 하고 “계모 전실 딸 대하듯”이란 속담도 생겨난 모양이리라.
   전생의 원수가 이승에서 부부 연을 맺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이와 나는 어떤 악연의 원수였을까? 그런 원수가 선본 지 한 달 반 만에 결혼식을 올렸지만, 깨가 쏟아지는 신혼이 아니었다. 상처투성이 남편과 순수한 두 아이한테 상처 주지 않는 것이 첫째 임무인 새엄마 자리였다. 갸름하니 예쁜 얼굴의 딸애는 유치원 버스를 타고 시내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내내 멀미를 했었나 보다. 엄마가 집에서 기다리니 머리가 하나도 안 아프다며 존재를 확인하듯 수시로 내 옆을 맴돌며 방긋댔다. 웃으면 눈이 감기는 네 살 아들애는 신발을 일부러 바꿔 신는 듯 몇 번이고 내게 와서는 바로 신겨주기를 바라며 작은 두 팔을 있는 힘껏 벌려 엄마가 이만큼 좋다는 소리를 몇 번이고 했다. 엄마가 몹시도 그리워서 날 따르는 이 아이들과 난 전생에 무슨 인연이었을까?
   중학교 2학년 때였다.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홀가분함에 친구 경자네 집으로 우~ 몰려갔다. 아버지가 안 계시는 경자네 집엔 사람 좋은 어머니가 항상 손님을 끌고 계셨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그중에서 못 보던 아주머니 한 분과 눈이 마주쳤다. 웃는 것도 같고 쏘아보는 것도 같은 종잡을 수 없는 표정에 괜히 겁이 나서 얼른 시선을 피하는데 “피한다고 되나? 제일 잘 살겠어, 그런데 꼭 재취 자리야.” 밑도 끝도 없는 그 말에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손수건을 들고 있는 애라니 내가 분명한데 어째서 내게. 무슨 말일까? 내가 제일 못생겨서 그런가? 사춘기에 접어들어 외모에 무척 신경쓰던 시절 그렇게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부모 복에 남편 복, 자식 복도 많지만, 꼭 남의 자식을 거두어야 하는 팔자라고 했다는 말을 우연히 어머니에게 하자마자 다시 한번 그따위 소리를 했다가는 가만두지 않겠다는 싸늘한 표정과 협박에 입을 다문 뒤로는 다시 꺼낼 필요가 없었다.
   팔자였을까? 세월은 흘러 결혼 적령기가 되었지만 거듭된 선보기만으로 서른두 살이 되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골칫거리가 된 것 같은 나를 아무리 부인해도 누구 하나 인정해 주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 무렵 들어온 선 자리 중 아이 둘이 있는 남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옛날 그 눈빛 이상하던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떠올려 보면 그 후에도 비슷한 소리를 몇 번 더 들었던 것 같다. 누군가 내 손금을 보고는 그랬고 재미로 사주를 볼 때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냥 무시했을 뿐이다. 선을 본 사람은 운명이란 생각이 억울할 것 없이 지금껏 보아 온 어떤 사람보다 순수하고 진실했다. 다만 어머니의 아쉬움을 다독이기에는 무리였다. 팔자 도둑은 못 한다더니만 하필 좋을 것 없는 어미 팔자를 닮았느냐며 통곡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그러나 난 담담했다. 아버지와 50년 넘게 좋은 모습으로 해로하셨으며, 성질 못된 막내인 나보다 연배 비슷한 이복언니들과 훨씬 더 가깝게 지내는 듯 보이는 엄마의 삶이 그렇게 힘들거나 안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게다. 당연히 자신있게 시작한 결혼생활은 그러나, 어머니 말을 떠올리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중목욕탕에 가기엔 어중간한 늦여름이었다. 집 한쪽에는 불을 직접 때서 욕조 물을 데우는 욕실이 있었다. 좀 침침한 그곳에서 네 살배기 목욕을 시키는 중이었다. 갑자기 자지러질 듯 할머니를 부르는 아이의 소리에 이어 “누가 그랬냐?”는 좀체 서둘거나 큰소리를 내지 않는 시어머니의 분노에 찬 소리와 함께 욕실 문이 벌컥 열리고 나를 쏘아보는 눈과 마주쳤다.
   “…….”
   옆에서 귀뚜라미가 톡톡 뛰고 있고 아이는 그것을 가리켰다. 말없이 욕실문을 닫고 나가시는 시어머니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이는 급할 때 할머니를 찾았고 날 많이 위하는 것 같은 시어머니는 애가 놀라는 이유가 아니라 왜 놀라게 했느냐고 묻는……. 난 새엄마였다.
   그런저런 일들이 꼬이다 풀어지고 다시 꼬이기를 반복하며 큰 사건 사고없이 흐른 세월 어느새 40여 년이 가까워졌다. 이제는 싫은 것은 싫다고, 귀찮은 것은 귀찮다고 아무렇지 않게 호들갑을 떨며 얘기하는 닳을 대로 단 새엄마 아닌 헌 엄마가 되었다. 자랑하기보다 손때 묻어 편한 오래된 가구나 집기같이, 보여주기보다 활동하기 편한 헌 옷 같은 헌 엄마. 부딪치고 깨져 멍들고 곪은 상처 감추는 것에 급급했던 나는 누구였을까. 정보다 의무에 충실하며 일정한 거리를 두었던 젊은 날의 나, 새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계속 곁을 맴돌며 서운한 감정 내뿜다 감추고 다시 뿜어내는 사춘기 아이들은 어디로 숨었을까. 자신들의 진로도 바람도 알 것 없다는 듯 결정 뒤 통보로 일관하던 젊디젊던 아이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참고 참는 시늉하던 내 나이를 훌쩍 넘은 아이들은 이제 자칭 보호자가 되어 나이도 위치도 잊은 채 어리광부리는 헌 엄마로 만들어 버렸다.
   110년 만의 더위에 몸부림을 치던 날 친척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빠질 수만 있다면 빠지고픈 먼 곳 그 자리에 기꺼이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떨어져 사는 아이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어서다.
   보호받는 어른으로, 보호하는 청장년으로 바뀐 역할이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것은 세월의 힘일까? “너희가 있어 이렇게 좋은 걸, 너희들이 있어 이렇게 든든하고 이렇게 힘이 나는 걸, 고맙다. 정말 고맙다.”라는 서른두 살 새엄마가 그리도 하고 싶던 말을 예순일곱 된 헌 엄마가 속으로 수없이 되풀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