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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3년 9월호, 다시 읽는 좋은수필] 연어와의 여행 - 움베르토 에코

신아미디어 2013. 12. 20. 08:49

"문제의 연어는 상해서 먹을 수 없었고, 나는 우스운 이탈리아 투숙객이 되어 버렸다."

 

 

 

 

 

 

 

 연어와의 여행      움베르토 에코

 

 

   내가 스톡홀름을 여행할 때의 일이다.
   그곳에서 훈제연어 한 마리를 샀다. 비닐로 깔끔하게 포장이 잘 되어 있고, 엄청난 크기에 비하여 값이 아주 헐했기 때문이다.
   다만 찬 곳에 보관해야 한다는 게 문제였으나 내가 묵은 호텔은 아주 고급호텔로 냉장고가 아주 잘되어 있었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호텔 직원 모두가 인도 사람이었다. 그것이 두 번째 문제였다.
   보통 호텔과는 다르게 이날, 내가 투숙한 호텔의 거대한 냉장고에는 고급 위스키, 진, 드램비(위스키와 향초의 추출액으로 만든 술), 쿠르부아지에(코냑), 그랑 마르니에(꼬냑과 오렌지 껍질로 만든 술), 칼바도스(능금주를 증류하여 만든 프랑스 술) 등 작은 양주 50개, 페리에 생수 8병, 비텔로아제 두 병 , 에비앙, 뵈브 클리코(유명한 샴페인), 스타우드(독한 흑맥주), 페일 에일(알콜 함유량이 적은 맥주), 네덜란드 맥주 캔, 독일 맥주 캔, 백포도주, 땅꽁, 아몬드, 크레커, 초콜릿, 엘커셀치(미국산 진통제) 등등 지나치게 많이 가득 들어 있었다.
   연어를 넣어 둘 자리가 전혀 없었다. 궁리를 하다가 경대의 널찍한 서랍을 발견했다. 무릎을 탁 치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냉장고의 내용물을 모두 그 서랍에 옮겨 놓고 연어를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흡족했다.
   다음 날 외출했다가 오후 4시에 돌아와 보니, 연어는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고, 서랍 안에 물건은 그대로 있었으며, 냉장고에는 원래대로 고급 제품이 그대로 꽉 들어차 있었다. 데스크에 전화해서 설명했으나, 인도인 직원이 문제였다. 그러나 나는 어쩌랴 싶어 다시 다른 서랍에 새로운 내용물을 모두 꺼내 또 다른 서랍에 집어넣고 연어를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이튿날 다시 외출했다 돌아오니, 연어가 다시 탁자 위에 놓인 채 약간 상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두 번째 서랍도 그대로 물건이 있는 채로 냉장고는 다시 새로운 물건으로 채워졌다.
   객실 담당자를 불러 이야기했으나 전혀 통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숙박비를 계산하는 데, 천문학적인 금액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틀 동안 그 많은 술과 땅콩, 아몬드를 혼자 다 먹은 게 되어 버렸다.
   나는 아무리 이해시키려 애썼지만 인도인 직원은 컴퓨터 기록장만을 들이댔다. 내가 화가 나서 이태리 말로 Avvocato(아보카토; 변호사)를 불러 달라고 하자 옆에 있던 인도인 종업원이 열대 과일인 Avocado(아보카도; 망고) 한 개를 가져다주었다.
   문제의 연어는 상해서 먹을 수 없었고, 나는 우스운 이탈리아 투숙객이 되어 버렸다.

 

 

 

움베르토 에코  ------------------------------------------

   움베르토 에코님은 이탈리아 알렉산드리아 출생, 기호학자, 언어학자, 철학자, 소설가, 저서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