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에 군림한 화가 피카소의 작품, 미로가 사랑한 카탈루냐 언덕에서의 그와의 가슴 뛰는 조우, 또 깊어 가는 밤, 스페인 광장의 분수 쇼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아쉽다면 라희가 품속에서 잠이 들어버렸다는 것이다. ‘닥터드럼’ 김 대표의 가족과 함께 떠나는 아름다운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의 자유로운 영혼은 절대 표류하지 않을 것이며 세계 곳곳에 인상 깊은 족적을 남기고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낯선 곳, 길에서 예술과 만나다
: 세계여행가 ‘닥터드럼’ 김기호 대표 / 글·사진 최다리아(시인)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여행하고 돌아온 ‘닥터드럼 김기호 대표를 만난 곳은 일산에 자리한 그의 사무실이었다. 문 반대쪽에서 들리는 열정적인 리듬, 드럼 소리다. 누구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드럼의 소리는 왠지 원초적, 본능적 감성을 자극한다. 이곳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생긴 ’드럼 전문스쿨‘이며 ’드럼스튜디오‘이기도 하다. 홍보와 공연 기획자이기도 한 김 대표는 완벽하고 치밀한 준비로 단 한 번의 실패 없이 수많은 행사를 성공리에 개최한, 소위 이 바닥에서는 전설 같은 전력의 젊은이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좋은 의미의 ’독종‘이라고 한다. 그만큼 완벽하고 철저하다는 뜻이다. 지금도 계속 ’드럼스쿨‘의 분원을 설립 중이며 사업을 확장하는 등, 많은 분야에 도전 중이다, 모두 혼자 힘으로 이룬 결과이다. 그러나 김기호 대표는 8만 7천 명이 넘는 커뮤니티 가족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공을 돌리고 있다. 그다운 발언이다.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일정한 공간에서 같은 관심을 공유하는 모임은 그만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역시 일만큼은 냉철할지 몰라도 의리 넘치고, 밥 잘 사고, 불의를 그냥 넘기지 않는 사람이라는 주위의 평가가 그냥 나온 말은 아닌 것 같다. 또한, 김 대표의 사업장에서는 지구촌의 많은 어린이에게까지 관심을 보이며 따뜻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자유로운 여행의 기수, 김 대표의 이번 바르셀로나 행行 은 다른 때와는 다른 특별한 행보였다. 늘 곁에서 힘을 주는 똑똑하고 지혜로운 아내(홍희은), 그리고 두 돌이 채 안된 딸(라희)과 동행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천천히 새로운 세상을 함께 걸었다. 아기 ’라희‘의 보폭에 맞춘 느린 일정은 안내심이 필요했지만 나름대로 의미도 깊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기꺼이 즐겼다. 늘 혼자 떠나던 여행은 결혼 후, 둘이 되었고 이제 셋이 되었다. 물론 힘들고 어려운 여정이었지만 그만큼 행복했다. 가는 곳마다 새로운 에피소드로 기쁨이 가득했다. 현지인들에게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은 딸 때문이었다, 다행히 아기는 울거나 보채지 않았다. 어린 눈에도 새로운 세상은 충분히 호기심과 탐색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라희 역시 아빠를 닮아 여행가 기질을 타고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다른 외모를 가진 노랑머리의 언니, 오빠들에게 거부감 없이 옹알이로 말을 걸기 일쑤였고, 스스럼없이 손을 잡고 안기고, 입 맞추는 바람에 그곳 사람들에게 ’바르셀로나의 요정’이라는 별명도 얻었고 넘치도록 사랑을 받았다. 아마도 김 대표와 그의 아내는 그 뒤에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흐뭇한 광경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원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김 대표는 틀에 짜인 즉, 획일적인 여행은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지를 선택할 때도 가능하면 한 도시만을 고집한다. 여러 곳에 정점을 찍다 정신없이 여행이 끝난다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마는 우愚를 범하곤 한다. 굳이 유명한 관광지를 무리해서 가거나 남들이 열광하는 곳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냥 낯설고 처음 가보는 길, 그 길 위에서 현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 삶에 묻혀 지내다 온다. 그 속으로 들어가, 그들처럼 지내고 그들과 함께 호흡한다. 어디든 세상은 고통이고 눈물이지만 그 속에 미래도 기쁨도 희망도 있어 감동을 받으며 그 삶에 경이를 보내곤 한다. 그리고 여행이란 우리네 인생과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온다.
바르셀로나는 지도만 있어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는 곳이다. 하지만 고딕 지구만은 예외였다. 미로와 같이 얽혀 있는 좁은 길, 중세의 과거와 만나는 일은 미묘한 전율이 일만큼 흥분의 시간이었다. 유럽의 어느 고도와도 구별되는 매력은 비장미마저 느껴진다. 특히 이곳에서는 수시로 거리 공연을 즐길 수 있어 참 행복했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높은 수준의 연주를 보여줬고 노스탤지어의 낭만을 선물했다. 역시 김 대표는 그런 상황에서도 직업의식을 놓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좋은 공연으로 한국 마니아층의 관객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평소 기획자로서 김 대표의 의무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만이 예술에 대한 심미안을 키울 수 있었고 더 많은 아이디어를 얻곤 했다. 그것이 평소의 바람이며 여행의 목적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그런 모든 조건이 충족된 곳이 바르셀로나였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스페인은 여러 면에서 상반되는 것들이 어우러져 공존한다. 그 대비가 극단적이며 대조적이기까지 하다. 깐테 혼도(‘깊은 슬픔’이라는 뜻)라 불리는 ‘플라밍고’ 역시 그중의 하나일 것이다. 방랑의 민족, 집시들이 안달루시아 지방에 자리 잡기 시작하며 내려온 춤곡이다. 뜨거운 정열 속에 깊게 흐르는 애수哀愁의 느낌은 황홀했다. 현지인들이 압도적으로 추천해 가게 된, ‘할렘 재즈클럽’ 역시 폭넓은 장르의 음악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현대미술에 군림한 화가 피카소의 작품, 미로가 사랑한 카탈루냐 언덕에서의 그와의 가슴 뛰는 조우, 또 깊어 가는 밤, 스페인 광장의 분수 쇼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아쉽다면 라희가 품속에서 잠이 들어버렸다는 것이다. ‘닥터드럼’ 김 대표의 가족과 함께 떠나는 아름다운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의 자유로운 영혼은 절대 표류하지 않을 것이며 세계 곳곳에 인상 깊은 족적을 남기고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김기호님은 ‘닥터드럼 대표’, 공연기획자, 세계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