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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0월호, 세상마주보기] 신발에 대한 명상 - 류수미

신아미디어 2014. 1. 28. 08:57

"짝을 맞춰 늘어선 신발들이 가족의 얼굴처럼 정겨워 보인다. 마치 오늘 자기들이 다녀온 곳이 어디였는지 도란도란 하루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발에 맞게 적당하게 늘어나고 해지고 먼지 묻은 신발들에서 저마다 분발했던 하루의 모습이 보인다. 다섯 식구가 하루 동안 걸어온 거리를 이으면 얼마만큼이나 될까! 종종거리며 서두르기도 하고, 주뼛거리며 주저하기도 했을 발걸음을 생각해 본다. 내일부터라도 성큼성큼 거침없는 걸음걸이로만 걸었으면 좋으련만 사람 사는 일이 어디 그렇게만 된다던가! 문을 닫고 발에게도 신발에게도 길었던 하루를 접는다."

 

 

 

 

 

 

 

 신발에 대한 명상      류수미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에 들어선다. 다섯 식구의 신발이 와글와글 자리다툼이 치열하다. 신발장 밖으로 나와 있는 신이 너무 많다. 막내는 급하게 들어왔는지 신발 한 짝은 현관문 앞에, 다른 한 짝은 내 슬리퍼 위에 엎어져 있다. 운동화를 좋아하는 둘째의 고만고만한 운동화들도 각각 다른 색깔을 뽐내며 현관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현관은 가족의 얼굴이다. 깔끔하게 정리가 돼 있고 가지런히 놓인 신발이 있는 현관은 그 집에 대한 인상을 좋게 한다. 커다란 사이즈의 운동화가 있는 집엔 장성한 아들이 있고, 앙증맞은 아기 신발이 있는 집엔 어린아이가 산다. 굽이 닳은 신사화를 보면 바쁜 가장이 떠오르고, 점잖은 힐을 보면 안주인의 모습이 짐작된다. 뾰족구두의 날렵한 디자인만 봐도 신발주인의 면면을 가늠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보았다. 혼자 사는 여주인공이 남자구두와 운동화를 호신용으로 현관에 내놓는 장면이었다. 일인가구가 많아지고 있는 요즘 배워볼 만한 지혜인 것 같다. 세상이 험악하다 보니 혼자 집에 있을 때 택배나 우편물이 오면 덜컥 겁이 날 때가 있다. 이럴 때 현관에 남편의 신발이라도 있으면 조금 위안이 된다.
   신발은 패션의 마침표다. 예쁘게 화장을 하고 머리모양을 다듬고 좋은 옷을 입어도 신발을 잘못 신으면 옷발이 살지 않는다. 그날 모임의 성격에 따라 옷차림에 맞는 신발을 골라 신어야 한다. 신발을 잘 신어 팔자를 고친 신데렐라 같은 행운의 주인공이 있긴 하지만 내겐 신발 때문에 곤란했던 기억이 더 생생하다.
   어느 날, 제법 높은 구두를 신고 출근을 했다. 평소 부담스러워서 사놓고 신지는 않던 구두였다. 그날따라 직장에서 외근을 나갈 일이 있었고, 주차가 어려워 버스를 이용했다. 그래서 평소보다 좀 많이 걸었다. 구두가 신장 안에서 혼자 닳고 있었는지 날씨가 더워 그랬는지 갑자기 밑창이 몽땅 흘러내려 덜렁거렸다. 간신히 약속장소에 도착하여 회의를 마쳤으나 진땀깨나 흘려야 했다. 약속시간에 늦은 것은 물론이요, 회의 중에도 신발에 신경이 쓰여 집중이 되질 않았다. 마침 그 사무실에 근무하는 분 중, 나와 사이즈가 맞는 분이 여분의 신발을 갖고 있어 그것으로 바꿔 신을 수 있었다. 창피한 것은 물론이요, 나중에 신발을 돌려주려고 재차 시간을 만들어 방문하느라 번거로웠던 기억이 있다.
   신발은 때로 배반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남자친구가 입대하는 날, 훈련소까지 배웅을 나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며 눈물을 흘리던 그녀가, 하루가 멀다고 매일같이 달달한 안부 편지를 띄우던 사람이 제대도 하기 전에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것은 옛날 얘기고, 요즘은 군대에서 군화를 거꾸로 신어서 여자를 울리는 나쁜 남자들이 더 많다고 한다.
   신발은 주인과 하루를 함께한다. 바닥과 인체 사이에서 체중을 지탱한다. 종일 끌려 다니다 현관에 와서야 편히 쉴 수 있다. 드라마 속 여자가 내놓은 남자 신발은 주인이 없으니 외출을 할 수가 없다. 현관을 지키는 게 유일한 제 소임이다. 아침저녁으로 제 주인이 현관을 드나들 때 잠시나마 바깥바람을 쐴 수 있다.
   핸드백을 내려놓고 신발을 정리한다. 엎어져 있는 신발을 바로 놓고 짝을 맞춰 신발장을 열어 정리한다. 다섯 식구의 신발이 용도에 따라 참 많기도 하다. 구두, 운동화, 샌들, 등산화, 슬리퍼 등 모두 합쳐 백 켤레는 될 듯싶다.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외출하기 쉽도록 돌려놓고 바라본다. 신발에서 놓여난 발도 좋다며 아우성을 치는 것 같다.
   짝을 맞춰 늘어선 신발들이 가족의 얼굴처럼 정겨워 보인다. 마치 오늘 자기들이 다녀온 곳이 어디였는지 도란도란 하루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발에 맞게 적당하게 늘어나고 해지고 먼지 묻은 신발들에서 저마다 분발했던 하루의 모습이 보인다. 다섯 식구가 하루 동안 걸어온 거리를 이으면 얼마만큼이나 될까! 종종거리며 서두르기도 하고, 주뼛거리며 주저하기도 했을 발걸음을 생각해 본다. 내일부터라도 성큼성큼 거침없는 걸음걸이로만 걸었으면 좋으련만 사람 사는 일이 어디 그렇게만 된다던가! 문을 닫고 발에게도 신발에게도 길었던 하루를 접는다.

 

 

류수미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