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이렇게 아무리 배워도 싫증나지 않는 진실한 가르침이 있어, 만년 스승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스승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곳이 통영이다. 그리고 그 드넓은 바다를 스쳐오는 서늘한 분위기에 젖어서 살아가는 피서지의 맛 때문에, 나는 이 통영을, 평생 떠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닷가에 사는 맛 - 고동주
바닷가에 거주하는 통영시민들은 피서지가 따로 없다. 일터의 대부분이 바다이고, 살아가는 환경 모두가 피서지이기 때문이다. 심한 무더위가 몰려와도 늘 시원한 바다에 젖어있는 기분이라, 별다른 피서를 생각할 여지가 없다. 어렸던 시절에는 같은 또래들끼리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경기도 하고, 물안경을 쓰고 수중水中에 들어가 해삼도 잡았던 즐거운 순간들이 잊히지 않는다. 그런 아기자기했던 추억들도 점차 무거워지는 나이와 함께 사라져버리기는 했지만….
한때 사학자이며 문인이었던 최남선 선생께서는 바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큰 것을 보고자 하는 자, 넓은 것을 보고자 하는 자, 기운찬 것을 보고자 하는 자, 끈기 있는 것을 보고자 하는 자는 시원한 바다를 보라.”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 외에도 무엇이든지 받아들이는 포용력과 자정自淨능력과, 육지의 땅에 버금가는 생명력도 보인다.
그런 모든 것을 한눈에 보고 싶으면, 언제라도 미륵산 정상에 오르면 된다.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바다와, 그 바다에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수백 개의 섬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섬들은 모양도 아름답거니와, 인간세계에 미치는 역할들이 더 아름답고, 다양하다.
그중에 한 가지만 예를 들면, 바닷물이 흐르다가 통영의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을 만나면 부딪쳐 회류回流 현상을 일으킨다. 이것이 수산물 맛을 좋게 하는 으뜸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런 조건이 발생할 수 있는 바다가 이 지구에서 통영 바다뿐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일찍부터 통영에서 생산되는 굴을 비롯한 수산물을 대부분 수입해 가는 현상을 빚었다. 그러면서 통영의 수산물이 세계 최고라는 소문까지 나게 했던 것이다.
그러니 이 바다의 섬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들인가. 이런 보물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웬만한 더위쯤은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나는 기온이 유달리 높은 날이 오면, 케이블카로 미륵산에 오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오르자마자 더위는 물론, 온갖 번뇌까지 사라지고, 포근한 위안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피서는 육체적으로 더위를 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면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옹졸한 인간들에게 베푸는 자비롭고 넓고 푸른 가슴이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바다도 때로는 너무 잔잔하여 단조로울 때가 있지만, 함부로 입을 열어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인간들에게 조용한 침묵의 덕을 새기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고요한 밤에는 달에게 가슴을 맡기지만, 썰물과 밀물이 있게 하는 신비로운 질서를 창조한다. 어쩌다 태풍이 엄청난 위력으로 몰아칠 때도, 바다의 입장에서 보면 어찌할 수 없는 자정작용自淨作用의 몸부림이다. 그것은 태풍이 지나간 뒤, 바닷가의 깨끗해진 모습이 증명해주고 있다.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 따라 암벽에 부딪혀 흰 물거품을 일으키는 때도 더러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투쟁과 다른 암벽과의 속삭임이고 애무愛撫다. 그럴 때마다 물새들의 노래까지 끼어들어 분위기를 돋보이게 한다.
바다는 이렇게 아무리 배워도 싫증나지 않는 진실한 가르침이 있어, 만년 스승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스승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곳이 통영이다. 그리고 그 드넓은 바다를 스쳐오는 서늘한 분위기에 젖어서 살아가는 피서지의 맛 때문에, 나는 이 통영을, 평생 떠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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