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을 때 아버지의 눈 속엔 늘 돛단배가 있었다. 고향을 떠나오던 날 지켜본 아버지의 눈빛에는 파도가 일었다. 어린 딸을 타지로 보내는 심정이 물살에 밀려 떠도는 쓸쓸한 돛단배로 보였는지, 아버지는 그날 밤 낚싯대를 챙겨 들고 다시 밤바다로 나갔다. 수평선 끝에서 물결이 촘촘히 내게 온다. 가슴속을 우려낸 검은 파도가 처연히 부서지고 있다."
갈망바다의 언덕 - 김미자
가끔 밤바다에 나간다. 기분이 들뜬 날보다 지난 시간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무엇 하나를 확 내던지고 싶을 때 밤바다로 나간다. 송정이나 간절곶 어디라도 속을 온전히 내보이고 싶은 곳이면 혼자 나간다. 늘 그곳에서는 파도가 기억처럼 밀려와 처연히 부서지곤 한다.
한낮 열기로 더워진 우물가 블록담이 후끈거렸다. 여름 태양은 몰래 숨어들 적병을 탐색하는 서치라이트의 불빛처럼 앞산마루에 반쯤 걸친 채 사정없이 열기를 분출하고 있었다. 그래도 저녁이 밀려오면 기승을 부리던 폭염은 토담 아래 봉숭아 꽃밭에 노을을 깔았다.
그때도 한여름이었다. 온종일 뛰놀다 집에 들어온 어느 날 나는 우물가 담벼락에 바싹 붙어있는 한 아이의 눈과 마주쳤다. 눈망울이 새털구름처럼 맑은 내 또래 사내아이였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꼼짝도 않는 그애 주변을 서성거렸다. 초면에도 왠지 낯이 익은 아이의 얼굴이 벌건 노을로 물들고 있었다.
엄마는 칼국수를 준비할 참이었다. 더위를 피해 마당 한 귀퉁이에 내건 커다란 양은솥에선 칼칼한 국물이 참지 못한 울분처럼 끓어올랐다. 별이 하나 둘 또렷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멍석이 깔린 마당 한가운데 식구들이 빙 둘러앉았다. 누군가 섣불리 말을 꺼냈다간 뜨거운 국수 대접이 마당 여기저기 내던져질 듯 엄마는 입을 꽉 다물고 아버지는 아예 눈까지 내리깔았다. 평소와 달리 국숫발을 제대로 입에 넣지 못하던 엄마가 벌떡 일어나 여전히 담벼락에 앉아 있는 그 애의 손목을 질질 끌다시피 잡고 들어왔다. 아이는 들어오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다. 당기는 힘과 잡아 빼는 힘이 오뉴월 엿가락처럼 사정없이 엉키고 있었다.
아이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식구들은 못 본 척 칼국수가락만 입속으로 말아 넣고 있었다. 평소라면 몇 번이나 더 먹었을 조갯살 칼국수였건만 먹는 둥 마는 둥 오빠들은 대문 밖으로, 언니들은 부엌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는 언제 텃밭으로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먹다 남긴 칼국수가 엄마의 터진 속처럼 그릇마다 퉁퉁 불어있었다. 홀로 남겨진 나는 벌겋게 달아오른 엄마 턱밑에 바싹 다가앉아 “이 애가 누군디.” 그러냐며 울상이 되어 물었다.
“니 오빠란다. 오빠.”
위 두 오빠들은 막 밖으로 나갔는데 오빠라니. 엄마는 국수 안 먹을 테면 당장 서울 어미한테 가라고 고함을 쳤다. 철수라는 아이는 아버지가 밖에서 본 아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물때를 이용해 밤낚시를 즐기곤 했지만 아버지는 불구의 몸이 된 후 바다를 멀리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밤만 되면 칠흑 같은 갈망 밤바다로 나갔다. 갈망은 풍요를 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염원과 꿈이 담긴 이름이었다. 아버지는 꽃게 잡을 때 사용하던 횃불을 챙겨들고 황혼이 깔릴 즈음이면 슬며시 집을 나가 갈망 바다로 가는 언덕을 넘으셨다.
철수는 아버지의 휘어진 등뼈를 푹신하게 받쳐주던 삼단 요를 차지하고 잠을 잤다. 엄마는 마치 내가 잠들었을 때처럼 철수를 빤히 내려다보며 “꼭 지에밀 닮았구먼. 허기사 새끼가 무슨 죄것어.”라고 중얼거렸다. 날이 지날수록 엄마의 한숨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오밤중만큼이나 무겁게 내려앉았다.
철수가 오기 전에는 종종 밤바다에 나갔다 돌아오는 아버지의 대바구니 속에는 도톰한 우럭 새끼들이 아가미를 뻐끔거리고 있었다. 그런 다음날 아침상에는 뻘겋게 끓인 매운탕이 예외 없이 올랐다. 엄마는 아버지가 잡은 우럭으로 가족들의 배를 따뜻하게 채워주셨다. 철수가 온 후에는 아버지가 우럭을 잡아와도 매운탕이 더 이상 밥상에 오르지 않았다. 엄마는 잡아온 생선을 우물가에 내동댕이쳤다. 썩은 냄새가 풍겨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단연코 매운탕을 끓이지 않겠다는 결연한 표정이 얼굴에 박혀 있었다.
엄마는 곱상하고 단아했다. 함부로 말을 하기는커녕 악닥구를 쓰는 것도 듣지 못했다. 나는 툭 하면 소리를 지르고 성을 잘 낸다.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을 뒤집으려 하는 듯 변덕스럽고 다혈질이다. 얼굴은 아버지를 빼닮았지만 성질은 엄마를 닮았다며 동네사람이 그랬다. 아버지가 밖으로 나돌던 그때, 봉숭아 연정 같던 엄마의 마음이 태풍을 만난 나무처럼 뿌리째 뽑혀 널브러진 것이다. 엄마는 나를 뱃속에 넣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태교를 한 셈이다. 한 살 차이로 철수를 본 아버지에 대한 분을 삭이지 못한 엄마는 열 달 동안이나 애꿎은 내게 닥달한 것이다.
철수는 열두 살이 되던 해 여름, 함께 보낸 5년간의 세월만 남기고 서울로 떠나버렸다. 그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철수를 오빠로 부르지 않았다. 내가 철수를 오빠라 부르는 것은 고꾸라질 듯 위태로운 엄마를 배신하는 범죄라 여겼다. 산나리 꽃줄기처럼 호리낭창한 엄마가 수시로 금속성 고성을 내며 변해 가는 것이 무서웠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는 더 일찍이 밤바다로 나갔다.
바다에 어둠이 내리면 온천지가 암흑이 된다. 심심찮게 오가던 똑딱선도, 물고기를 찾는 물새도,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도 꼼짝없이 어둠에 갇히고 만다. 어쩌다 수평선 위에서 깜빡이는 고기잡이배 불빛이 실낱같은 생명을 전해주지만 밤바다에 주인은 검은 파도뿐이다. 그것마저 죽은 자의 넋처럼 흔들거린다.
아버지에게 낚시는 무엇일까? 운명에 매달린 인연의 줄을 생살 떼어내듯 떠나보내야 했던 인고의 아픔일까. 엄마에게 송두리째 안겨준 삶의 무게도, 그 곁을 든든히 지켜주지 못했던 무능력도, 남몰래 품었던 철수엄마와의 봄볕 같던 연분홍빛 사랑도, 썰물에 띄웠을 것이다. 한때는 패기와 권위에 넘친 아버지를 거뜬히 받쳐준 밤바다였다. 물고기를 넘치도록 잡으며 가장의 의무에 충실했던 젊은 시절이었다. 신바람난 아버지의 낯빛은 백옥 같은 파도의 눈부심처럼 벅차올랐을 것이다. 그렇게 충만으로 부풀던 밤바다는 아버지의 피신처가 되고 말았다. 줄에 걸린 물고기 신세가 된 아버지는 질긴 인연의 줄을 오히려 낚싯바늘에 줄줄이 꿰어 밤바다에 하나씩 내던진 것이다.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인간의 삶을 보는 것 같다. 물결이 삶의 주름살이거나 죄의 고랑으로 보인다.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가 전해주려는 건 무엇일까? 바다와 눈 마주쳐 건져 올린 인忍이 아닐까 싶다. 참아내라. 견뎌내라. 그것은 가장의 권위가 낡은 서까래처럼 무너진 아버지의 외침이기도 했다.
혼자 있을 때 아버지의 눈 속엔 늘 돛단배가 있었다. 고향을 떠나오던 날 지켜본 아버지의 눈빛에는 파도가 일었다. 어린 딸을 타지로 보내는 심정이 물살에 밀려 떠도는 쓸쓸한 돛단배로 보였는지, 아버지는 그날 밤 낚싯대를 챙겨 들고 다시 밤바다로 나갔다. 수평선 끝에서 물결이 촘촘히 내게 온다. 가슴속을 우려낸 검은 파도가 처연히 부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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