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욕망의 끝이 어디쯤인지는 알 수가 없다. 늘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나가기를 갈망하기 때문일까.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이상향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토피아란 아무 데도 없는 나라라는 의미가 아닌가. 그것은 하나의 완벽한 사회이면서, 궁극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사회라는 뜻을 동시에 갖고 있음이다."
나는 지리산으로 가야겠다 - 백남오
나는 아무래도 지리산으로 가야겠다. 살아갈수록 외로움만 더해지는 현실을 뒤로하고 지리산으로 가야겠다. 심장의 박동소리는 조금씩 약해지고 다리가 휘청거릴지라도 지리산으로 가야겠다. 그곳에 가면, 미움도 사랑도 묻어둔 채 적요함만 있어도 좋다. 허위허위 달려온 인생길, 숱한 그리움과 젊음의 뒤안길을 서성인 지리산에서, 짙붉은 단풍잎처럼 흩뿌려지고 싶다.
나는 지리산을 떠날 수가 없다. 햇빛 화사한 어느 해 10월, 제석봉의‘제석단’에서 이제 다시는 지리산에 올라서는 안 된다고, 이제는 지리산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더 이상의 비경을 들추어서는 안 된다고, 소리치며 맹세했건만, 아무래도 지리산을 떠날 수가 없다.
세석고원 위로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이 그리워서도 아니고, 얼어붙은‘한신폭포’의 견고한 고독의 처연함 때문도 아니다. 나는 아직도 지리산에 기대어, 지리산을 통하여, 하고 싶은 수많은 얘기들이 몸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음을 숨길 수가 없다.
나의 젊음은 지리산을 떠나서 말할 수는 없다. 40대, 평생 여고 국어교사로 만족하려던 의지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들끓는, 뿌리를 알 수 없는 욕망의 불덩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 뜨거움을 분출할 돌파구는 좀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삶은 시들하고, 의기소침해지고, 직장생활의 활력마저 잃고, 끝없는 질곡 속으로 떨어진다. 깊은 허무주의자로 빠져버린 것이다. 20대 때 하지 못한 문학이란 열병을 그때서야, 앓고 있었다는 것이 옳은 판단일지도 모른다.
그 혼란스러운 소용돌이에서, 지리산을 만났다. 20여 년,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광활한 지리산정을 온몸으로 헤매고 다니며 무수한 봉우리와 능선, 깊은 역사의 골짜기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게 되었다.
지리산은 큰 산이었다. 구차한 일상을 잊게 해주는 정신과 역사가 있었고, 황홀한 이상세계로의 초대도 해주었다. 영원히 안착해야 할 피안의 세계와 가야 할 운명의 길까지도 그 속에 있음을 깨달았다. 지리산은 모든 현실적 욕망과 허무주의를 누를 수 있는 힘이었다. 무엇보다도 내 문학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늘, 밤잠을 마다한 이른 새벽에, 지리산을 오를 수 있게 한 힘이었다. 또한, 죽음과도 맞닿아있는 문학과 산을 향한 욕망이기도 했다. 지리산은 그렇게 은혜롭고 치열하게,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주었다.
‘선유동’의 봄은 처음도 없는 애상감으로 밀려와 마음속 끝없이 침잠하며 내 안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러면서 생강나무의 노란색과 아득하고 아련한 봄날이 청학동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상상하게 되었다. 한여름 ‘칠선계곡’을 오르며 모든 욕망을 진심으로 버려야만 했다. 오직 물아일체, 무욕의 텅 빈 마음으로 한발 한발 앞으로 가야만 하는 행동만이 실존이며, 머릿속에 있는 그 어떤 관념도 빈 껍질임을 배웠다.
‘하봉일대’의 가을은 최후의 비경이었으며 죽어서도 묻어둘 그리움의 뿌리가 되어 손짓해 주었다. 죽어 영혼이 있다면 그곳을 어찌 기웃거리지 않으며, 배회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충분히 보여 주었다. 겨울종주 길에서 심한 육체적인 고통을 통해, 정신적 풍요를 얻는다는 옛 선사들의 얘기에 깊은 회의감을 느끼면서도, 삶 속의 아픔들과 무한한 자유를 향한 간절한 소망을 혹독한 산행을 통하여 학대함으로써 억누르고자 하는 사실도 깨달았다.
‘천왕봉’의 일출을 위해 새해 신새벽, 천 리 길을 달려와 영봉을 오르는 장엄한 행렬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얼마나 감격했던가. 그 같은 열정이 개인은 물론 역사가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믿음 때문이다.‘반야봉’의 낙조는 거인의 침몰이 주는 대가로 거대한 용광로가 서서히 가라앉는 황홀한 세계였으며, 그 모습을 보며 나의 삶도 새털구름 하나 정도는 빨갛게 물들이고 싶었다.
‘영원령’ 가는 길에서 태곳적부터 불던 영원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한 겨울이라도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바람을 맞고 싶었다. 머물 수가 없는 곳, 부처님도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만 하는 ‘상무주암’에서는 세상에 머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영감을 얻었다. 부모도, 자식도, 우정도, 영원을 다짐했던 사랑도 모두가 떠나간다는 진리를 알았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변하는 것이 아니라 머물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의 떠남 앞에 눈물 흘리고, 가슴앓이를 하고, 통곡하고, 원망하는 것은 부질없는 인간의 논리일 뿐이다.
신라 화랑들의 말 달리던 평원, ‘세석고원’은 민족혼이 살아 숨 쉬는 역사와 정신의 현장이었다. 하늘이 울어도 지리산은 울지 않는다는 남명 선생의 목소리가 은은히 묻어났고, 선비들의 서릿발 같은 기상이 하늘을 찔렀다. 또한 삶에 지쳐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를 그리워했다. 세석 같은 친구를.
이제, 삶의 과정에서 이유 없는 억울함을 당할지라도, 현실을 향해 분노가 치솟아 오를지라도, 가슴이 너무 아파 통곡을 하고 싶을 때도, 그리움에 지쳐서 온몸이 흔들려도 지리산이 주는 위안과 은혜로움으로 스스로를 달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 욕망의 끝이 어디쯤인지는 알 수가 없다. 늘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나가기를 갈망하기 때문일까.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이상향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토피아란 아무 데도 없는 나라라는 의미가 아닌가. 그것은 하나의 완벽한 사회이면서, 궁극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사회라는 뜻을 동시에 갖고 있음이다.
‘토머스 모어’는 모든 종교를 관용하고, 자연스러운 쾌락을 추구하며, 재물과 영토를 늘리기 위한 전쟁을 혐오하며,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성에 의해 운영되는 세계를 유토피아라 했다. 그것 역시, 존재할 수 없는 허상이 아닌가.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지리산에서 내 문학의 유토피아를 찾고자 하는 또 다른 욕망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영원한 방랑자로 떠도는 몸이리라. 나는 아무래도 지리산으로 가야겠다. 그리운 지리산이 어머니의 목소리로 부르고 있다.
지리산 길 위에서 내 삶의 진정성을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백남오 ------------------------------------------------
≪서정시학≫ 등단. 2011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겨울밤 세석에서> 수록. 2013년 ≪고등학교 문학≫(지학사) 교과서 공동저자. 수필집: ≪지리산 황금능선의 봄≫, ≪지리산 빗점골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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