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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좋은수필 2018년 1월호, 신작수필 22인선] 고속도로 - 강여울

신아미디어 2018. 10. 26. 10:41

"엄마와 나는 자신의 상처로 인해 애증의 강이 더 깊었다. 모녀 사이 오랫동안의 냉기류는 삶에 지쳐 순간 진입을 잘못 한 고속도로였다. 다시 올 새 봄을 그리며 나들목을 통과해 다시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집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속력을 높였다."

 

 

 

 

 

   고속도로        /  강여울

 

   이미 늦었다. 대전 방향으로 진입을 한 이상 무조건 달려야한다. 가장 가까운 나들목에서 방향을 돌린다 해도 포항까지 약속시간 안에 도착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조급해졌다. 곧장 가도 빠듯한 시간인데 반대쪽으로 질주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수년 전에 남편이 서대구 나들목을 지나치는 바람에 왜관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야 했을 때 배를 잡고 웃었다. 내가 비슷한 실수를 하고 보니 무척이나 난감했다. 고속도로가 고속 도로가 아니었다.


   고속도로는 한 번 들어서면 이유 불문하고 흐름을 따라 앞으로 가야 한다. 휴게소나 졸음 쉼터에서 잠시 쉴 수는 있을지언정 유턴이나 후진은 있을 수 없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이 아닐지라도 방향 전환이 가능한 나들목까지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오로지 앞으로만 가야하고 사람은 다닐 수는 없는 길이다. 이렇게 한 번 고생을 하고부터는 고속도로 진입을 할 때마다 신경을 쓴다. 날씨가 추워져 고속도로를 타고 친정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라는 말이 나에게는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점이 될 때가 많다. 보통 엄마는 그립고 따뜻해서 애틋한 이름이지만 나에겐 상처를 들쑤시는 아픔으로 먼저 다가온다. 생각해보면 엄마로 인해 내가 행복했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싶다. 어쩌다 엄마 꿈을 꾸는 날은 몸이 아프거나 종일 기분이 우울할 정도다. 정작 남이 아는 엄마는 수줍음 많고, 양심이 곱고 경우가 바른 착한 사람이다. 이웃에게 인정 많은 엄마에게 나는 참 인정머리 없는 딸년이다.


   엄마를 보러 가서 기분 좋게 돌아선 게 언제였던가 싶다.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나고부터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기를 붙들고 울었다. 당시 치매인 시아버지와 당신 몸도 스스로 씻지 않는 시어머님을 모시고, 서른 명의 고시원생 밥을 해 먹여야하는 그야말로 내 사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때였다. 직업도 없이 사고를 치면서도 닦달하는 남편도 나의 십자가였던 시기다. 지친 내게 엄마의 전화는 또 다른 짐처럼 일일이 대답을 하기도 힘겨웠다.
   보다 못한 남편이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가만히 놔둬도 힘든 사람 왜 자꾸 전화해서 보태는 겁니까. 어릴 때도 잘해주지 못했다면서요. 전화로 그만 괴롭히세요.” 그 이후로 엄마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인간은 원래 거두는 게 아니라며 호적을 파 가라고 했다. 십 년 넘게 찾아 갈 때마다 등만 보고 와야 했다. 그래도 묵묵히 찾아갔고 엄마의 눈물도 조금씩 줄었다. 나와 남편에 대한 원망과 신세타령만큼은 여전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도 가슴을 치며 후회해. 엄마가 아파서 죽겠다니까. 대구에서는 그래도 그 병원이 항문수술을 젤 잘한다고 소문이 나서 고쳐주려고 오라고 했던 거고.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 없이 수술 잘 되었다는데 엄마는 수술이 잘못되어 계속 아프다 하고, 정말이지 왜 내가 엄마에게 치질수술을 하게 했나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고. 나도 엄마한테 잘하고 싶어. 그때는 말은 안했지만 내 사는 게 너무 힘들었어. 이제라도 엄마한테 신경 좀 더 쓰고 잘하려고 해.”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여. 누가 들으면 싸우러 온 줄 알겠다.”
   “앞으로 잘하면 되잖아. 내년 엄마 생일 때 나도 경로당 어르신들께 대접 한 번 할게.”
   “고만 시끄러와, 누가 해달라 했어.”
   “엄마가 부러워하니까. 이제는 나도 그렇게 해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거야.”


   “벌써 점심때가 다 됐네. 밥은 해 놓은 거 있으니까. 네가 가져온 반찬하고 그냥 먹으면 되겠다. 밥 먹자. 뭣 하러 이래 많이 가져 왔노. 밥이라고 약 때문에 억지로 먹긴 한다만 입맛이 없어 맛을 하나도 몰라여. 젊어서는 없어도 우째 그리도 없는지. 먹고 싶어도 없어서 못 먹고, 삼사십 대는 먹을 게 있어도 내일 생각하느라 못 먹고, 이제는 맘껏 먹으려고 해도 입맛이 없어 못 먹어여. 너도 이제 몸 생각하고, 입맛 살아 있을 때 먹고 싶은 것 먹고 살아라.”


   점심을 먹고 모녀가 이불 속에 발을 넣고 앉아 또 한참을 토닥토닥하다가 일어섰다. 아쉬운 듯 엄마는 나보다 당신이 훨씬 더 불쌍하다는 말을 거듭하며 다음부터는 빈 손으로 오라고 했다. 엄마와 나는 자신의 상처로 인해 애증의 강이 더 깊었다. 모녀 사이 오랫동안의 냉기류는 삶에 지쳐 순간 진입을 잘못 한 고속도로였다. 다시 올 새 봄을 그리며 나들목을 통과해 다시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집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속력을 높였다.



⁕ 강여울 님은 수필가. ≪대구문학≫, ≪월간문학≫ 등단. 수필세계 편집장, 달서구보 편집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