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 30분. 오전 진료도 막바지다. 교수님이 진단서를 잊었나 싶어서 간호사에게 채근했다. 검사실로 들어간 간호사가 이미 발급되었다며 제 증명발급처에 가서 찾아가란다. 그 사이 몇 번이나 불렀는데 대답이 없었다고 한다. 화장실도 못 가고 두 시간 동안 대기실을 지키느라 없던 병 하나 더 얻었다. ‘수도권을 제외한 병원 중 안과 환자 전국 최다’라는 홍보용 자막이 ‘환자 대기시간 전국 최장’으로 읽힌다."
안과 대기실에서 / 김민숙
예약 시간 8시 30분에 맞추느라 새벽부터 서둘렀는데 안과 대기실은 벌써 환자로 북적인다. 대부분이 노령인 환자는 예약 시간을 무시하고 일찍 병원에 온다. 명절 연휴 탓인지 오늘은 정도가 심하다. 진료 대기자 명단을 확인한다. 내 이름은 여섯 번째이지만 단지 예약 시간 순서일 뿐, 먼저 도착해서 접수한 사람에게 밀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오전 진료 환자는 거의 다 온 듯하다.
1번 방에서 간단하게 시력 검사를 하고 동공을 키우는 안약을 넣었다. 한 시간쯤 지나 검사실에서 전공의가 마이크로 호명한다. 검사실에도 이미 상당량의 검사지가 쌓여 있다. 전공의마다 검사지를 뽑아내는 순서가 제각각이어서 환자들이 서로 자신의 순서를 감시한다. 두 가지 검사를 받았다.
검사실에서 나와 대기실을 둘러본다. 아침 일찍부터 병원에 오느라고 모두들 바빴는지, 혹은 눈이 불편하니 제대로 치장하지 못했는지 환자들은 대부분 후줄근하다. 환자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환자를 호명하는 간호사와, 검사실과 이방 저방 진료실을 번갈아 드나드는 환자로 어수선하다. 이미 동공을 키운 눈은 사물을 정확하게 볼 수 없으므로 글 한 줄 읽을 수 없다. 나는 의자에 앉아 눈을 붙인다.
의사 앞에 앉는다. 안과용 기기에 턱을 얹고 이마를 붙인다. 의사가 기기를 조절하고 나는 지시에 따라 눈동자를 몇 번 움직인다. 의사는 모니터의 그림을 보여주며 지난주에 받은 레이저 시술 결과가 좋다고 한다. 모니터에 다음 환자의 차트를 띄우면서 두 달 후에 다시 오라고 한다. 이런저런 불편을 하소연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할 것이다. 그냥 인사하고 일어선다.
모처럼 10시 반쯤 진료가 끝났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실손보험을 위한 진단서를 의뢰했다. 의사는 쉽게 동의했고, 나는 최근에 흐릿하던 눈이 지난주에 받은 레이저 시술로 밝아져서 상쾌했다. 수납을 마치고 예약증을 받았다. 간호사가 검사실에서 진단서를 받아가라기에 가뿐한 마음으로 한 시간여를 기다렸다. 소식이 없다. A 교수님의 진단서가 나오지 않았느냐고 두 번이나 검사실에 문의했다. 전공의는 고개도 들지 않고 자판을 두드리면서 진단서가 들어오면 이름을 부르겠다고 했다. 혹시 호명을 놓칠세라 귀를 곧추세우고 두 시간을 견디노라니 온몸이 꼬인다. 눈앞에 초파리가 어지럽게 난다.
12시 30분. 오전 진료도 막바지다. 교수님이 진단서를 잊었나 싶어서 간호사에게 채근했다. 검사실로 들어간 간호사가 이미 발급되었다며 제 증명발급처에 가서 찾아가란다. 그 사이 몇 번이나 불렀는데 대답이 없었다고 한다. 화장실도 못 가고 두 시간 동안 대기실을 지키느라 없던 병 하나 더 얻었다. ‘수도권을 제외한 병원 중 안과 환자 전국 최다’라는 홍보용 자막이 ‘환자 대기시간 전국 최장’으로 읽힌다.
김민숙 ----------------------------------------------------
김민숙님은 수필가. 《계간수필》로 등단. 수필집 《어릿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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