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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수필과비평』[2018년 09월호, 통권203호 I 지상에서 길찾기] 오스테오스퍼멈 - 차은혜

신아미디어 2018. 11. 14. 13:58

오스테오스퍼멈이라도 심어 순수한 꽃밭을 만들어야겠다. 초롱꽃이 욕심을 부리면 살살 달래가면서 함께 살아보자고 이야기해주면 들어주겠지. 하얀 꽃과 진자줏빛 꽃이 곱다."







   오스테오스퍼멈    -    차은혜


   꽃이 선명하고 뚜렷하여 번식시켜 보려 애쓰던 꽃이 있었다. 디모르포테카. 일명 아프리카 금잔화라고도 한다. 본래 이것은 한해살이와 두해살이, 그리고 여러해살이로 삶의 모습이 다양한데 그중 여러해살이만을 오스테오스퍼멈이라 한다. 청초하게 피어 있는 꽃이 예뻐 많이 번식시켜 놓고 완상하고 싶었다. 여러 화원을 들락거리며 모종을 찾아보았으나 오스테오스퍼멈은 만나지 못하였다. 그리곤 한동안 잊었다.
   하루는 자연석과 영산홍이 뒤섞인 틈새에서 하얀 꽃이 올라온 것을 발견했다. 목을 길게 빼고 도도한 모습으로 제 자태를 뽐내는 꽃. 오스테오스퍼멈이다. 전에 몇 포기 심었다가 모두 죽고, 받아 놓았다가 파종한 씨앗은 발아가 되지 않았다. 이 꽃이 아직 살아 있었다니,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 열악한 환경인 돌 틈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고 꽃을 피워낼 수 있었을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중한 꽃을 넓고 좋은 자리를 마련해 옮겨 주었다. 화단 앞자리, 땅이 가장 비옥하고 물 주기가 수월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름 VIP석으로 모신 것이다. 그런데 나의 정성과 배려가 불편한지 싱싱하질 못하고 시들어간다. 비옥하고 물기도 많으니 잘 자라겠다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오스테오스퍼멈은 시들시들해지더니 마침내 죽고 말았다. 원인 규명을 위해 캐어보니 뿌리가 썩었다. 강한 산성과 지나친 습기를 싫어해 물이 많지 않은 곳에서 잘 자란다는 사실을 죽이고 나서야 알아냈다. 원산지가 남아프리카이니 물을 좋아할 리가 없지 않는가. 몰지각한 나의 배려가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꽃에게도 각자의 생존방법이 있는데 그걸 미처 깨닫지 못하고 내 방식으로 키우려다 죽였다.
   화단에 초롱꽃을 얻어다 심은 적이 있다. 긴 줄기에 초롱초롱 종이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꽃에 반해 사정해서 얻어왔다. 서너 달이 지나니 온통 초롱꽃 밭이 되어 버렸다. 이토록 번식력이 강하리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자기만의 영역을 넘어 잔디밭까지 점령해 간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정리를 해야 했다. 누군가는 노래를 불러주며 속삭여 준다는데, 나는 종일 초롱꽃 뿌리를 캐어내며 진저리를 치고 있다. 자그만 공간이라도 있으면 휘젓고 들어와 뿌리를 내리는 억척스러움이 대단하다고 찬사를 보내다가도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대로 두면 나머지 꽃들의 자리까지 빼앗아 버릴 것만 같다. 초롱꽃은 뿌리를 끝없이 뻗어 나무의 틈 사이도 비집고 보란 듯이 얼굴을 내민다. 대단한 번식력이다. 가장자리에 넘지 말라고 벽돌로 가두어 놓았는데도 비웃듯이 뛰어넘어 잔디밭까지 침범한다.
   그냥 두었다가는 손을 쓸 수 없을 것 같아 덜컥 겁이 났다. 과감하게 정리를 하려고 호미를 들었다. 쉽게 처리할 것 같았지만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이리저리 뻗어 있는 뿌리들을 잡아 끌어올린다. 나오지 않으려 버둥대던 녀석이 뿌리를 뚝 잘라내고 흙속에 숨어 버린다. 마치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도마뱀 같다. 어쩔 수 없이 화분에 담아 세상과 격리시켜 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허사다. 어느 틈에 기어나와 진을 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열악하기 그지없는 환경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는 오스테오스퍼멈. 이 꽃을 내가 키우고 싶은 욕망이 일어선 것은 어쩜 척박한 땅을 좋아한다는 사실 때문이었지 싶다. 자신의 처지를 주위와 비교해 보고 늘 시기의 눈으로 이웃을 넘보는 세태에 이런 꽃이 있다니…. 전혀 남의 자리를 탐하거나 시기하지 않는 꽃, 오스테오스퍼멈.
   북극 땅 시베리아를 방영하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1년 중 7개월이 영하 60도를 오르내리는 겨울이고, 나머지 5개월은 스치듯 지나가는 봄과 여름이다. 꽁꽁 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세계에서 모기가 가장 많다는 그곳의 열악한 생활환경. 한 번도 접해 보지 않은 그들의 생활상을 바라보면서 나는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데에 감사해야 했다. 좋은 환경에서도 늘 만족하지 못하고 사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1년 내내 집시처럼 이동하는 떠돌이 야외생활이지만 미소는 언제나 해맑고 아름답다.
   이제 그곳 사람들도 자식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교육에 힘쓴다. 그러나 아이들 중에는 모두가 생소한 것들뿐이어서 적응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드넓은 초원을 야생마처럼 뛰놀며 살았을 그들. 틀에 박힌 삶의 모습을 받아들이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의 정원에는 여러 가지의 꽃들이 함께 살고 있다. 시베리아의 아이들처럼 씩씩하게 겨울을 이겨내는 동백꽃도 있고,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 초롱꽃도 건재하다. 꽃과 향기 어느 것 하나 빠지지는 않으나 가시가 있어 다가가기 쉽지 않은 장미. 혹시나 뱀의 침입을 막아주지 않을까 해서 심어 놓은 골든베리. 남을 배려하며 자신의 존재를 재인식시켜 주는 오스테오스퍼멈. 모두 제자리를 지키며 살고 있다.
   이처럼 식물도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사는 방법을 터득하여 살아가는데 하물며 인간은 어떤가. 다양한 동식물처럼 삶의 방식도 다양하고 성격 또한 다르다. 자신만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 남을 해하는 사람, 욕심이 배 밖으로 나와 있는 사람. 남의 것을 제것으로 착각하여 탐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만이 산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그들 속에서도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기에 아직 우린 살 만한 것이 아닐까.
   척박한 땅만 골라 사는 오스테오스퍼멈을 바라보는 순간, 동토의 땅 시베리아에서 밝은 웃음으로 내게 다가서던 그 건강한 아이들이 보고 싶다. 인터넷에서 아이들을 찾는다. 아직도 아이들은 전의 그 밝은 웃음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 아이들이 내 품에 와서 순수한 이야기만 나누며 어우러져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들은 내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 뻔하다. 내 삶터는 너무 비옥하니까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겠지. 오스테오스퍼멈이라도 심어 순수한 꽃밭을 만들어야겠다. 초롱꽃이 욕심을 부리면 살살 달래가면서 함께 살아보자고 이야기해주면 들어주겠지. 하얀 꽃과 진자줏빛 꽃이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