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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좋은수필 2015년 4월호, 신작수필 16인선] 시간의 굴렁쇠 - 박인숙

신아미디어 2015. 5. 18. 13:39

"운동장에 선수들이 나와 몸을 풀고 있다. 화상을 입을 것처럼 뜨거운 응원의 열기와 함성들. 막대풍선을 두드리며 목이 터져라 응원하니 뜨거운 공기가 내 안에 주입되어 별을 따러 올라가는 풍선이 되기도 한다. 위기에 처할 때의 마음 졸임, 골 넣은 순간의 환희, 시간이 지나가지 않는 조바심,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의 안도감. 삶의 축소판이다. 나의 시간의 굴렁쇠가 앞으로 언제까지 굴러갈지 알 수 없지만, 뜨겁게 자유롭게, 열심히 살리라. 지금도 건강하게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내 옆에 그가 있음에 감사하며, 지금 이곳에 내가 있음을 감사한다."

 

 

 

 

 

 

 시간의 굴렁쇠        /  박인숙

 

   지난 9월,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릴 때였다. 마침 집에서 멀지 않은 고양종합운동장에서 대한민국과 홍콩전 축구 경기가 열리게 되었다. 남편과 모처럼 운동장 열기를 느끼고 싶어 표를 구하려던 차에 지인의 도움으로 입장권을 얻었다. 한 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해서 들뜬 마음으로 서둘러 운동장으로 향했다. 주차장마다 가득 들어찬 차들과 수많은 인파. “김밥 사세요.” “방금 튀긴 바삭한 치킨 사세요.” “부드럽게 구운 오징어가 있습니다.” 경쟁하듯 호객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경기의 치열함을 미리 맛보게 했다. 갖가지 간식거리를 기웃거리며 김밥, 오징어, 물, 과자 등속에 붉은색 막대풍선을 사 들고 출입구로 향했다.
    “백이나 배낭은 위에 놓으시고 호주머니에 있는 것은 다 꺼내놓고 통과하세요.”  운동장에서도 검색대를 통과하는지는 처음 알았다. 아마도 국제 게임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총포도검류 검색대’를 통과하고 출입구 직원이 단속기를 몸 가까이 대니 삑삑 소리가 났다. “혹시 호주머니에 쇠붙이 종류가 있습니까? 다 꺼내 놓으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아뇨. 주머니엔 아무것도 없는데요.” 아! 쇠붙이. “네, 제 몸속에 있습니다.” “아! 네 들어가세요.” 비행기 탈 때도 몇 번 겪은 일이다. 내 오른쪽 다리 대퇴부엔 이미 살과 한몸이 된 철심이 들어 있다. 벌써 삼십오 년이란 긴 세월을 함께 살며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운동장에 들어서니 아직 경기 시간이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도 입추의 여지없이 벌써 많은 관중이 들어차 있었다. 운좋게도 관전하기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주변에서는 대한민국 선수들을 위해 대한민국! 을 힘차게 외치며 응원하고 있는 뜨거운 함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나는 홀로 35년 전으로 시간의 굴렁쇠를 굴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떤 묵직한 통증을 느끼며 눈을 떴다. 하얀 천장, 그곳으로부터 매여져 내려와 있는 흰 줄, 그 줄에 천정을 향하여 묶여있는 나의 오른발. 거꾸로 매달려 있는 듯한 착각에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려 했으나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이곳은 어딜까? 병원? 기억을 더듬을 겨를도 없이 부모님과 동생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서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우리 예쁜 딸이 웬일이냐!” “아직 시집도 안 갔는데 우리 딸 어떡할꼬.” “착한 우리 누나에게 이게 웬 날벼락이야.” 가족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 또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1979년 11월 9일 밤 11시 40분이었다. 강서구 신월동에 살 때였다. 은행에 감사가 나와서 늦게 퇴근하게 되었다. 통금 전에 도착하려고 버스에서 내려 부지런히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정류장에서 내려 집까지 15분 정도 걸리는데 그땐 가로등도 많지 않았고 차량도 많지 않았을 때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 다리가 있었는데 다리 밑엔 남부순환도로가 있었다. 그 다리까지는 걸어온 생각이 나는데 그 이후에는 아무 기억이 없이 병실에서 눈을 뜬 것이다. 통금 20분 전 차도와 인도가 구별되지 않는 2차선. 어둑한 도로를 걸어가는 나를 타이탄 트럭이 와서 덮친 것이다. 붕 몸이 떠 다리를 넘어 남부순환도로 옆 잔디밭에 떨어진 것이었다. 그 이튿날 부모님이 사고 장소에 가 보았더니 구두 한쪽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뒹굴고 있었다 한다. 운전자는 가난한 음주 운전자였다.
   음주 운전자는 후환이 두려웠는지 몰래 뺑소니를 치려 했다. 그러나 그를 붙든 건 경찰차였다. 그때 우연히 순찰 중이던 경찰차가 사고를 목격하게 되었다 한다. 차로 다리는 건너는데 5초쯤 걸릴까 하는 다리였다. 그때 경찰차가 지나가지 않았다면?  아니 지나간 후였다면? 사고가 다리 중간지점에서 났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3개의 앞니 깨짐, 찢어진 이마, 다리 골절, 벌어진 치골, 최저 12주 이상의 치료 요망. 의사의 진단서였다.
   4시간여의 수술과 진통제 없이 버티었던 100일이 넘는 입원생활, 속옷도 입지 못하고 매일 대했던 정형외과 과장님, 재활할 때의 고통과 눈물, 목발 없이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었던 내 모습, 허벅지에 20cm 이상의 흉한 수술자국 등은 힘겨웠지만 감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연인(지금의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심적 갈등, 엄마와 여동생이 나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고생했던 시간은 나에게 정말 힘겨운 시간이었다.
   퇴원 후 집에서의 피나는 재활 운동과 혼자서는 어디에도 갈 수 없었던 시간, 그리고 재활을 위해 다니던 수영장에서 벌겋게 꿰맨 흉터를 보이며 목발 짚고 들어서는 나를 향한 따가운 시선들은 모두 고통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인고의 시간은 내 삶을 다시 뒤돌아볼 기회가 되었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인한 인내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운동장에 선수들이 나와 몸을 풀고 있다. 화상을 입을 것처럼 뜨거운 응원의 열기와 함성들. 막대풍선을 두드리며 목이 터져라 응원하니 뜨거운 공기가 내 안에 주입되어 별을 따러 올라가는 풍선이 되기도 한다. 위기에 처할 때의 마음 졸임, 골 넣은 순간의 환희, 시간이 지나가지 않는 조바심,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의 안도감. 삶의 축소판이다.
   나의 시간의 굴렁쇠가 앞으로 언제까지 굴러갈지 알 수 없지만, 뜨겁게 자유롭게, 열심히 살리라. 지금도 건강하게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내 옆에 그가 있음에 감사하며, 지금 이곳에 내가 있음을 감사한다.

 

 

박인숙  --------------------------------------

   박인숙님은 수필가. 《한국산문》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