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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월간 좋은수필 2018년 1월호, 신작수필 22인선 I 호미 - 임동옥

신아미디어 2018. 11. 10. 19:38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았던 그 호미가 아마존 농기구 코너의 인기상품이란 사실이 새삼 반가운 이유가 그 때문은 아니었을지."

 

 

 

 

 

   호미         /    임동옥

 

   ‘Korean Ho-Mi.’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이 도구로 당신의 정원을 쉽게 꾸미세요. 땅을 파서 골을 내고 흙을 평평하게 고르고, 잡초를 제거할 때 쓸 수 있습니다. 동양에서 사용하는 이 특이한 도구는 삽이자 모종삽이고 제초기이며 또 수확하는 도구입니다.”
   ‘아마존’ 농기구 코너에 있는 ‘한국산 호미’에 관한 광고다. 꽤 인기 상품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마루 밑에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호미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외양간 옆에 삽과 괭이와 함께 논을 매는 커다란 남성용 논 호미도 걸려 있었다. 지금은 제초제 사용으로 논 호미는 사라졌고 밭을 매는 호미만 남아있다. 대학원 다닐 때 노화도 철물점에서 길쭉하니 폭이 좁고 뾰쪽한 호미를 처음 보았다. 식물 채집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하여 호미 한 자루를 샀다. 전에 사용한 모종삽은 모양은 멋진데 식물채집을 하다가 목이 휘거나 부러지는 일이 많았다. 이 날씬한 호미는 삼십여 년을 나와 동행하면서 목 부러지는 일 없이 온전하게 표본을 채취해 주었다.
   호미는 대장간에서 쇳물을 녹여 만든다. 대장장이는 쇠를 달구어 망치로 수없이 두드려서 펴고 또 달구어 삼각형으로 모양을 낸 핸드메이드이지만 그 모양이 한결같다. 이들은 설계도면도 없이 호미를 인체공학적으로 만든다. 호미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땅을 파는 직삼각형인 날과, 그 삼각형 한 끝점에서 휘어 꼬부라진 가냘픈 목과, 그 끝에 둥근 나무토막을 박아놓은 손잡이로 되어 있다. 날을 땅에 꽂으면 목과 자루는 약간 구부정하여 할머니 등처럼 휘어 있다. 그 길이는 약 30cm 정도이고 무게는 300g정도이다. 참 잘 만들었다.
   호미와 비슷한 괭이는 기다란 날과 짧은 자라목에 긴 나무자루를 끼워 놓았다. 괭이는 흙을 깊이 팔 수 있으나 땅속의 돌을 찍으면 충격이 온몸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반면 호미 날은 얇고 가볍지만 자갈밭에서도 부러지거나 휘어지지 않고 밭을 맬 수 있다. 날이 낫처럼 너비에 비해 길이가 길며 그 끝이 날카로워 자갈 등의 저항물이 많은 데에서 쓰기 편리하다. 호미 목은 비틀어 휘어져 있어 밭 맬 때 충격이 손이나 어깨에 전달되지 않는다. 모든 충격은 호리낭창한 호미 목에서 모두 흡수하는 구조다. 또한 전체 길이가 짧아서 한손으로 작물을 잡고 잡풀을 제거하거나 밭을 맬 수 있어 작물이 다치지 않아서 좋다. 모종某種이 밴 곳에서 성긴 곳으로 옮겨 심을 수 있는 도구도 호미다.
   호미는 안압지에서 출토된 걸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이용되었고 고려시대의 호미는 오늘날의 호미와 똑같은 모양이어서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한 우리의 전통 농기구다. 시인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을 사슴이라고 하였듯이 어머니는 모가지가 가냘파서 사랑스런 호미라고 하였는지 모른다. 슬픈 전설 같은 어머니의 호미는 연명의 호미요. 풍요를 불러준 호미였다. 호미로 고추밭이나 콩밭의 잡풀을 매거나 들깨모종을 옮겨 심기도하고 고구마나 감자를 캐기도 하였다. 살면서 몇 자루의 호미를 사용하였을 테지만 어머니의 허리에는 파스를 붙여 드린 기억은 있어도 손목에는 파스를 붙여드리진 않았다. 비틀어 꼬부라진 호미 목의 탄력 덕분이었던지 어머니의 팔목은 아프지도 않은 채 평생을 호미로 밭이랑을 타고 넘으셨던 것이다. 황규관은 ‘호미’라는 시에 ‘인간은 모두 호미의 자식들이다. 풀을 매고 흙덩이를 쪼개고 뿌리에 바람의 길을 내주는 호미는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다.’라고 하였다. 맞다. 기계화된 시대에도 여전히 호미는 건재하니까.
   현대인들은 불치병에 걸리면 많은 이들이 산속으로 스며들곤 한다. 바로 ‘자연인’이 된다는 의미다. 그들은 날마다 홀로 산을 헤집고 다니면서 먹을거리를 찾고 움막 곁에 텃밭을 일구며 호미로 김을 매며 살아간다. 이렇게 자연인은 호미를 통해 자연과 공감하고 생명의 신비를 일깨우면서 행복한 마음 부자로 살아간다. 손수 일군 무공해 먹을거리를 먹음으로서 병든 몸은 회복탄력성을 되찾아 건강하게 된다. 산중 생활에서 호미는 흙과 나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므로 자연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도구가 된다.
   어머니의 호미는 작물을 키웠고 나의 호미는 30여 년 동안 식물채집을 해 준 명기다. 완성된 표본의 종을 동정하면서 풀 한포기도 지구촌의 한 구성원이라는 생명존중 사상을 갖게 되었다. 인간이 신의 대리인으로서 자연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일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자연조화문화 철학을 마음에 새겨준 것도 호미다.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았던 그 호미가 아마존 농기구 코너의 인기상품이란 사실이 새삼 반가운 이유가 그 때문은 아니었을지.




⁕ 임동옥 님은 수필가. 2001년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수필집: 『계룡산의 아침 이슬은 약이 될까』, 『게들의 잔치』, 『꿈꾸는 굴렁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