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진즉부터 TV화면 속 풍경이 나를 불렀던 것 같다. 저 다리는 세월의 흐름을 역류할 수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거부하려고 드는 내 내면의 혼란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나를 불러들여 살아가는 순리를 보여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외나무다리에서 - 김재희
지도 어느 한 점을 눈에 담은 지 어언 몇 년, 그러다 발걸음 떼는 건 순간이었다. 그러저러 달린 길이 한나절이다. 한낮에 졸고 있는 영주 무섬마을엔 어느 집 문간 밖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고무신들이 손님을 맞는다. 지나가는 바람조차 잠시 쉬고 있는가. 풍경들이 움직임이 없다.
둑길에 벤치 하나가 강 저편의 풍경을 바라다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살짝 걸터앉아 눈 돌려보니 멀찍이 가느다란 다리가 강폭을 건너지르고 있다. 부드럽게 휘어진 곡선이 아름다운 선율처럼 울림으로 다가온다. TV 화면 속 주인공들처럼 건너보고 싶었던 외나무다리.
흠모하던 임을 만나러 가듯 마음 설레며 발걸음을 옮겼다. 잔잔히 흐르는 물살 위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다리의 윤곽이 선명해지는데 곧게 뻗어 있는 것이 아니고 살짝 구부러진 곡선으로 아름다움을 발휘했다. 커다란 원을 도는 것처럼 원심력이 작용했을까. 자꾸 뒤뚱거린다. 처음엔 좌우 어느 한쪽으로 힘이 쏠리지 않도록 팔을 들어올려야 했다. 팔 동작이 우스꽝스러울 거란 생각은 잠시였다. 한발 한발 디딜 때마다 외나무다리 속, 아니 순간순간 바뀌던 드라마 화면 속 장면에 동화되었다.
어쩌면 팔 동작보다도 누군가를 닮아보려는 마음이 더 우스꽝스러웠으리라. 하지만 때론 그런 마음이 약이 되는 때가 있었다. 감히 넘볼 수 없는 곳을 넘나들어보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었다. 그러다가도 너무 넘치지 않고 넘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내 안의 어떤 힘이 다시 본연의 자세를 되찾아 주곤 했다.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사람과의 눈싸움이 벌어졌다. 다리의 폭은 딱 한사람의 발 너비 정도여서 자칫 균형을 잃으면 물속으로 텀벙 빠질 것 같다. 누군가는 비켜주어야 하는 길이다. 누군들 뒤돌아서고 싶을까. 그렇다고 무턱대고 상대를 밀어붙일 수도 없는 일 아니던가. 어찌할까 막막해서 주춤거리고 있는데 군데군데 비켜설 수 있는 작은 자리가 보였다. 그 자리에 잠시 서서 상대편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그러는 동안 잠시 주위 풍경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잠시의 여유는 주위의 아름다움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나와 비켜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또 다른 삶의 여정을 엿볼 수 있었고 더러는 친근한 미소를 나눌 수도 있었다. 고속도로처럼 오고 가는 길이 따로 널찍하게 나 있었다면 이런 여유를 느껴 볼 수 있었을까.
허리춤도 못 올라오는 낮은 외나무다리에서 강물의 속살을 훔쳐본다. 티끌 하나 섞이는 것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맑은 물은 그야말로 명경이다. 환히 내려다보이는 물속에는 또 다른 흐름이 겹쳐있다. 물살을 타고 떠내려가다 멈추고 다시 떠내려가는 모래알들. 서두르지도 거칠지도 않는 느긋한 물살이 모래사막 바람처럼 모래알을 나른다. 은빛 햇살의 놀이터를 만들고 마을을 휘돌아 나와 모래섬을 만든다.
거대한 산을 이룬 사막의 모래만이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이 작은 강줄기 속에서 흘러가다 무늬를 새겨놓은 모래 또한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만들어졌다가 부서지고 또 다시 만들어지는 무늬들. 수없이 많은 무늬들이지만 아마도 똑같은 것은 없으리라.
어떤 모양이든 뭐라고 표현을 해도 부족할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모래 스스로의 의지로써 만들어지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저 흘러가는 물살에 맡겨진 형체,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 아니던가. 어쩌면 우리 인간의 모습도 이러하리라. 각기 다른 삶으로 연결되어진 인간이라는 무늬는 그 누가 더 우수하고 못난 것이 아닌, 나름대로 개성을 지닌 품격이며 거부할 수 없는 대자연에 속한 하나의 물체에 불과할 뿐일 것이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외나무다리는 그저 아무렇게나 놓인 평범한 다리는 아니었다.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의 눈요깃감이나 그저 물을 건너가야 하는 정도로 이용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인간의 삶의 여정이 오롯이 배어 있었다. 휘돌아 가는 부분에서 균형 잡힌 삶의 방식을 되새겨보고 좁은 부분에서 쉬어가는 참 맛을 즐겨보았으며 낮은 부분에서 각기 다른 인생의 무늬를 살펴보았다.
느릿느릿 서두르지 않는 마음으로 걸어본 외나무다리 위에서 편안함이 느껴졌다. 이제 누구와 아옹다옹할 마음도 없고 앞장서고 싶은 욕심도 없는, 그 모든 것 다 내려놓은 기분이랄까.
어쩌면 진즉부터 TV화면 속 풍경이 나를 불렀던 것 같다. 저 다리는 세월의 흐름을 역류할 수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거부하려고 드는 내 내면의 혼란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나를 불러들여 살아가는 순리를 보여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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