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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문학 2013년 가을호, 편집데스크] 우리 말·글·얼의 ‘지킴이’ - 박재화(시인·두원공대교수·본지 편집위원)

신아미디어 2014. 1. 6. 08:24

"우리 말·글·얼을 아름답게 가꾸는 많은 작품들을 〈인간과문학〉에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프랑스말과 프랑스문학을 지키는 위대한 기관이라 하던데, 저희 〈인간과문학〉이 한국어와 한국문학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한 터전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우리 말·글·얼의 ‘지킴이’     /  박재화(시인·두원공대교수·본지 편집위원)

 

 

   언젠가 “추석이브의 낮달”이란 한심한 제목의 시를 본 적 있습니다. 우리말 ‘한가위’를 쓰지 않은 것도 거슬렸고요. ‘작은추석’이란 말도 모르시는 분이었나 봅니다. ‘이브’라면 밤이거나 저녁이었을 텐데 ‘낮달’이라니요! 그런데 문인들이 쏟아내는 글 가운덴 그보단 덜하지만 잘못된 표현이 적지 않게 보입니다. 특히 시/노래에 있어서 그런 모자란 표현은 우리의 민족혼과 민족정서를 해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먼저 낱말공부부터 제대로 한 뒤 글을 발표했으면 하는 것이지요. ‘피로해소/원기회복’이라 할 것을 ‘피로회복’이라 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과식은 비만의 주범/원인’이라 할 것을 ‘과식은 비만의 적’이라 한다든지 ‘과묵한 침묵’이란 어색한 표현, 그리고 ‘껍질’과 ‘껍데기’를 혼동하는 등의 사례가 너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실/진실에 어긋나는 표현은 금물일 것입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민들레 홀씨 되어’ ‘작약나무’ ‘이름 없는 들꽃’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땅 그늘 속’ 등의 잘못된 표현이 사람들을 얼마나 오도하고 있는지요!
   걸핏하면 ‘일제 36년’이라 하는 것도 못마땅하고(실제론 35년간), ‘해방’이란 말도 선열들의 주체적이고도 집요했던 독립운동을 간과한 것이니 ‘광복’이라 표현했으면 합니다. 그게 우리 얼을 지키고 가꾸는 한 길이요, 한국 문인의 기본적 책무 아니겠습니까!
   우리말본에 어긋나는 표현이 넘치는 것도 가슴 아픕니다. ‘아주 예뻐요’ 할 것을 ‘너무 예뻐요’ 한다든지 ‘되다’를 굳이 ‘되어지다’로 쓴다든지 ‘나의 살던 고향’ ‘낯설은 얼굴’ ‘하늘을 닮아있다’…… 등의 사례가 그야말로 〈너무〉 많이 보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란 표어를 볼 때마다 ‘아름다운 사람이 머문 자리는 아름답습니다’로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기만 합니다.
   나아가 맞춤법, 띄워 쓰기도 준수하고, 될 수 있으면 외국어 대신 우리말을 캐내고 보듬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뜻의 말이 있을 때에는 한자말보다는 토박이말을 쓰고, 특히 왜말은 피하는 게 문인의 도리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 같은 반성 위에 우리 말·글·얼을 아름답게 가꾸는 많은 작품들을 〈인간과문학〉에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프랑스말과 프랑스문학을 지키는 위대한 기관이라 하던데, 저희 〈인간과문학〉이 한국어와 한국문학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한 터전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