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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문예 2013년 여름호, 시] 즐거운 사기꾼 외 1편 - 복효근

신아미디어 2013. 12. 13. 00:58

계간문예』와 함께 복효근님의 시 2편이 독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봅니다.

 

 

 

 

 

 

즐거운 사기꾼  외 1편      /  복효근


로즈밸리 하루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는 오지 않고 언제 올지도 몰라
좀 걷자 하는데
허름한 노인이 다 낡은 당나귀 수레에 태워주겠단다
탔더니 1인당 8달러를 내란다
3달러까지 깎아서 좋아라
당나귀 엉덩이 말라붙은 똥냄새 맡으며 가는데
당신네들 운이 좋단다
이 수레를 만났으니 망정이지
낯선 길에 강도도 만날 수 있고
곳곳에 소매치기 사기꾼들 널려있단다
사진도 찍어주면서 찍혀주면서
시골풍경 만끽하라고 느릿느릿
비포장 길만 골라 덜컹대면서 간다
노을이 타올라 당나귀 콧김까지 붉었다
아내와 딸아이가 잘 익은 사과빛으로 출렁였다
가다보니 우리가 탔어야 할  버스가 저만치 쌩 달려간다
숙소에 돌아와 자랑하였더니
그 사기꾼 노인네 버스기사보다 수입이 좋단다
다시 그 곳에 간다면
5달러를 더 주고라도
더 한번 그 늙은 당나귀 수레를 타고 말겠다

 

 

 

 

 

새싹의 수인(手印)


세상 밖으로
까치발을 딛고 고개를 내민들
시궁창보다 더 나을 것도 없는 것을
개수대 수채에 호박씨 두 알이 싹을 틔웠다
엊그제 학교 텃밭에 심으려고
물에 불리다가 쭉정이라고 걷어 내버린 것이다
보라 생명이란
생에 대한 의지란 때로 이렇게 위대하다고
사진을 찍어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생에 대해 아는 체한다
그러면 저 대책 없는 생명은 또
니가 시궁창에 빠져보았나
생은 또 얼마나 치욕적인지 알고나 있나
물어올지도 모르지
그러니
아프리카 내전 고아 사진을 보며
생의 의지를 애기할 때처럼이나
이 훈화는 또한 비루한 바가 없지 않아서
나는 그저
새싹 돋는 떡잎은 늘 기도하는 손 모양을 닮았다고
아무 것도 못하고 나타나지도 않은 신처럼
비유법을 쓰기도 하였다

 

 

 

 

복 효 근  -------------------------------------------

   남원 출생.  1991년 계간 ‘시와 시학’으로 등단.  편운 문학상 신인상,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 《마늘촛불》 《따뜻한 외면》,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