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놈이 죽고 난 후 얼마 있다 암놈은 무슨 이유인지 눈이 멀어 허우적거린다. 나는 그놈을 자동차에 태우고 야외 어느 연못으로 가서 물에 넣어 주었다. 먹이는 제대로 찾아먹는지…. 오래 전 일이다."
우리집 청거북이 / 윤행원
얼마 전부터 집에서 청거북이 한 쌍을 길렀다. 아파트 위층에서 세를 살던 젊은 부부가 떠나면서 자기들이 키우던 어린 청거북이 한 쌍을 주고 갔다.
우리 집 식구들은 처음엔 거북이 키운 경험도 없었고 흥미도 없지만 내다 버릴 수도 없어서 마지못해 시큰둥하게 키웠다. 집에 있는 투박한 플라스틱 그릇에다 물을 조금 집어넣고 일러준 대로 아침저녁 하루 두 번씩 거북이 먹이를 의무적으로 주다시피 했다.
그러다 심심하고 적적할 땐 거북이 부부가 노는 꼴을 가끔씩 구경을 하곤 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지나다 보니 어느새 집안 식구들의 무관심이 열성 있는 애정으로 차츰 변하는 걸 보게 된다. 아이들도 아침에 일어나면 거북이와 먼저 인사를 했고, 직장 갔다 와선 거북이와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가끔 거북이 물도 갈아주고 같이 대화(?)도 하곤 했다. 어느새 우리 집에선 아주 귀염 받는 식구가 된 것이다. 식구들이 좋아해 주면 저네들도 따라 좋아하는 것같았고 목을 길게 드러내고 바늘구멍 크기만 한 눈을 빤짝거리면서 네 다리를 하늘하늘 춤을 추듯이 같이 놀아 주었다. 그러다 바쁜 일상생활에 가족들의 관심이 며칠간 덜하다 싶으면 동작도 느리고 시무룩하게 보였다. 미물도 사람의 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새 거북이의 열렬한 사육사가 되어 버렸고 아침저녁 먹이는 물론 시원하고 깨끗한 물갈이도 내 차지였다. 수돗물을 흠뻑 씌우면 거북이가 둥근박질하는 게 매우 상쾌하게 보이기도 했다.
나 딴에는 지극 정성으로 거북이와 친하려고 노력했고 정도 흠뻑 들어버렸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거북이 한 마리(수놈)가 동작이 느려졌고 먹이를 시원찮게 챙기는 것 같았다. 며칠 후,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항 속에 넣은 널찍한 돌 위에 혼자 올라 앉아 등이 하얗게 말라 있었다. 물속이 싫어선지 밖에서 그렇게 밤을 꼬박 새운 모양이었다. 여하튼 낌새가 좋지 않았다. 시름시름 앓는 듯 했다.
거북이가 좋아하는 새우살을 주어도 이놈은 시큰둥하기만 했고, 잘게 썬 닭고기를 넣어도 먹을 생각을 안했다. 식욕이 왕성한 암놈은 제몫을 먹고도 이놈의 몫까지 빼앗아 먹어버리곤 했다. 무정한 놈, 의리도 없이 아픈 수놈의 먹이까지 뺏어먹다니!
아이가 병이 들었다고 생각을 했는지 하루는 거북이를 수족관 아저씨한테 진찰을 받으러 갔다. 수족관 아저씨는 수돗물을 너무 자주 갈아주어서 거북이가 감기가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약을 한 봉지 사 가지고 왔다.
나는 아이로부터 찬물을 자주 갈아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의를 받았고, 그때부터는 거북이의 사육권이 아이들에게 넘겨지고 말았다. 나는 ‘거북이의 사육방법’을 모른 스스로의 무지無知를 한탄했고, 집안 식구들에게는 거북이를 감기 들게 한 죄책감 때문에 입장이 매우 머쓱해졌다.
‘무지’란 언제 어디서나 말썽인가 보다. 나 딴엔 잘해주려고 한 게 이런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때부턴 아이들은 온갖 정성으로 조심스럽게 물을 갈아주었고 수족관에서 가지고 온 파르스름한 약도 물에 섞어 주었다. 며칠 그렇게 하니 감기 들었다는 거북이도 생기를 찾은 듯했고, 온 집안 식구들도 따라 생기가 솟아나는 듯했다. 이번 감기만 낫게 되면 우리 가족들은 거북이 사육에 대한 연구를 더욱 철저히 해서 다시는 거북이를 고생시키지 않으리라 맹세까지 했다.
헌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 거북이를 보던 셋째 놈이 울상이 되어 난리를 피우지 않는가! 간밤에 거북이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렇게도 희망찬 기대와 애정이 가득 찬 그네들과의 밀월 생활에 모두들 들떠 있었는데 이렇게도 허무하게 죽어버리다니. 이게 무슨 변고인고. 그렇게도 온갖 정을 쏟았건만 가족들의 간절한 사랑을 뒤에 두고 혼자서 고독하게 죽고 만 것이다. 아이들의 슬픔은 상당했다. 모두가 침울했고 못내 아쉬워하면서 한 동안 멍하니 비탄에 젖기도 했다.
사랑이란 무엇인지? 정이란 무엇인지?
아무리 미물이지만 정을 흠뻑 준 대상이 없어지면 이렇게도 허탈해지는가보다. 저녁때 직장에서 돌아 온 딸애가 거북이의 장례 문제를 의논하자고 나한테 왔다. 나는 그동안 어느 정도 마음도 가라앉았고 이성(?)도 회복했던 터라 너무 슬퍼하지 말고 우리 집 이층 베란다에 있는 화단에 묻어 주자고 말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베란다 화단은 안 된다고 막무가내다. 화단을 볼 때마다 죽은 청거북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괴로워지니 차라리 안 보이게 묻어 주자는 것이다. 아파트 정원 나무 밑에다 묻어 주기로 했다. 나는 아이들이 모두 출근한 후 화단 꽃삽을 가지고 나가서 아담한 정원수 밑에다 흙을 깊이 팠다.
수놈이 죽고 난 후 얼마 있다 암놈은 무슨 이유인지 눈이 멀어 허우적거린다. 나는 그놈을 자동차에 태우고 야외 어느 연못으로 가서 물에 넣어 주었다. 먹이는 제대로 찾아먹는지….
오래 전 일이다.
윤행원 ---------------------------------------------
수필가/시인/칼럼니스트, 《한국수필》 신인상, 《시사문단》 신인문학상, (사)한국문인협회회원, 경기수필문학회회원, 한국詩사랑동인, (사)한국수필가협회원영위원장·실버넷뉴스시민사회부부장 역임, (사)국제친선문화교류협회이사·한국수필작가회이사·합천신문논설위원, 《나이 따라 사는 재미》 등 수필집·수필선집 다수, 《바람처럼 살리라》 등 시집·시선집 다수, 경기수필문학신인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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