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넘어져도, 기다림에 대한 확실한 답은 없지만, <걸어가는 사람>과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희망을 본다. 불안 속에서도 당당히 앞을 보고 두 손을 불끈 쥐며 걷는 형상에서, 고도는 내일 올 것이란 말을 전하는 소년의 말을 믿으며."
‘걸어가는 사람’과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 - 조재은
“나는 피라미드처럼 거대한 형상을 만들고 싶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의 형태는 작아진다.” 피라미드 크기의 형상을 머릿속에 그리면서도 가장 가늘고 작은 조각으로 슬픔과 진실에 도달한 작품을 만들었던 자코메티.
그는 사르트르의 철학을 작품에 녹여 내고,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장치에 그의 예술을 살리고, 장 주네가 예술론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를 집필케 했다. 공간과 시대를 건너뛰어 한국의 최종태 조각가는 ≪먹빛의 자코메티≫를 그리려 붓을 들었고 피카소가 유일하게 질투했던 예술가였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전>의 주제는 ‘시선’이다.
자코메티는 존재의 본질을 찾으려고 자기 시선에서 방해하는 것을 제거하고 온전히 작품 속으로 들어가 모델의 시선과 그가 바라보는 인물이나 사물을 중요시 하며 작품을 만든다. 그리고 놀라운 예리함으로 작품을 응축시킨다.
눈을 중심으로 한 강한 선의 스케치와 점토를 가지고 작품과 혼연일체가 된다. 무서울 정도로 몰입하여 만든 <걸어가는 사람>은 가느다란 몸체에 작은 타원형의 얼굴을 갖고 있고 큰 눈은 두려움을 담고 있다. 그러나 두려움은 그를 주저앉지 않고 일어서게 한다. 시선의 강렬함을 품은 채 모든 것을 잃어도 포기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으로 대지를 딛는다. 결의에 찬 모습으로. 부러질 듯한 다리로 어딘가를 향해 성큼성큼 걷는 ‘걸어가는 사람’은 몸체에 비해 튼튼한 손과 발이 있어 결코 쓰러지지 않을 거라는 신뢰를 전하고 있다. 자코메티 작품이 찬란한 것은 무無에서 시작하고 온전한 본질을 추구하는 형상에 알 수 없는 암흑과 슬픔이 보이나 그 속에 살아남은 고귀한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전시 현수막 <걸어가는 사람> 옆에 쓰여 있는 글을 읽는다.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발을 내딛어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에서 다가오는 울림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가 나눈 대화와 울림이 맞닿았다.
“그만 가자.”
“가면 안 되지.”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자, 떠나자를 반복하며 막막한 시간을 하염없이 견디는 두 사람의 모습은 처연하다. 고도는 한 번도 직접 말하지도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어린 소년이 고도는 내일 온다고 짧게 전할 뿐이다.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 있는 초연 무대. 자코메티는 훗날 무대를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밤새도록 그 나무를 가지고 조금 더 크게 만들기도 하고, 조금 더 작게 만들기도 하고, 혹은 그 가지를 더욱 가냘프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우리 둘은 서로에게 말했다. 글쎄…. (참고: 필자 작품 <자코메티, 사르트르와 베케트 예술로 만나다>)
왜 베케트와 자코메티는 <고도를 기다리며> 초연 무대 장치에서 나무 한그루조차 작게 만들려고 고뇌했을까.
모든 것은 사라져도 살아남는 것은 시선이란 깨달음을 얻은 자코메티의 생각과,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가 알지도 못하는 고도를 기다릴 수 있는 것은 미지의 저편에 있는 고도의 깊은 시선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무대는 비어 있지 않았다. 고도의 시선으로 채워져 있어 무대 여백은 고도의 침묵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비움으로 마음이 채워지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단순함. 초연 무대가 한 그루 나무로 역사적인 무대가 되기 위해서 수없이 번잡한 무대장치를 제거하는 순간 무대에는 실존주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블라드미르가 기다리자는 말을 한번 하고 다음 결정까지는 시간으로는 상당히 긴 기간이 흐른 때이다. 실제 연극에서 1막과 2막 사이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음을 암시하고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두 사람은 떠남과 기다림 속에서 갈등하면서도 끝내 기다리는 의지를 보여준다. 온 힘을 다해 바위를 산 위에 올려놓으면 다시 굴러 떨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시포스의 반항적 몸짓과 닮았다. 의미 없는 반복의 고통은 삶에서 우리가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다.
삶이 힘든 때 자신에게 기다리자고 다짐하며 험한 산 같은 시간을 버티는 현실과 같다. 단념하고 포기하고 싶은 수많은 순간을 지나 오직 기다림으로 점철된 우리 안에 있는 아픈 시간들이 연극 속에 묻어있다.
허무를 박차고 힘차게 일어난 <걸어가는 사람> 몸체에는 아직 허망한 모습이 보인다. 2차 대전을 겪은 시대적 불안으로 그가 걷는 세상은 텅 빈 무대와 같은 세상이다. 그러나 가느다란 몸체에 비해 힘차고 넓은 보폭에는 도전과 영혼의 승리가 전해진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확실히 가야 할 곳인지 알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걸어가는 우리의 헤매임이 투영된 작품에서 답을 얻는다.
<걸어가는 사람> 그 조각은 한 번 깎이고 두 번 걷어내며 남은 건 뼈보다 가는 인체로 일어나 걷는다. 우리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지금까지 버틴 그 모습은 세기가 지나도 변하지 않은 인간의 자화상이다.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넘어져도, 기다림에 대한 확실한 답은 없지만, <걸어가는 사람>과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희망을 본다. 불안 속에서도 당당히 앞을 보고 두 손을 불끈 쥐며 걷는 형상에서, 고도는 내일 올 것이란 말을 전하는 소년의 말을 믿으며.
자코메티는 조각가가 아니면 문학을 했을 거라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게 시詩가 아닌가.”라고 했다. 그는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에 베케트와 함께 실존을 읊은 절창의 시 한 편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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