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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1월호, 초대수필 -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이틀간의 심리전 - 김정숙

신아미디어 2014. 3. 17. 08:22

"배가 불러 기분이 좋아진 녀석은, 내 옆 침대 위에 벌렁 누워 애교를 부린다. 사랑을 담아 배를 긁어주면서 혼자 중얼거려 본다. 강아지 부모 되기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사람 부모 되기는 말해서 무엇하랴. 잘못 길들인 어리석은 주인 때문에, 애꿎은 녀석만 힘들게 했나 보다."

 

 

 

 

 

 이틀간의 심리전       김정숙


   배는 등가죽에 딱 붙었다. 마침내 하얀 거품까지 토해냈다. 그래도 버티고 있다. 녀석은 이틀 동안 밥알을 입에 대지 않고 내 속을 태우고 있다. 하루 이상을 지켜보다가 불쌍하고 겁이 나서 결국에는 녀석이 좋아하는 트릿트(treat)를 주고만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늘 녀석에게 지고 만 셈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버릇을 고쳐 놓겠다고 벼르는 중이다. 무엇보다 녀석의 건강을 위해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압박해 왔다. 아마 녀석도 한번 무너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듯 필사적이다. 물이라도 마셨으면 하는 마음에 물그릇을 들이대도 입을 딱 다물고 오늘은 물도 안 마신다. 그래도 좋아하는 공놀이는 마다하지 않는다. 먹은 것도 없는데 에너지를 쓰게 할 수 없어 놀아주지 않았더니, 내 무릎 위에서 잠만 자고 있다. 5파운드도 안 되는 몸집이 더욱 가볍게 느껴진다. 닭고기라도 조금 주어야 하나,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코끝을 만져 본다. 코끝이 차다. 건강하다는 신호다.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강아지가 밥을 앞에 두고 배가 고파서 죽는 일은 없을 거라고, 고프면 먹게 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틀째 밥그릇 옆에도 가려고 하지 않으니, 얼마나 더 버티려고 하는 것인지, 나는 또 얼마나 더 고민하면서 보고 있어야 하나.
   녀석은 우리 집 강아지 코코다.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우리 집으로 입양됐다. 처음 왔을 때는 하루 세끼 밥그릇을 깨끗하게 비우는 것은 물론, 이를 튼튼하게 한다는 강아지용 뼈 하나를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 치워버릴 정도로 먹성이 좋았다. 그런데 우리 집에 온 지 1년 6개월, 식습관은 완전히 변해 버렸다.
   강아지를 처음 길러보는 우리에게 코코는 신비스럽고 사랑스러운 아이 같았다. 식사 시간에는 테이블 밑에서 자기의 존재를 알리며, 애원하는 눈빛으로 요구하면 거절할 수가 없다. 그래서 조금씩 음식을 주던 것이 버릇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무엇이든 먹고 싶어 한다. 고기 종류는 물론이고 새콤한 사과까지도 날름날름 잘도 받아넘긴다. 그 앙증맞은 입술로 받아먹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멈출 수가 없었다. 조금 주는 것이야 어떠랴 하고 방심한 것이 사료를 멀리하는 개로 만들고 만 것이다. 안 되겠다 싶어, 사람 음식보다는 강아지에게 주는 트릿트를 주기로 했다. 못마땅했지만, 밥을 먹이기 위해 남편은 사료 몇 알을 먹을 때마다 장하다며 그 위에 트릿트를 얹어준다. 그러다 보니 남편이 올 때까지 밥을 먹지 않고 기다린다. 그렇다고 남편만의 잘못도 아니다. 나도 학교에 수업이 있는 날은, 어린아이를 떼어놓고 일터로 나가는 엄마의 심정이 된다. 여섯 시간이나 혼자 있게 한다는 게 왠지 미안하고 뒤가 켕긴다. 그래서 언제든지 먹을 수 있도록 사료와 그 위에 트릿트를 얹어 놓고 나간다. 돌아와 보면 늘 트릿트만 먹고 사료는 입도 대지 않았다. 사료를 먹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집에 들어서는 순간 꼬리를 흔들며 키스세례로 반기는 모습에 녹아버려, 상을 주듯이 또 트릿트를 주고 만다. 트릿트는 강아지에게 뭔가를 가르칠 때 보상으로 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에게 간식을 주듯이 하루에도 몇 번씩 트릿트를 준 것이다. 딴에는 좋은 주인이 되려고 동물 마트에 가면 녀석이 좋아할만한 트릿트를 부지런히 사 날랐다. 그리고 지금 녀석의 식습관을 이렇게 망쳐놓고 말았다.
   퇴근해서 온 남편은 먼저 코코의 밥그릇을 본다.
   “괜찮을까?”
   “조금만 더 기다려 봐.”
   하지만 속은 점점 타들어갔다. 버릇 고치려다 강아지 잡겠다. 안쓰럽다. 이틀 밤은 굶길 수 없다. 잠자기 전에 무엇이든 먹여야 한다. 절박한 심정으로 코코를 안고 애원하듯 말해 본다. 녀석도 알아들었다는 듯 귀를 쫑긋이 세우고 고개까지 갸우뚱거리면서 듣고 있다.
   “아이 노, 아이 노, 코코 이즈 어 굿 보-이! 츄라이 잇. 냠냠얌, 코코 이즈…….”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했던가? 결국, 사료 위에 치킨 살을 몇 점 얹어주었다. 내 얼굴을 힐끗 한번 쳐다보더니, 기다렸다는 듯 치킨뿐만 아니라 밥그릇에 담긴 사료를 순식간에 먹어 치운다. 코코가 밥알을 우두득 우두득 씹는 동안 숨도 안 쉬고 기다렸다. 혹 먹기를 멈출까 봐서. 밥알 씹는 소리가 이처럼 행복하게 들리다니, 부모는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다는 말을 이 나이에 처음으로 실감한다.
   배가 불러 기분이 좋아진 녀석은, 내 옆 침대 위에 벌렁 누워 애교를 부린다. 사랑을 담아 배를 긁어주면서 혼자 중얼거려 본다. 강아지 부모 되기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사람 부모 되기는 말해서 무엇하랴. 잘못 길들인 어리석은 주인 때문에, 애꿎은 녀석만 힘들게 했나 보다.

 

 

김정숙  -----------------------------------------
   일본 니혼대 예술학부 문학박사.  제5회 시애틀문학상 수필부문 가작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