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는 세 권의 시집을 낸 중견 시인이 되었다. 등단 이후 지금까지 섣부른 변신을 시도하지 않으며 느리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뚝심 있는 시인의 대열에 그의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본거지이기도 했던 고향 근처에서 대학에 교편을 잡고 시를 가르치며 시를 쓰는 선생이자 시인으로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그의 신작시들을 읽으며 달팽이의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몸과 집과 길이 하나 되어 온몸으로 길을 밀고 가는 달팽이처럼 그는 느리지만 온몸으로 자신의 길을 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열어가는 길 또한 우리 시의 소중한 길임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온몸으로 길을 밀고 가는 달팽이처럼 / 이경수
1
2008년 가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정읍에 집을 짓고 거처를 마련한 가까운 시인 선배의 집을 방문하려는 목적으로 정읍에 내려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박성우 시인을 처음 만났다. 그의 등단작 〈거미〉를 인상 깊게 읽었고 그 후로도 지면으로 종종 그의 시를 만났고 그의 시에 대한 글도 쓴 적이 있었지만, 문단 모임에 잘 나가지 않는 편이어서 실제로 박성우 시인을 만날 기회는 가지지 못했다. 그날 전화를 받고 머쓱하게 나타난 박성우 시인은 사슴 같은 눈망울을 한 훤칠한 키의 시인으로 내게 각인되어 있다. 남쪽에 가뭄이 심하던 때여서 섬진강변을 그의 안내를 받아 거닐며 강바닥이 쩍쩍 갈라진 것을 눈으로 확인했던 기억, 그가 키운다는 염소를 신기하게 바라봤던 기억, 인적이 드문 곳에서 판소리 창을 하는 소리를 들으며 전라도에 온 것을 실감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어느새 박성우는 세 권의 시집을 낸 중견 시인이 되었다. 등단 이후 지금까지 섣부른 변신을 시도하지 않으며 느리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뚝심 있는 시인의 대열에 그의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본거지이기도 했던 고향 근처에서 대학에 교편을 잡고 시를 가르치며 시를 쓰는 선생이자 시인으로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그의 신작시들을 읽으며 달팽이의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몸과 집과 길이 하나 되어 온몸으로 길을 밀고 가는 달팽이처럼 그는 느리지만 온몸으로 자신의 길을 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열어가는 길 또한 우리 시의 소중한 길임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
그의 신작시 다섯 편에서 단연 압도적인 이미지는 ‘어머니’이다. 다섯 편 중 세 편에 어머니가 등장한다. 2011년에 출간된 그의 세 번째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에서도 ‘어머니’는 종종 모습을 드러내 왔다. ‘목젖’을 “평소엔 그냥 목젖이었다가/내가 목놓아 울 때/나에게 젖을 물려주는 젖”, “나중에 내가/가장 깊고 긴 잠에 들어야 할 때/꼬옥 물고 자장자장 잠들라고/엄마가 진즉에 물려준 젖”(〈목젖〉)이라고 노래할 때, ‘엄마’는 화자의 슬픔을 위로해 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통화〉에서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정읍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 화자에게 “차가 출발하기 무섭게” 걸려온 “휴대전화”를 통해 어머니의 목소리가 전해진다. “어 닛째냐 에미여 선풍기 밑에 오마넌 너놨응게 아술 때 쓰거라잉, 뭔 소가지를 내고 그냐, 나사 돈 쓸 데 있간디”. 걸쭉한 사투리로 쏟아지는 어머니의 말은 항상 자식 걱정이 앞서는 우리네 보통 어머니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노인들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닮은” 것일까. 화자를 태운 “버스는 시큰시큰 정읍으로”(〈어떤 통화〉) 가고 시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도 덩달아 시큰댄다. 박성우의 신작시에서도 ‘어머니’는 여전히 시심을 자극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시골집에 드니 노모는 없고
새빨간 장미꽃만 대문 타고 올라 피어있다
어머니, 대문에 꽃무늬 남방 걸쳐놓고 어디 가셨어요?
— 〈꽃무늬 남방〉 전문
정읍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정읍에서 산 시인이지만 지금은 결혼도 했고 직장도 얻었으니 노모가 계신 시골집에서 함께 살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예전만큼 자주 시골집을 찾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시의 화자는 별다른 기별 없이 시골집에 들른 모양이다. 늘 집에 계시던 “노모는 없고” “새빨간 장미꽃만 대문 타고 올라 피어있다”. 그것을 보고 화자는 “어머니, 대문에 꽃무늬 남방 걸쳐놓고 어디 가셨어요?”라고 묻는다. 새빨간 장미꽃과 어머니의 꽃무늬 남방이 구별되지 않는 경지에 그의 시는 이른 것이다. 어머니가 일궈 놓은 삶은 그런 합일의 경지에 자연스레 이르게 된다.
그런 어머니의 삶을 그리는 화자의 여유로운 시선은 웃음기를 머금고 있다. 마지막 행에서 화자는 짐짓 어머니를 향해 농을 거는데 이런 유머는 느리고 여유로운 삶이 아니고서는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박성우의 시를 읽으며 우리의 몸과 마음이 절로 느긋해지는 까닭은 시인의 언어가 품고 있는 여유와 웃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국립과천과학관에 가서야
어머니가 베를 짜던 베틀도 과학이라는 걸 알았다
어쩐지 좀 설운 과학이었으나
어머니가 과학자였음에는 틀림없었다
는 생각에 닿아, 어깨를 으쓱여보았다
— 〈베틀〉 전문
근대화와 함께 우리를 지배한 어리석은 생각 중 하나는 바깥의 낯선 것만 새롭고 가치 있는 것이고, 안의 오래된 것은 낡고 무가치한 것이라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이분법이었다. 그야말로 낡아빠진 이분법이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의 화자는 어려서 “어머니가 베를 짜던” 모습을 종종 봤던 것 같다. 아마도 어린 시인에게 베틀은 어머니의 노동의 상징이자 가난의 상징 같은 것이었을 게다. 성인이 된 후에도 그는 베틀을 떠올릴 때마다 가난하고 구식인 어머니의 모습을 함께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구식보다는 신식을, 낡은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봉건적인 것보다는 근대적인 것을 우월한 가치로 가르쳐 온 근대화의 역사는 시골에서 자란 화자에게 자부심을 느낄 기회보다는 열등감을 느낄 기회를 더 많이 주었을 것이다.
화자는 성인이 되어 “국립과천과학관에 가서야/어머니가 베를 짜던 베틀도 과학이라는 걸 알았다”. 과학적이지 않은 것을 열등하거나 계몽되어야 할 것으로 취급하던 시절을 지나온 화자 역시 그런 편견 속에서 알게 모르게 주눅 들었을 것이다. “어쩐지 좀 설운 과학”인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베를 짜서 집안을 건사하던 어머니의 가난과 설움이 스며들어 있는 베틀이므로 그것은 “어쩐지 좀 설운 과학”이다. 뒤늦게나마 “어머니가 과학자였음에는 틀림없었다/는 생각에 닿아,” 화자는 “어깨를 으쓱여” 본다. 가난과 설움의 상징이었던 낡은 베틀이 과학의 상징이 되는 순간이다. 시인은 베틀에 대한 관점이 바뀐 이런 경험을 통해 근대/봉건, 과학/비과학, 문명/반문명을 가르는 기준이 얼마나 이분법적이고 폭력적인지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화자가 어깨를 으쓱이는 까닭은 사실상 어머니의 베틀이 과학이어서라기보다는 어머니의 베틀로 상징되는 어머니의 가난과 설움의 역사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아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동나무는 한 뼘 반이나 더 키가 컸고
포도넝쿨은 두 발짝이나 더 발을 뻗었다
노모는 손가락만큼이나 펴진 허리에서 파스를 뗀다
— 〈비 그치고 나니,〉 전문
비 그치고 난 뒤의 심상한 풍경을 그린 시이다. 박성우의 시는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 좀처럼 포착하지 못하는 풍경에 세심하게 마음을 쓴다. 비 그치고 난 뒤의 풍경에 오래 눈길을 두는 이들이 줄어든 시대이기에 박성우의 시선은 더욱 소중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계절마다 비가 담당하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봄비는 기지개켜며 움트는 생명에 단비와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고, 초여름에 한 차례 내리는 비는 생명을 지닌 것들의 성장을 북돋는 역할을 할 것이며, 한여름에 쏟아지는 비는 더위를 식히고 가을을 여물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시의 화자는 비 그치고 난 뒤의 변화를 세심한 눈길로 바라본다. 비 그치고 나니, “오동나무는 한 뼘 반이나 더 키가 컸고/포도넝쿨은 두 발짝이나 더 발을 뻗었다”. 이들에게 비는 성장을 촉진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노모는 손가락만큼이나 펴진 허리에서 파스를 뗀다”. 노모에게 비 내리는 시간은 허리에 통증이 느껴지는 신경통의 시간이기도 하다. 가난 속에서 식구들을 건사하느라 늘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우리네 어머니들은 항상 허리가 아팠다. 노모를 모시고 살거나 노모와 가까이 살지 않으면 잊기 쉬운 시간 중 하나가 저 통증의 시간이다. 파스의 힘으로, 비 그치고 난 뒤 해가 난 힘으로 노모의 허리는 “손가락만큼이나 펴”졌다. 담백하게 비 그치고 난 뒤의 풍경만을 서술하고 있는 시이지만, 시의 여백에서 노모를 애정 어린 눈으로 안쓰럽게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것은 노모가 거쳐 온 삶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자연을 대하거나 바라보는 박성우의 시선도 그와 다르지 않다.
3
그의 신작시는 사람들에게 관심의 눈길을 향한다. 그들은 하나 같이 달팽이의 생태를 닮은 사람들이다. 표가 나지 않을 만큼 느리게 기어가는 삶이지만 집을 이고 온몸으로 길을 내며 가는 삶. 길이 곧 자신인 그런 삶. 달팽이에게서는 전부를 거는 삶에서 풍겨 나오는 특별한 빛이 느껴진다. 박성우의 시가 주목하는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이 걸어간 길은 아마도 시인이 지향하는 시의 길과 다르지 않은 길처럼 보인다.
‘아름다운 순례길’을 걷는다 순례길은 총 9개 코스로 나뉘어 있다. 대략 240킬로미터쯤 된다 지난 6월엔 제1코스인 전주 한옥마을에서부터 완주 송광사까지 28킬로쯤 걸었다
7월엔 제7코스인 김제 금산사에서 수류성당까지 걸었다 이 구간은 코스가 짧아 몇 걸음을 더 보태어 18킬로미터쯤 걸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어떤 종교도 따르지 않는다 수류성당으로 가는 둑길을 걷고 있었을 때였다 뭔가 앞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달팽이였다 길 위를 달팽이가 기어가고 있었다 온 몸으로 길을 밀고 가는 달팽이는 나선형의 집을 직선으로 끌고 갔다 가다보니 달팽이가 여럿이었다 너희들, 어디 가니? 누군가 달팽이를 밟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물고기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는 최석현 청년이 길 밖으로 달팽이를 치워주며 걸었다
— 〈달팽이〉 전문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모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올레길을 걷는 일이 유행하면서 전국 각지에 걸을 만한 길이 많이 생겼다. 올레길, 둘레길 등 이름은 다양하지만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가 도심의 번잡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길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비슷하다. 시의 화자가 걸은 ‘아름다운 순례길’도 전라북도 지역에 형성된 그러한 길 중 하나이다. “총 9개 코스로 나뉘어 있”고 “대략 240킬로미터쯤” 되는 길이다. 시에 따르면 지난 6월에 화자가 걸은 ‘아름다운 순례길’ 제1코스는 “전주 한옥마을에서부터 완주 송광사까지 28킬로미터쯤” 된다. ‘아름다운 순례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길의 코스는 절을 따라 나 있기도 하고 성당을 따라 나 있기도 하고 때로는 절에서 성당까지 길이 나 있기도 하다. 그야말로 종교와 종파를 뛰어넘은 아름다운 길이다. 6월에 ‘아름다운 순례길’ 1코스를 걸은 화자는 7월에는 ‘아름다운 순례길’ 제7코스를 걸었다. 7코스는 “김제 금산사에서 수류성당까지” 나 있다. 대략 18킬로미터가 조금 못 되는 길인 모양이다. 열심히 ‘아름다운 순례길’을 따라 걷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어떤 종교도 따르지 않는다”. 그에겐 시의 길이 있으니까 다른 종교가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수류성당으로 가는 둑길을 걷고 있을 때 그는 “뭔가 앞을 가로질러 가”던 존재와 마주치게 된다. 그것은 “달팽이였다”. “온몸으로 길을 밀고 가는 달팽이는 나선형의 집을 직선으로 끌고 갔다”. 곧이곧대로 직선으로 밀고 가는 길, 그것도 온몸으로 길과 하나 되어 길을 내면서 가는 존재와 만나기란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런 달팽이들이 박성우의 시에는 “여럿”이다. 온몸으로 길을 밀고 가는 달팽이를 그는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 달팽이가 온몸으로 밀고 가는 길이 시인이 가고자 하는 길과 닮았기 때문이다. “물고기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는 최석현 청년”은 행여 달팽이가 다칠세라 “길 밖으로 달팽이를 치워주며” 걷는다. 달팽이와 최석현 청년과 화자는 서로 닮은 존재들이다. 박성우의 시에는 시인의 순한 눈망울을 닮은 선한 이들이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섬이라 말하기엔 뭍이 너무 가까운 섬 이제는 다리가 놓여 섬이 아닌 섬, 소록도와의 인연은 1991년 녹동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터미널에서 내려 수녀님의 짐을 나누어 들어드린 게 인연이 되어 소록도와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수녀님은 소록도유치원 수녀님이신 이앙즈요셉 수녀님이었다
수녀님은 내가 소록도를 찾을 때면 나를 데리고 성당에 갔다 성당은 한하운 시비가 있는 중앙공원 바로 옆에 있었다 감금실과 검시실을 지나면 나오는 중앙공원은 일제강점기에 한센병 환우들이 강제 동원되어 조성된 것이라고 이앙즈요셉 수녀님은 말해 주시곤 했다
성당에서 만날 때면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주시던 도민고 할아버지, 열일곱에 소록도에 들어와 가진 것 죄 빼앗기고 아침저녁으로 붉을 벽돌만 구웠단다 앞을 못 보시는 도민고 할아버지는 해를 넘겨 만나 뵈어도 나를 단방에 알아봤다 내 목소리만 듣고도 내 이름을 불러줬다 할아버지, 어떻게 매번 저를 기억하세요?
내가 늘 자넬 위해서 기도하니까 알지, 도민고 할아버지 숙소에 가서 라디오를 고쳐드리겠다고 깐죽거리기도 했다 내가 할아버지 빵과 사탕 같은 것들을 축내는 사이, 수녀님은 소록도를 떠났다
소록도와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이십년이 넘게 흘렀다 성당 앞을 서성이는데 단아한 수녀님 한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앙즈요셉 수녀님에 대해 여쭤보았다 곧바로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도민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단다
이앙즈요셉 수녀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맑고 밝았다 이앙즈요셉 수녀님은 1920년생이시고 우리나이로 94세다
— 〈이앙즈요셉, 그리고 도민고〉 전문
소록도에서 인연을 맺은 이앙즈요셉 수녀님과 도민고 할아버지에 대해 노래한 이 시에서도 시인의 관심은 사람을 향한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물고기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는 최석현 청년”처럼 자연친화적인 인물이거나 세상의 중심부에서 소외된 사람들, 또는 소외된 사람들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시인의 삶과도 관계가 있다.
섬이라 말하기엔 뭍이 너무 가깝고 이제는 다리도 놓인 곳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멀리 있는 섬 소록도와 시인은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다. 1991년 녹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소록도유치원의 이앙즈요셉 수녀님의 짐을 들어드린 것이 인연이 되어 소록도에도 자주 드나들게 된 것이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시인의 천성이 결국 소록도로 향하는 길을 낸 셈이다. 시인이 소록도를 찾을 때면 이앙즈요셉 수녀님은 시인을 데리고 한하운 시비가 있는 중앙공원으로, 그곳에 있는 성당으로 향하곤 한다. 소록도에는 “일제강점기에 한센병 환우들이 강제 동원되어 조성된 것이라”는 중앙공원이 있다. 우리의 아픈 근대사의 흔적이 그곳에 가로놓여 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한하운의 시비가 있다. 시인의 자리는 어쩌면 그렇게 아픈 역사의 한복판에 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록도에서 시인이 만난 또 한 사람은 도민고 할아버지다. “성당에서 만날 때면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주시던 도민고 할아버지”는 “열일곱에 소록도에 들어와 가진 것 죄 빼앗기고 아침저녁으로 붉은 벽돌만 구”우면서 살았다고 한다.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은 도민고 할아버지 같은 개인의 비극으로 점철되곤 한다.
시인이 소록도와 인연을 맺은 지도 이십 년이 넘게 흐른 사이에 도민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이앙즈요셉 수녀님은 소록도를 떠났다. 만남이 우연으로 시작되었듯이 헤어짐 또한 약조나 기별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도민고 할아버지의 죽음도 이앙즈요셉 수녀님의 떠남도 시인은 소록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처럼 보인다. 만남도 헤어짐도 죽음도 결코 요란하지 않은 관계. 소록도에서의 인연이 시인에게 일러주는 지혜는 바로 이런 것이다. 겉만 요란한 세속적 관계와는 어딘지 달라 보이는 인연이 거기에 있다. “1920년생이시고 우리 나이로 94세”인 이앙즈요셉 수녀님의 맑고 밝은 목소리처럼 맑고 밝은 관계가 그곳에서 오롯이 빛난다.
박성우의 시는 한동안 그런 빛을 찾아다닐 것 같다.
이경수 ---------------------------------------------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1999), 주요 저서로 《불온한 상상의 축제》, 《한국 현대시와 반복의 미학》, 《바벨의 후예들 폐허를 걷다》, 《춤추는 그림자》 등이 있음. 김달진 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 중앙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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