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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수필과비평 2014년 2월, 사색의 창] 딸의 애완견 - 윤소천

신아미디어 2014. 11. 28. 10:22

"사람이나 동식물 등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에 값이 있다면, 크고 작고는 관계없이 다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함은 하찮은 축생들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결국 우리와 하나일 수밖에 없는, 이들과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어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가졌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녀석은 나의 불찰로 목숨을 잃게 되었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 걸음에 힘이 빠져 휘청거렸지만, 이미 끝난 일이 되어 어찌할 수가 없었다. 명복을 빈다."

 

 

 

 

 

 

 

 딸의 애완견        윤소천

 

   나는 평소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성격이지만, 대학을 선택하면서 수의학과를 일차 지원할 정도로 동물을 좋아하는 둘째아이의 극성 때문에, 지금까지 개를 키워오고 있다. 십여 년 전 시골마을로 집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파트에 사는 친구 집에 아이를 데리고 갔었는데, 애완견을 보고 우리도 한 마리 들여오자고 어찌나 졸라대는지 약속을 하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친구네가 새끼를 낳자마자 그중 한 마리를 선물로 보낸 것이 계기가 된 것이다.
   친구네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기르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들을 챙기고 ‘다리’라는 이름까지 지어 보냈다. 찬찬히 보니 잘생긴 제 어미를 그대로 닮아 귀엽게 생긴 데다 똘똘하기도 한 갈색 푸들 수캐였다. 그 때는 살던 거처가 마땅치 않아 지은 지 백 년이 넘은, 일곱 칸쯤 되는 고택 사랑채를 빌려쓰고 있었는데, 옛 한옥들이 방은 여러 개이지만 다들 좁고 요즈음 집과는 달리 웃풍이 심해 겨울 지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여기에 이 녀석의 뒤치다꺼리까지 하게 되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럭저럭 겨울을 지내고 날씨가 따뜻해지자 얘를 설득시켰다. 원래 개들은 야생이라 흙을 밟으며 마당에서 지내야 건강해서 우리와 함께 오래도록 살 수 있지 않겠느냐며 어르고 달래어 담장 아래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새 집을 마련하여 주었다.
   그해 겨울이 되어 추워서 잘 견디어 낼까 걱정이었지만, 염려와는 달리 집도 잘 지켜 주는 우리 집안의 귀염둥이가 되었다. 그 후 신축한 집으로 이사를 해 잔디를 심은 마당 한쪽에 새 집을 마련해주었더니 좋아했다. 뜰의 잔디는 해마다 두세 차례 예초기로 손질을 해야 해서 이때마다 베어낸 풀을 거름더미에 버렸다. 그러다 그해는 문득 풀을 버릴 게 아니라 건초를 만들어 깔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풀들을 잘 말린 다음 자루에 담아 놓고 날씨가 추워져 푹신하게 깔고 누울 자리를 만들어주고 나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봄이 지나고 초여름이 되었는데도 이 녀석이 생기를 잃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다 괜찮겠지 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몸에 큰 팥알 같은 것이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깜짝 놀라 알아보니 살갗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 진드기였다. 원인은 건초였다. 봄에 건초를 걷어내 태워버리고 소독을 해주어야 했던 것이다. 동물병원에 데려가 보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처방을 해보았지만, 앓기 시작한 지 한 주일이 안 되어 결국 자는 듯이 가버렸다.
   돌이켜보면 작은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때이니 녀석이 우리 집에 들어온 지도 십이 년이 되었다. 얼마 전 우리 집 아이들은 저마다 학업을 위해 도시로 나가버려서 그나마 나를 의지하고 살았는데, 녀석의 그 또랑또랑하던 눈망울을 떠올리자 안쓰러운 마음에 자책감까지 더해 가슴이 아팠다. 처음 겪는 일이라 난감하기만 하였는데, 이런 일은 혼자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황급히 상자를 구하여 바닥에 한지를 깔고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녀석의 시신을 눕히고 나니 무언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여 뜰에 피어 있는 꽃을 한 아름 꺾어 함께 넣어 주었다.
   시골 마을로 들어와 농사일을 익히면서 자연과 쉽게 어울리게 되면서 나는 생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는 나도 모르게 개안開眼을 했는지 자연의 모든 것이 신비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서산에 타오르는 노을을 바라볼 때나 혹은 바다의 밀물, 썰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 지상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우리가 숨 쉬며 살고 있는 생태계를 우리의 몸과 둘이 아닌 하나로 보면, 어느 것 하나 따로 떨어져서 무관한 것은 없고, 크게 보아 하나로 엮어진 유기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울적한 마음을 추스르며 녀석을 차에 싣고 봄이 되면 같이 고사리를 캐러 다니기도 하고, 산책을 하곤 했던 산자락 길옆 큰 밤나무 아래를 깊이 파서 묻어 주었다.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녀석은 평생 독신으로 살다 갔다는 생각을 하자 불쌍하다는 마음에 콧등이 찡했다. 처음에는 마음대로 뛰어놀게 풀어놓았는데, 이웃 텃밭 채소들을 망쳐놓는 바람에 부득이 줄로 매어놓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다 보니 교미의 때를 놓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사람이나 동식물 등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에 값이 있다면, 크고 작고는 관계없이 다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함은 하찮은 축생들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결국 우리와 하나일 수밖에 없는, 이들과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어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가졌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녀석은 나의 불찰로 목숨을 잃게 되었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 걸음에 힘이 빠져 휘청거렸지만, 이미 끝난 일이 되어 어찌할 수가 없었다.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