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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3년 8월호, 신작수필 10인선] 한 사람과 악수를 할 때 - 이향아

신아미디어 2013. 11. 12. 08:14

"‘겸사겸사’라는 말이 경제적인 것 같지만 실속도 없고 깊이도 없다. 한 남자와 연애 중인 사람이 다른 남자에게도 애매하게 가능성을 보인다면 그것은 부도덕이다. 그의 연애는 머지않아 깨질 것이고 틈틈이 만나던 다른 남자와도 순조롭게 진행될 리가 없다. 한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에는 시선과 마음도 함께 맞추어야 한다.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손은 이쪽에 두고 말은 저쪽과 하는 행위, 그것은 상대방을 너무 소홀하게 대접하는 행위다."

 

 

 

 

 

 한 사람과 악수를 할 때     /  이향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죠?”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쯤 만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 틈에서 건성으로 지나치는 게 보통이다. 오늘처럼 정식으로 마주서서 손을 잡고 흔들기는 몇 달 만인가?
   그는 등산클럽의 총무다. 나도 몇 번 등산을 따라갔었는데 목요일로 요일이 바뀌는 바람에 문학반 행사와 겹친다. 어쩔 수 없이 빠지면서도 마치 그를 멀리하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속으로 늘 미안하다.
   사실 늘 만나는 사람과는 할말이 많지만 어쩌다가 만나면 화제가 궁해진다. 근황을 알 수 없으니 겉도는 안부만 반복할 뿐이다.
   우리는 그래도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의 손이 아직 내 손을 붙잡고 있고 나는 이런 때 딱 어울리는 말을 찾아 더듬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엉뚱한 소리를 했다.
   “어제는 어디 갔었어? 아무리 연락해도 안 되던데?”
   어리둥절한 나는 잡혀있는 손을 풀고 둘러보았다. 바로 내 등 뒤에 서 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는 내 손을 잡고 흔들면서 눈으로는 실내를 훑어보고 입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태도가 불쾌하였다.

 

   광주에서 살 때였다. 서울에서 나를 만나러 온다는 친구가 있었다. 한 사흘 묵어가겠다기에 나는 나름대로 준비에 바빴었다. 집 안은 모처럼 깨끗해지고 친구를 맞은 식탁이며 베란다도 갑자기 화려해졌다. 그런데 친구는 바로 이튿날 아침, 부랴부랴 풀었던 짐을 다시 쌌다.
   그는 나만을 목표로 온 것이 아니었다. 나보다도 긴히 만나야 할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에게 연락을 했더니 오늘 함께 남해안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큰 배신을 당한 것처럼 황당하였고 며칠 동안 수선을 떨었던 것이 누구보다도 남편 보기에 창피했다.
   그 뒤로 나는 그 친구를 멀리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한 가지 그 일에 정성을 쏟을 때라야 아름답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방식으로는 어느 쪽에도 열정을 담을 수 없다.
   ‘겸사겸사’라는 말이 경제적인 것 같지만 실속도 없고 깊이도 없다.
   한 남자와 연애 중인 사람이 다른 남자에게도 애매하게 가능성을 보인다면 그것은 부도덕이다. 그의 연애는 머지않아 깨질 것이고 틈틈이 만나던 다른 남자와도 순조롭게 진행될 리가 없다.
   한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에는 시선과 마음도 함께 맞추어야 한다.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손은 이쪽에 두고 말은 저쪽과 하는 행위, 그것은 상대방을 너무 소홀하게 대접하는 행위다.
   나는 돌아서면서 한마디했다. 그에게는 들리지 않게, 속으로
   “무례하고 몰상식하군.”

 

 

 

이향아  ---------------------------------------

   이향아님은 시인. 수필가. 충남 서천 출생. 《현대문학》으로 등단,  호남대학교 교수, 한국사이버대학교 초빙 교수 역임.  저서 《물새에게》, 《불씨》, 《강물연가》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