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한 바퀴 돌아 박 씨네 생선가게로 갔다.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 덕분에 갈치는 불티나게 팔려 나갔고, 방사능이 검출되었다는 고등어와 명태도 뒤를 이어 속속 팔려 나갔다. 박 씨의 전대는 한나절 만에 불룩해 있었다. 애꿎게 좌판에 엎드린 눈 맑은 생선들을 노려보다 문득 체르노빌 원전사고 후 태어난 외짝 눈의 아기를 떠올렸다. 나는 진저리를 치며 부디 이 모든 것이 과민한 자의 지레 걱정이길 빌었다."
마지막 경고 - 노혜숙
당진 오일장이 섰다. 어깨동무하고 늘어선 좌판 파라솔이 가을운동회 만국기처럼 경쾌했다. 허리 꼬부리고 앉은 난장 할머니의 소쿠리엔 깐 알밤이 소복하고, 단골 김 할머니 두부 판에선 뽀얀 김이 피어올랐다. 생선장수 박 씨는 두 아들을 좌우로 거느리고 일찌감치 좌판을 깔았다.
오늘따라 박 씨의 목청이 득음 고수처럼 카랑카랑했다. 고수의 유혹에 걸려든 사람들이 하나둘 좌판으로 모여들었다. 눈알에 푸른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은빛 갈치가 도열사병처럼 상자에 가지런했다. 만 원에 다섯 마리. 사람들이 다투어 지갑을 열었다. 예전 같으면 벼르다 큰맘 먹고 사던 지체 높은 생선이었다.
갈치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 딸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엄마, 싼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요. 저거 보나마나 일본에서 몰래 들여온 걸 거예요. 후쿠시마 사고 후 죄다 국산으로 속여 판다잖아요?”
딸의 지청구를 들으면서도 갈치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갈치 한 토막이면 진수성찬이라고 믿는 남편 생각이 스치기도 했지만, 검사 결과 먹을 만하다는 판정이 나왔다는 보도를 엊그제 보았기 때문이다. 세슘과 요오드의 함량 지수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불안하다는 언급이 찜찜하긴 했지만 설마 하는 마음이 더 컸다.
미량이라도 장기에 흡착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는 방사능 발암물질. 난장에서 생선을 사간 어르신들 중에 과연 몇 사람이나 그런 물질의 위험성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을까. 나 역시 방사능에 대한 상식이 미천했다. 해로운 정도의 판단 여부를 대부분 정부의 설명에 의지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정부가 마땅히 진실을 알려줄 것이라고 기대해야 하지만 국가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여론을 조작할 가능성을 생각하면 불안했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야 할 판이었다.
일본은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있는 식품을 수입금지한 많은 나라들 중 한국만 WTO에 제소했다. 불량생선보다 더 불량한 짓거리였다. 배후에는 한·일간의 역사적, 정치적인 이슈가 깔려 있을 터였다. 1900년대 중반 서양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시각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선진 대제국을 자처하면서도 정신은 여전히 진화하지 못하고 유아기에 머물러 있는 꼴 아닌가.
세계화는 먹이 사슬도 글로벌화하게 만들었다. 지구 한구석이 방사능으로 오염이 되면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 특히 한국은 일본의 인접 국가로 바다, 대기 등으로부터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수입되는 식품 등에 대해서만 신경 쓸 뿐 대기로부터 오염되는 국내 농산물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쓰고 있다.
문제는 우리도 남의 말 할 입장이 아니라는 데 있다. 우리나라에도 21기 남짓한 원전이 있으며 앞으로 19기의 원전을 더 건설해 총 40기의 원전이 가동될 예정이라고 한다. 선진국에선 후쿠시마 사고 이후 신규 원전에 신중한 반면 우리나라는 거침없이 증가하는 추세다. 독일은 서서히 원전을 퇴출시키기로 했으며 스위스, 영국, 프랑스 등도 원자력 발전 비중을 점차 줄여가고 있다. 중국도 26기 원전계획을 잠정적으로 중단, 재검토 후 시동을 걸 만큼 신중한데 우리나라만 한결같이 “안전하다”고 강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은 원전 의존도가 높아서 단 두 기만 중단해도 전력대란이 일어난다. 사실 원전이 저렴한 경제비용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에 기여한 공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으로 본다면 그것은 마약 같은 단시간의 효과를 위한 선택이고 또 미래세대에겐 지극히 이기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근래 원자력 마피아니 불량부품에 고장이니 잇달아 문제가 불거지는 걸 보면서 일본의 재앙은 곧 우리 발등에 떨어질 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원전 재앙은 원전의 위험성보다는 기술 발전, 자본주의 효용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데서 온 예견된 사태이다. 일본같이 관리가 철저하고 꼼꼼한 나라도 결과는 체르노빌 사고 때와 다를 바 없었다. 100% 안전이란 불가능한 상태에서 원전은 언제든 터질 준비가 되어 있는 시한폭탄이다. 원전을 대신할 에너지 개발이 멀고 요원한 과제일지라도 이젠 진지하게 방향 전환을 고려할 때지 싶다. 그렇다. 원전사고는 세대를 이어가는 재앙이며 단순히 먹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삶의 전반을 검토해야 한다는 마지막 경고일지 모른다.
나는 시장을 한 바퀴 돌아 박 씨네 생선가게로 갔다.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 덕분에 갈치는 불티나게 팔려 나갔고, 방사능이 검출되었다는 고등어와 명태도 뒤를 이어 속속 팔려 나갔다. 박 씨의 전대는 한나절 만에 불룩해 있었다. 애꿎게 좌판에 엎드린 눈 맑은 생선들을 노려보다 문득 체르노빌 원전사고 후 태어난 외짝 눈의 아기를 떠올렸다. 나는 진저리를 치며 부디 이 모든 것이 과민한 자의 지레 걱정이길 빌었다.
노혜숙 ------------------------------------------------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조르바의 춤≫, ≪생생, 기척을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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