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도서관 문학관 문학작가 지원사업으로 부천예술정보도서관에서 작가로 활동하신 '제성은'님의 동화을 소개합니다."
가장 큰 선물 / 제성은
지금 내 손에는 요즘 제일 유행하는 휴대전화가 들려 있습니다. 최신형은커녕, 휴대전화조차 가져보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엄마와 아빠는 어린아이가 뭐가 필요하냐고 말씀하시곤 하셨지요.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요금 때문에 엄마도 없앤 휴대전화를 사주실 리가 없었다는 것을요. 그래서 포기하고 꿈조차 꾸지 못했던 휴대 전화. 그런데 바로 지금 손에 쥐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 휴대전화는 큰엄마가 내게 주신 것입니다. 큰엄마가 찾아온 이후로, 아니 큰엄마로부터 이 선물을 받은 후로는 하루도 마음이 편안하질 않습니다.
큰엄마가 찾아오셨던 날은 십 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제사였습니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할머니와 오빠는 시장에 가시고, 나는 깜빡 잠이 들어 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요. 우리 집 초인종이 다급하게 울렸습니다.
“누구세요?”
“나야, 큰엄마.”
“누구시라고요?”
나는 낯선 사람에게는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하셨던 엄마의 당부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현관 모니터를 한참동안 들여다보았습니다. 하지만, 큰엄마라는 호칭과 얼굴은 단번에 연결이 안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큰엄마를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5년도 넘은 일이었기 때문이었지요.
“너 민지지? 큰엄마 맞으니까 얼른 문 열어 봐.”
궁금한 마음에 문을 빼꼼 열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큰엄마가 힘껏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왔습니다.
“어른들은 어디 가셨니?”
“네, 시장에.”
“그래? 아휴, 덥다. 물 좀 줄래?”
집에 들어와서 소파에 푹 눌러앉는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나는 물을 가져다 드렸습니다.
“그래. 민지 너, 4학년인가?”
“민준데요. 3학년이구요.”
“그러니? 미안, 실수!”
나는 큰엄마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습니다. 할머니가 가끔 꺼내보셨던 큰아빠의 결혼사진 속 새신부의 얼굴과 같아 보였습니다.
“우리 큰엄마 맞는 것 같네요.”
“얘는, 내가 무슨 장사꾼일까 봐? 여기 잠깐 앉아봐. 이거, 휴대전화 있니?”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큰엄마는 쇼핑 가방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거, 요즘 최고 유행하는 휴대전환데 너 주려고 사온 거야.”
함께 있기가 머쓱해서 방으로 들어가던 나는 우뚝 멈추었습니다.
‘이 비싼 휴대전화를 선물로?’
나는 큰엄마를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챙이 넓은 고급 모자는 마치 소공녀에 등장하는 귀족 부인 같았고, 드레스는 아니지만 긴 원피스는 우아한 레이스가 달려있었지요. 양손 가득 가지고 온 백화점 쇼핑 가방까지.
“민지, 아니 민주야. 얼른 받아. 팔 아프다.”
큰엄마는 다시 한 번 나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습니다.
“아뇨. 이거 받으면 엄마가 당장 뺏을 텐데…….”
“몰래 갖고 있어. 그럼 되잖아.”
큰엄마는 너와 나의 비밀이라는 듯이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쥐어주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딩동딩동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할머니와 아빠, 엄마, 그리고 오빠가 시장에 갔다가 돌아오신 것입니다. 나는 휴대전화를 허겁지겁 주머니 안으로 감추었습니다.
“어머니, 저 왔어요.”
큰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를 반겼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큰엄마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않으셨습니다.
“너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온 거야?”
할머니는 이제껏 낸 적 없는 목소리로 큰엄마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죄송해요, 어머니. 일단, 앉아 보세요.”
그러자 아빠가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자리에 앉혀주셨습니다.
“어머님, 이거 한우랑 화장품이에요. 그리고 동서도 좋은 가방 하나쯤은 메고 다녀야지.”
큰엄마는 가지고 왔던 쇼핑 가방들을 모두 풀어보였습니다. 모두들 이게 다 뭐냐는 듯이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쇼핑 가방은 보지도 않고 큰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형수님, 오늘 제사라서 오신 모양인데, 그럼 형님하고 같이 오셨어야지요.”
아빠의 말에 갑자기 도도하고 세련된 큰엄마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님…… 그리고 도련님…… 애들 아빠가 많이 아파요. 간경화래요. 이식을 받아야만 산대요.”
할머니는 큰엄마의 이야기에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아이구……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 내가 너무…….”
“도련님, 형제끼리는 간이 잘 맞는대요. 전 해주고 싶어도 못해 줘요. 제발 도와줘요.”
큰엄마는 눈물까지 뚝뚝 흘리면서 아빠의 손을 꼭 부여잡았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나와 오빠에게 얼른 방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습니다. 나와 오빠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빠, 간경화가 뭐야? 이식은 뭐고?”
“그러니까 간경화는 간이 많이 아픈 거고, 이식은 간을 떼어 주는 거야.”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몸 안에 있는 간을 떼어주다니 말입니다.
“말도 안 돼. 간을 떼어 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처럼?”
“그래.”
“간을 떼어주면 죽는 거 아니야?”
내가 묻자, 오빠는 시큰둥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간은 반 넘게 이식해 줘도,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온다고 하더라.”
나는 해맑은 표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다행이다! 그러면 이식 받으시면 되겠네. 큰아빠도!”
갑자기 오빠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습니다.
“되긴 뭐가 돼, 바보야! 이제껏 할머니도 안 모시고, 자기들 잘 살려고 제사 때도 안 찾아오더니, 이제 와서 우리 아빠보고 간 이식을 해달라고 온 거잖아!”
오빠가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그제야 이 일이 큰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덜컥 겁이 나서 방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큰엄마는 돌아가신 후였습니다.
‘이거 돌려드려야 했는데…….’
나는 주머니 안에 넣고 있던 휴대전화를 꺼내지 못한 채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날 밤, 나는 무서운 꿈을 꾸었습니다. 자꾸만 아빠의 간을 가지고 가려는 거북 때문에 아빠와 나는 깊은 바다 속에서 한참을 허우적댔고, 그러다가 절벽에도 매달렸다가 아빠의 팔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나는 자다가 깨서 안방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고는 엄마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잠결에 아빠와 엄마는 심각하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들려왔습니다.
“형님이 간경화라니, 간이식 밖에 방법이 없다는데 어쩌나.”
“여보, 우리도 이제 좀 먹고 살려고 하는데…… 당신이 수술하면 몸 추스를 때까지 쉬어야 하는데 회사는 어떡해요? 하지 마요, 여보.”
아빠와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래도…… 형님이 수술할 동안에는 도움을 주겠다고 하시고 하시니까…….”
“그 말을 믿어요? 잘되면 주고, 안 되면 안 주는 거 아니에요?”
“당신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아빠는 깊게 한숨을 쉬고, 엄마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내가 한두 번 겪었어야죠. 지금까지 5년 동안 연락 한번이 없던 분들이에요. 내가 괜히 그러는 게 아니잖아요.”
“뭘 받아야 형제는 아니잖아. 받으면 해주고 안 받으면 안 해줄 순 없잖아?”
“아뇨. 기왕 할 거면요. 그냥 다 받아요. 아까 그 한우랑 명품 가방도 다 받고, 차 준다면 받아요. 집도 준다면야 다 받자고요.”
그러자, 이번에는 아빠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나를 물건에 혹해서 수술하는 사람으로 만들 참이야?”
아빠의 목소리는 화가 나서 바르르 떨렸습니다. 나는 몰래 받아놓은 휴대전화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 죄송해요. 저도 큰엄마한테 휴대전화를 받았어요. 수술하지 마세요. 이거 당장 돌려드릴게요.”
물건이라도 받자던 엄마는 나를 나무라셨습니다.
“넌 그런 걸 왜 받아! 누가 주는 걸 받아!”
나는 울먹울먹하다가 결국에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울자, 할머니와 오빠까지 잠에서 깨어 방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방을 나가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깊게 잠들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아범한테 미안허다. 큰 수술을…… 하게 돼서…….”
아빠가 큰아빠에게 간을 주는 수술을 하던 날 아침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눈물을 뚝뚝 흘리셨습니다. 아빠는 그저 씩 웃으시기만 하셨습니다. 엄마도 할머니처럼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나 때문에 아빠를 큰 수술을 하시게 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할머니는 엄마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씀하셨습니다.
“미안허다, 너한테 짐만 지워서. 미안해. 늙은이 가슴에 한 맺히지 않게, 네가 한번만 날 봐다오.”
엄마는 점점 더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마다 아빠와 할머니가 어깨를 토닥여 주었습니다.
아빠는 큰아빠에게 간을 이식해 주기 위해서 우리 가족과 함께 병원으로 가셨습니다. 환자복을 갈아입고 나온 아빠의 모습은 너무 낯설어보였습니다. 나는 아빠의 손을 꼭 잡아보았습니다. 씩씩하던 오빠도 왠지 아빠를 보며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아빠…… 나 때문에…….”
내가 울먹거리자, 아빠가 내 뺨을 어루만지셨습니다.
“왜 우리 민주 때문이야? 아빠랑 큰아빠는 피를 나눈 형제야. 미우니 고우니 해도, 형제는 딱 둘 뿐인데 이런 일에 모른 척할 수 있겠어? 너라면 오빠 일에 그럴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큰엄마에게 휴대전화를 받아서…….”
그러자, 아빠는 껄껄 웃으셨습니다.
“아냐, 아빠를 움직인 건, 여기... 바로 가슴이다. 돈이나 값비싼 선물을 주면 가슴이 움직일 거 같지? 아니, 나는 큰엄마의 눈물을 보고, 가슴이 움직인 거야.”
아빠는 수술을 앞둔 사람이 아닌 듯 밝게 웃었습니다. 그러고는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세상천지 물건을 다 가져다 줘 봐라. 이렇게 간을 내어 줄 수 있나? 돈? 물건? 아무리 줘도 이건 못 구한다. 진심이 통해야 구할 수 있지.”
나는 아빠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단단해 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기, 복도 끝에서 정수기에서 물을 떠가지고 오는 큰엄마의 모습이 보입니다.
“큰엄마.”
큰엄마가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큰엄마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습니다.
“큰엄마, 이거요.”
큰엄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싱긋 웃었습니다.
“아뇨. 아빠가요, 값비싼 선물보다 진심이 더 큰 선물이래요.”
큰엄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아빠의 진심을 제가 망칠 순 없잖아요.”
큰엄마는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멀뚱히 서 있습니다. 나는 큰엄마를 뒤로 한 채 아빠의 병실로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민주야… 민주야…….”
큰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나는 뒤돌아서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드렸습니다. 큰엄마도 나를 보고 손을 흔들어 줍니다.
이제, 내 손에는 휴대전화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 마음 속에 아빠의 목소리가 전화벨처럼 들려옵니다. 아빠의 진짜 마음을 지켜주어서 고맙다고.
제 성 은 -------------------------------------------
2011년 제28회 《새벗문학상》 동화부문 수상(등단), 2012년 제9회 부천신인문학상 동화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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