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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수필과비평 2015년 6월호, 사색의 창]  두릅나무 - 박혜숙

신아미디어 2015. 7. 27. 15:53

"두릅나무 꽃을 본 기억이 없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단단한 목질을 밀고 올라오는 새싹에 있었다. 새순을 잃은 나무가 얼마나 힘겹게 생장하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닉 부이치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크고 작은 장애를 가지고도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간다. 그들의 웃음 속엔 제 가시에 찔린 상흔이 숨어 있을 것이다.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을 뿐, 그들이 얼마나 힘겹게 세상을 살고 있을지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올 가을에는 검자줏빛으로 익는다는 두릅나무 열매를 눈여겨보아야겠다."

 

 

 

 

 

 

 두릅나무        -  박혜숙


   가시나무 끝에 횃불을 치켜들었다. 겨우내 양분을 응축하고 기다리다가 봄 하늘에 비로소 터트린 희망이다. 외줄기 나무 끝에 통통히 부풀어 오른 것은 두릅 순이다.
   봄이면 한 번씩 친정에 간다. 어머니를 뵙는다는 목적 외에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언제쯤 탐스런 두릅 순이 나올지 계산하고 날을 택한다. 조선의 풍류시인 임제林悌는 시냇가에 솥을 걸고 두견화로 전을 지져 봄을 맞는 흥을 노래했다. 향긋하고 쌉쌀한 두릅 순이야말로 봄을 느낄 수 있는 으뜸가는 산채다. 너무 이르거나, 이미 활짝 피어 버린 적도 있었지만 올해는 적당한 시기를 맞추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두릅 순을 핑계로 자식들을 한 번 더 부르려고 생전에 이 나무를 심으셨는지도 모르겠다.
   두릅을 따는 일은 녹록지 않다. 헌 작업복에 작업용 장갑, 신발도 두툼한 것으로 무장을 해야 한다. 범죄영화에서 레이저 감시망을 통과하듯 조심스레 몸을 움직여도 옷이 가시에 뜯기거나 손등에 상처가 나기 일쑤다. 한 손으로 가시나무를 휘어잡고 통통한 첫 순을 딸 때의 손맛은 옹골지다. 잘린 자리에서 찐득한 점액이 눈물처럼 묻어난다. 첫 순을 잃어버린 나무는 두 번, 세 번 다시 새순을 밀어 올리지만 처음만큼 실하지 못하다.
   두릅나무는 가시를 품고 자란다. 양분이 많은 연한 순은 사람뿐 아니라 초식동물들도 탐을 낸다. 때문에 자신을 지키려고 온몸에 잔가시를 촘촘히 박아놓았다. 단단한 목질뿐 아니라 새로 나온 연한 잎에도 가시가 사납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순은 활짝 피기도 전에 모가지가 똑, 똑 잘린다. 가지를 뻗지 못하는 나무는 해를 거듭해도 키가 고만고만하다. 사람의 손이 닿지 못할 만큼 자라고 싶어도 순을 잃어버리니 자랄 수가 없다. 심지어 수확을 쉽게 하려는 사람들의 꾀에 허리가 동강 잘리기도 한다.
   그래도 나무는 살아남는다. 가시뿐인 가지에 해마다 새 순을 내어 생장을 한다. 식물의 생존법은 다양하다. 씨앗으로 많은 개체 수를 퍼트리기도 하고, 제 몸의 가지로 꺾꽂이 하는 방법도 있다. 자라야 할 순이 꺾이고 허리가 잘린 두릅은 직립으로 크지 못하고 수평으로 번식하는 법을 택한다. 땅속에 숨은 뿌리로 영역을 늘려가는 것이다. 우리의 손을 피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두릅밭도 해마다 영역을 넓혀갔다.
   가지 없는 두릅나무에 남자의 형상이 환치된다. 악수를 청하지는 못해도 서슴없이 가슴을 내어주는 청년이다. 그의 포옹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초면에도 꺼리지 않는다. 그는 사회사업가로 전도사로 전세계를 종횡무진하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테이블 위에 올라가 강의를 하는 몰상식에도 면죄부를 받는 그는 ‘사지 없는 인생’ 대표 닉 부이치치다. 어쩌자고 몸통 위에 머리만 얹힌 비너스 석고상을 흉내 냈을까. 두릅 순을 따면서 인간의 이기심을 느꼈다면, 닉 부이치치를 보았을 땐 신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자살을 생각할 만큼 사지 없이 살아내야 하는 삶은 암담했다. 그러나 그는 없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가진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가 없는 대신 단단한 근육을 주신 것에 감사했다. 뭉툭한 어깨와 턱 근육을 사용하여 골프채를 휘두르고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고, 몸통에 붙어 있는 두 개뿐인 발가락이 자유자재로 컴퓨터를 조작한다. 점프를 하거나 몸을 던져 침대에 오르내리고, 머리를 움직여 셔츠를 입는 모습은 진기명기를 보는 듯하다. 두릅나무가 가시로 자신을 지키듯이 그는 온몸에 가시를 세우고 자신을 단련시켰을 것이다. 놀라운 근육의 힘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훈련으로 이룬 능력이었다.
   나는 행복합니다. 영상으로 보여주는 일상 속에서 온몸으로 말한다.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해변에서 유쾌하게 수영을 하고 파도타기를 즐긴다. 가족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기 바쁜 모습은 평범한 가장과 다를 바 없다. 그에게 더 이상 장애는 없어 보인다. 비키니를 입은 팔등신 아내의 허리께에서 그녀를 올려다보는 눈길이 그윽하다. 웃는 얼굴이 자신은 물론 타인의 마음까지 밝혀주는 횃불처럼 성스러워 보인다.
   두릅나무 꽃을 본 기억이 없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단단한 목질을 밀고 올라오는 새싹에 있었다. 새순을 잃은 나무가 얼마나 힘겹게 생장하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닉 부이치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크고 작은 장애를 가지고도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간다. 그들의 웃음 속엔 제 가시에 찔린 상흔이 숨어 있을 것이다.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을 뿐, 그들이 얼마나 힘겹게 세상을 살고 있을지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올 가을에는 검자줏빛으로 익는다는 두릅나무 열매를 눈여겨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