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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여행작가 3-4월호, 신작기행문] 영남루領南樓 - 글·사진 정기용 (수필가)

신아미디어 2014. 11. 24. 20:27

"박종화 역사소설 《아랑의 정조》는 도미 아내 이야기로 잘 알려졌기에 국문학사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으나 밀양 아랑 낭자의 이야기는 단순히 전설의 고향 같은 차원의 설화문학에 머문다는 것이다. 전설은 전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설이 사실인 것처럼 일반인에게 회자膾炙되는 이유는 이를 실증하는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실물 때문에 허황된 이야기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각색되어 흥미가 더해진다. 아랑의 전설도 실제로 있었던 일처럼 그곳에 비석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니 우리나라 전설의 고향 1번지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영남루를 중심으로 밀양은 유적이 많은 고향이다. 사명대사유적지, 표충사, 표충비각, 추원재, 예림서원, 얼음골 등 아름다운 문화재가 많다. 훌륭한 문화재를 찾아보아 그 지방의 역사를 알아보며 밀양의 보물 영남루를 다시 한 번 상기해 본다."

 

 

 

 

 

 

 

 영남루領 南 樓        글·사진 정기용 (수필가)

 

   영남루는 보물 제147호로 경남 밀양시 내일동 강변 산 중턱에 소재한 누각이다. 이 누樓가 창건된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 공민왕 14년, 전에 있던 누각을 철거하고 규모를 크게 확장하였다고 한다. 
   현재 건물은 순조 34년 불타버린 것을 현종 10년에 재건하였으며 진주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에 3대 명루의 하나로 불린다. 이곳을 가려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게 좋다. 금호 분기점을 지나면 동대구 나들목이 나온다. 이곳에서 경산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서호동 삼거리에서 우회전한다. 그대로 계속 직진하여 25번 국도를 타고 청도 밀양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영남루 이정표가 나온다. 
   나는 역사문화포럼 회원 40여 명을 비롯하여 가족과 함께 두 번 이곳을 찾았다. 영남루는 웅천강凝川江을 바라보고 절벽 위,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간격을 넓게 잡았다. 높다란 기둥을 사용하였으므로 누마루가 매우 높으며 규모가 웅장하다. 좌우에 날개처럼 부속물이 있어 층계로 연결된 침류당沈流堂이 서편, 능파당陵波堂이 동편에 있다.
   누마루 주위에는 난간을 올리고 기둥 사이는 모두 개방하여 사방을 바라보며 좋은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공포栱包는 기둥 위에만 있고 그 사이에는 귀면鬼面을 나타낸 화반花盤을 하나씩 배치했다. 안 둘레의 높은 기둥 위에 이중의 들보樓를 가설하고 주위의 외 둘레 기둥은 퇴량退樑과 충량衝樑으로 연결하였다. 그 가운데 충량은 용의 몸을 조각하고 천장은 지붕 밑에 그대로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이 누樓는 남천강을 굽어보며 웅장한 궁전처럼 서 있는 밀양의 상징이요 자랑이다. 그래서 밀양의 소식을 알리는 연간지 제목도 《영남루》라고 하여 1년에 1회씩 밀양 소식을 알린다. 
   누각樓閣의 조건이 꼭 강을 끼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산이나 들 어디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위용을 자랑하는 큰 누각은 묘하게도 강을 끼고 절벽에 있다.
   진주의 촉석루나 평양의 부벽루처럼 영남루도 남천강의 절벽을 이루는 천혜의 장소에 있다. 큰 누각들이 역시 강상江上의 절벽에 서 있는 것을 보면 건물과 자연의 조화를 이룰 줄 아는 조상의 안목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누각은 국가의 업무를 수행하는 공적인 건물이기에 사적으로 사용하는 정자와는 달리 주변 경관의 조화보다는 업무의 편의성에 더 중점을 두어 건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풍류와 경관의 조화에 탁월한 감각을 지닌 우리 조상이 그렇게 무뚝뚝한 건물을 지어놓지는 않았다. 아무리 국가기관에 딸린 부속 건물이라도 건물의 모양새와 이미지를 살려 주변과의 조화를 잘 살려 놓았고 그 중의 으뜸이 바로 영남루다. 이 누에 올라 향수에 젖으면 자연 시상이 떠오른다. 자연이 베풀어준 혜택으로 윤택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창조해 낸 밀양에서 ‘밀양 아리랑’의 경쾌한 리듬보다 서정적인 향수에 빠져드는 것은 영남루가 빚어낸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탁 트인 벌판에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이 누에 오르면 고향의 품에 안긴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기도 하다. 영남루의 주변에는 여러 개의 문화재가 있어 더한층 고고한 멋과 향수를 짓게 한다. 이곳에는 천진궁天眞宮과 석화石花, 그리고 밀양시립박물관과 아랑각阿嫏閣 등이 있다.
   천진궁은 영남루 경내의 북쪽에 있는 건물로 현종 6년 부사 홍성구가 창건한 요선관邀仙官이었다. 지금은 단군왕검과 역대 8 왕조의 위패를 모신 사당 형태다. 이곳에 단군왕검의 사당이 있는 것이 좀 의아하지만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다. 해마다 음력 3월 15일은 어천대제御天大祭, 10월 3일은 개천대제開川大祭라 하여 춘추春秋로 향사를 지낸다.
   석화는 천진궁 문 앞에 있는 평평한 돌인데 돌에 꽃무늬가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누 위에 밀양시립박물관에는 인근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전시된다. 박물관 옆으로 무봉사라는 절이 있고 그 아래 아랑각이 있다.
   아랑각 옆에는 ‘밀양 아리랑’의 표석을 크게 세워 아리랑의 고장임을 나타냈다. 이곳은 밀양 아리랑을 만들어 낸 아랑이라는 처녀의 혼을 달래기 위한 제당이 있다.
   아랑사阿嫏祠는 경남 문화재 자료 제26호로 명종 때 밀양 부사 외동딸로 성은 윤 씨요 이름은 정옥貞玉 혹은 동옥東玉이라고 한다. 나이는 16세로 재기가 넘치고 자색姿色이 뛰어난 규수로 전해진다. 태어난 지 수개 월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유모 품에서 자라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한다. 어느 날 유모의 꾐에 빠져 영남루로 달구경 갔다가 통인通人 주기朱旗가 겁탈하려 하자 죽음으로 정절을 지켰다. 이후 신임 수령이 부임할 때마다 의문의 죽임을 당하여 고을의 우환이 되었는데 이상사李上舍라는 신임 부사가 원귀怨鬼의 자초지종을 알아 그녀의 원혼을 달래 고을의 우환을 해결하였다는 전설이다. 
   밀양 사람들은 아랑 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정열을 연민하여 영남루 아래 아랑의 시신이 떨어졌던 대밭에 열녀사烈女祠라는 사당을 짓고 매년 4월 16일 제사를 지낸다. 아랑사는 맞배지붕 3칸에 사당은 ‘아랑사’라는 편액을 달고 삼문三門으로 지어진 정문에는 정순문貞純門이란 편액을 걸었다. 사당 내부에는 이당 김은호金殷鎬 화백이 그린 아랑의 영정影幀과 위패位牌가 봉안되어 있다.
   박종화 역사소설 《아랑의 정조》는 도미 아내 이야기로 잘 알려졌기에 국문학사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으나 밀양 아랑 낭자의 이야기는 단순히 전설의 고향 같은 차원의 설화문학에 머문다는 것이다. 전설은 전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설이 사실인 것처럼 일반인에게 회자膾炙되는 이유는 이를 실증하는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실물 때문에 허황된 이야기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각색되어 흥미가 더해진다. 아랑의 전설도 실제로 있었던 일처럼 그곳에 비석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니 우리나라 전설의 고향 1번지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영남루를 중심으로 밀양은 유적이 많은 고향이다. 사명대사유적지, 표충사, 표충비각, 추원재, 예림서원, 얼음골 등 아름다운 문화재가 많다. 훌륭한 문화재를 찾아보아 그 지방의 역사를 알아보며 밀양의 보물 영남루를 다시 한 번 상기해 본다.

 

 

정기용  ------------------------------------------------

   정기용님은 수필가. 수필춘추 운영위원, 저서《조선왕조 500년 역사이야기 상.하》,《떨어지는 나뭇잎에도 무게는 있다》《허공에 맴도는 조선인의 그림자》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