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욕망을 다 내려놓고 사는 ‘아미쉬’들에게서 예수의 또 다른 모습을 떠올리며, 기독교인도 아닌 내가 부지중 그들과 내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음을 깨닫고, 나는 흠칫 놀랐다."
아미쉬(Amish)의 시간時間 / 고 춘
미국 오하이오 주도州都 콜럼버스에 10여 일간 머물고 있을 때, 하루는 현지 교포 P씨의 안내로 200km(5백 리) 밖 데이튼(Dayton)에 있는 항공박물관을 돌아보았다. 손자 녀석들 견학을 겸한 나들이였다.
때가 6월 중순, 여름이 바야흐로 무르익어가는 철이라 귀로에도 해는 아직 중천에 있었다. 하루 일과를 마감하기엔 이른 시간이다.
그때 P씨가 운전하다 말고 이상한 말을 꺼냈다.
“미국 속 원시사회를 한 번 보시렵니까?” 하더니 뒤이어
“이 넓은 미국 땅에 딱 세 곳밖에 없는, 아주 귀한 사람들 마을이 이 부근에 있는데 한번 둘러볼까요?” 하였다.
“어떻게 귀한 사람들인데요?” 하니까
“문명을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집집마다 자동차가 없는 건 물론, 온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이면 촛불이나 호롱불빛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죠.” 하는 것이다. 순간 내 귀는 당나귀 귀가 됐다.
그들은 평범한 백인인데, 17세기에 ‘야곱 암만’이라는 사람이 창시하여 <맨노>라는 종파에서 떨어져 나와, 스스로 아미쉬(Ammann의 사람들)라고 부르는, 기독교의 한 분파라고 했다.
사람의 기본생활을 넘어서는 일체의 문명을 거부하며, 원시적 농업사회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지금도 재래식 변소가 딸린 오두막에서 검소한 옷과 검소한 음식은 기본이고, 생활 전반에서 ‘검소儉素’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미국 땅에 그런 마을이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떻게 할까요?”
P씨가 7인승 랜드로버 뒷좌석 일행을 향하여 대답을 재촉하였다.
“수고스럽지만 차 머리를 그쪽으로 돌려주시겠습니까?”
이리하여 20여 분을 어디론가 차를 몰아가니, 거기서부턴 자동차라곤 그림자도 안 보이고, 넓으나 넓은 지평선 위에 오직 우리가 탄 랜드로버 한 대만이 밭둑길을 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농부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미국 국토 안에 있는 주택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작은 집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으며, 주행에 큰 불편은 없었지만 신작로도 먼지 나는 비포장이었다. 천지간에 움직이는 거라곤 우리가 탄 자동차 한 대뿐이고, 들리는 거라곤 우리 차에서 나는 부드러운 엔진 소리 뿐이었다.
얼마를 그렇게 달렸을까? 차가 어느 한 모롱이를 굽이 돌아가니 가게인 성싶은, 집 한 채가 나타났다. P씨가 그 앞에서 차를 멈추자 검정 옷차림 부녀자 두세 사람이 집 안에서 나오더니 P씨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P씨가 그들에게 우리를 소개하였고, 내가 서툰 영어로 “조금 전에 당신들 얘기를 듣고 많이 놀랐다. 갑자기 찾아온 게 예의가 아닐지 모르나 너그러이 용서하라.” 했더니, 상관없다며 자유롭게 둘러보라 하였다.
낯선 사람들이 온 걸 알고 가게에 모여든 5~6명의 부녀자는 하나같이 검정이나 회색 옷을 입고 있었다. 들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여인을 보니 그녀 또한 검정 옷에 18세기 유럽풍의 회색 보닛(bonnet)을 쓰고 있었다. 우리를 구경하러 모여든 마을 아이들도 모두 검정 아니면 잿빛 옷차림이었다.
마당엔 눈어림으로 백 마리쯤 되는 닭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모이를 쪼고 있었다. 외양간엔 말이나 소가 한가롭게 졸거나 구유를 더듬고 있었다. 마당에 널린 닭똥과 쇠똥 말똥에 엉겨 붙은 파리 떼가 사람이 지나가면 몇백 마리씩 일제히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앉곤 하였다. 내 아내가 화장실을 물어서 다녀오더니, 한국 농촌의 재래식 뒷간과 똑같은데 청소가 잘 돼 있어 심한 냄새는 안 나더라고 했다. P씨에게서 들으니 마당에 널린 가축 배설물도 하루 두 번씩 청결하게 치운단다.
마구간 앞엔 쓰지 않은 마차들이 놓여 있었고, 우리네 농촌에서 보던 절구통이나 돌확, 맷돌 같은 것도 있을 자리에 다 있었다. 가게 안에선 여인들이 램프 유리에 끼인 그을음을 닦고 있었다. 오늘 밤 불을 밝힐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리라. 조명기구라야 석유 심지에 불을 붙이는 남포(Lamp)등과 촛불, 사방을 유리로 막고 그 유리벽의 반 뼘쯤 위로 갓을 씌운 등이 전부였다.
그때 멀찍이서 큰 짐 덩어리가 저 혼자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회색 옷에 검정 모자를 눌러쓰고 말에 올라앉은 마부가 집채만 한 마초 더미를 마차에 싣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차가 도착하고 말에서 내린 젊은 사내를 보니, 검은 구레나룻 얼굴에 그 차림새가 영락없이 영화에서 보던 17세기 유럽 농민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들은 영원히 옛 유럽 농민의 풍습을 그대로 전수받고 전수하며 살아갈 것이라 하였다. 미국 내의 세 곳(펜실베이니아. 인디애나. 오하이오)에서 집단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미쉬’는 약 5만 명에 이르는데, 하나같이 자로 잰 듯 똑같은 계율(오르드눙, Ordnung)을 지키며 청교도적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타고난 욕망을 다 내려놓고 사는 ‘아미쉬’들에게서 예수의 또 다른 모습을 떠올리며, 기독교인도 아닌 내가 부지중 그들과 내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음을 깨닫고, 나는 흠칫 놀랐다.
“예수가 스스로 교회를 지어 예배를 보았더냐?” 아니요.
그러면 교회가 무슨 소용이냐. 그냥 집에서 하느님께 경배하면 되는 것이다.
“예수가 전쟁을 해서 나라를 부강하게 하라 했더냐?” 아니요.
그러면 누구와 싸우라고 자식을 군대에 보내느냐!
“예수가 다투어 지식을 익혀 남의 우두머리가 되라 했더냐?” 아니요.
그러면 문명이 필요 없는데 무엇을 배워오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느냐!
“예수가 화려한 집과 좋은 음식을 탐하였더냐?” 아니요.
그러면 우리도 예수처럼 검소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예수가 부지런히 일하라거나, 일하지 말고 놀라 했더냐?” 아니요.
그러면 우리도 먹고살 만큼만 일하면 되는 것이다.
너희가 되고자 하는 것이 진정 예수와 똑같은 ‘하느님의 아들’일진대, 예수가 하지 않은 일을 왜 하려 하느냐? 예수가 하지 않은 일은 그게 하느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가 살았던 방식 그대로 살고 있을 따름이며, 아미쉬는 자자손손 그렇게 살 것이다. 아미쉬는 예수 재세시대로부터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아미쉬의 시간時間이다.
우리는 그날 2000년 전 예수재세시대로 시간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춘 ------------------------------------------
고춘님은 1933년생. 늦깎이등단. 월간 수필전문지 붙박이 필자. 산문집 《고춘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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