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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좋은수필 2014년 2월호, 신작수필 15인선] 청자모정靑瓷帽釘 - 박종형

신아미디어 2015. 2. 8. 09:08

"집의 머리가 지붕이라면 반듯하게 기왓고랑을 내어 암키와를 잇는 기와 잇기야말로 완성의 백미인데 못이 모자를 쓰고 마치 기와지기처럼 유장한 세월을 버팀은 참으로 장한 헌신이다. 청자모정을 떠올릴 때마다 왠지 세상 곳곳에서 무명인으로 살면서도 못 덮개처럼 살신성인하는 민초들이 생각난다."

 

 

 

 

 

 

 청자모정靑瓷帽釘       박종형

 

   여행길에 우연히 충주박물관에 들렀을 때였다.
   청자제품 전시실을 돌아보던 중에 수병이며 향로, 주전자, 합, 그릇 등 보물 반열에 드는 청자작품들 한귀퉁이에 부수품처럼 놓인 작은 청자제품이 눈길을 끌었다.
   그건 다른 청자제품에 비해 너무나 작고 고깔모자와 닮은 형태라서 박물관 말석이라도 전시물에 끼었다는 게 의아했다. 고깔 형태가 전부일 뿐 주둥아리가 있거나 손잡이 귀가 달리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상감을 했거나 그림을 그려넣지 않은 밋밋한 모양이었다.  
   쪼그리고 앉아 명찰을 읽었다. 청자모정, 청자로 만든 못의 모자였다.
   모자라 함은 덮개를 의미했다. 못이 쓰는 모자가 다 있다니 이전에 듣도 보도 못한 발견이었다. 호기심과 함께 어느 와공瓦工이 심심풀이로 빚어본 게 아닌가 장난스러운 상상까지 들었다. 그런 걸 무슨 작품인 양 청자로 빚고 전시까지 했다는 게 마치 해학의 오만한 여유처럼 느껴졌다. 옛날엔 대체 무엇에 박히는 못인데 저토록 칙사 대접을 하여 청자로 빚은 모자까지 썼단 것인지 그 사연이 궁금했다.
   그 사연이란 아주 단순했다. 
   못 덮개는 옛날 기와 잇기에 쓰였던 것으로 못이 빗물에 녹 슬어 삭아서 기와 이음이 풀리지 않도록 방수용 빗물받이로 씌웠던 것이며, 녹물이 흘러내려 단청을 더럽히지 않게 배수용으로 씌운 것이다.
   어느 기와장이의 발상이었던가. 그 덮개의 모양을 고깔모자형을 취한 안목이 참으로 지혜롭고도 멋지다. 실용성에다 멋까지 겸비시킨 배려가 그야말로 산 예술이다. 아마도 밖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 박힐지라도 값진 건물의 형태를 지탱하는 데 일조를 한다는 자긍심을 부어 넣어 멋진 고깔모자 모양으로 빚었을 것이다.
   옛날엔 저렇게 은근히 멋진 장인이나 기술자가 도처에 자기 자리를 지키고 살며, 알게 모르게 부조화나 위험을 막아서고 조화의 아름다움을 심고 빛내려고 애썼던 것이니 저런 민초들의 헌신과 멋으로 우리의 삶이 유지되고 윤택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페스탈로치가 길에 널린 사금파리를 줍고 기와장이가 천 년 가게 문화 유물을 보존시키려고 못에다 청자덮개를 씌우는 것과 같은 멋진 배려와 헌신이 이 세상에 계속되지 않는다면 역사의 맥리는 흉하게 훼손되고 인간관계는 살벌하게 돌아갈 것이다.
   집의 머리가 지붕이라면 반듯하게 기왓고랑을 내어 암키와를 잇는 기와 잇기야말로 완성의 백미인데 못이 모자를 쓰고 마치 기와지기처럼 유장한 세월을 버팀은 참으로 장한 헌신이다.
   청자모정을 떠올릴 때마다 왠지 세상 곳곳에서 무명인으로 살면서도 못 덮개처럼 살신성인하는 민초들이 생각난다.

 

 

박종형  ------------------------------------------

   박종형님은  전 《조선일보》 기자, 동서울대학 영문과 겸임교수 역임. 저서 《박산로에 사른 홍진 세월을 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