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2019년 6월호, 제212호 신인상 수상작] 민들레의 노래 - 고미자
"밤늦은 시간에 일을 마치고 들어온 남편에게 민들레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남편도 모처럼 웃음을 띠며 TV를 켠다. 뉴스에서 삼십 대 여인이 다섯 살 아이를 안고 투신했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입버릇처럼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견디면 되는 것을, 견디다 보면 살게 될 것을, 힘겹게 날아가면 될 것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민들레의 노래 - 고미자
이른 아침 봄 햇살이 따습다. 나비의 춤사위로 살랑거리는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대정 읍내에 있는 초등학교에 오카리나와 동화 구연 봉사 수업을 가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막 출발하려는데 주차장 모퉁이에 시선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희미하게 보인다. 조금 더 바짝 다가가 찬찬히 살펴보았다. 배수로에 부끄러운 처녀의 볼마냥 물오른 민들레 꽃봉오리가 눈 맞춤을 하고 있다. 진한 하수구 냄새가 배어 있는 진흙이 민들레 뿌리의 양분인 듯싶었다. 천하일색인 양귀비 못지않은 자태를 드러내며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금이 간 시멘트 바닥에 깨진 틈새로 용케도 뿌리를 내렸다. 연약한 줄기로 꽃을 피우려 몸부림치는 모습이 문득 공통분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들레의 질긴 생명력에 마음이 흔들리고 운전대를 잡은 양손이 떨려온다. 속도계의 바늘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시계추가 되어 이십여 년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가난한 고시생과 평범한 시골 처녀의 소설 같은 연애결혼은 억지 춘향이었는지 모른다. 고시에 처음 응시하면서 낙방하는 순간 포기한다는 다짐을 받고 결혼을 했다. 신혼의 달콤함이란 드라마 속 배우들의 연기일 뿐 나에게는 꿈같은 동화였다. ‘젊고 건강한데 못 할 일이 뭐가 있겠느냐.’ 싶은 나의 오만함도 한몫했을 거다.
궁여지책으로 직장 다닐 때 배운 꽃꽂이를 의지하여 꽃가게를 시작했다. 가게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을까? 성산읍에 큰 행사가 있어 여러 개의 화환 주문이 들어왔다. 다행히 화환은 남편이 배달해 줄 수 있다고 했다. 6월의 장마라 세상을 삼킬 듯한 폭우와 천둥번개가 춤을 추었다. 폭우 속에 배달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의 일과처럼 부부싸움을 해서 혹시 ‘남편이 잘못 된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은 무서운 공포로 숨통을 조여 왔다.
실종신고 나흘째, 한라산 둘레 계곡에서 두 동강이 난 트럭을 시댁 삼촌이 찾아내었다. 빗길에 미끄러진 남편은 의식과 무의식 속을 헤매며 3박 4일을 버티었다고 한다. 몇 번의 대수술 끝에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아야 했다. 거동을 할 수 없는 남편은 내 시선을 피하며 사촌동생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치였다. 심상치 않아 보였다.
며칠 후 들려오는 소리는 더욱 청천벽력이었다. 생활비도 보태지 않던 남편이 증권에 손을 대 몇 억의 부채를 숨기고 있었다. 돈 좋아하고 욕심 많은 마누라에게 일확천금을 갖다 주고 싶었다는 변명을 한다. 억장이 무너졌다. 돈을 좋아하지 않겠다고, 욕심을 내지 않겠다고 피울음을 토해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틀어지기 시작한 운명은 나를 더욱 깊은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긴 투병 끝에 다음 치료를 위한 수술 날짜를 예약하고 남편은 임시 퇴원을 했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염없이 반복했다. 허물 위에 허물이 덧나고 그 위에 상처가 돋아나고 있었다. 걸을 수조차 없이 체중은 줄었고, 삼십 대 초반인 나는 이미 팔순 노파가 되어버렸다. 우울증으로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혼신을 부여잡고 비로소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 속을 헤맸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쓰러지고 태풍이 불면 버티고 서 있다가 넘어졌다. 눈과 비가, 바람과 태풍이 언제 어떻게 오는지 알 수 없듯이 내 인생도 꿈꾼 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눈이 그치고 비가 멈춘다는 것을 알았다. 바람이 자고 태풍이 지나가야 마침내 일어설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유년 시절에 친구들과 놀다 때를 놓쳐서 저녁을 굶은 적이 있었다. 끼니를 굶어도 행복했다. 처녀 시절엔 몸매 관리를 한다고 일부러 끼니를 걸렀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야 하루 세끼를 아이들에게 챙겨준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도 살아야 했다. 오늘도 주문을 건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활짝 웃는다. 매일 두 끼만 먹고서라도 책을 볼 수 있다면 한 끼는 나누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때부터 두 아들의 손을 잡고 봉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생업인 가게 문을 자주 닫는다고 남편이 투덜거릴 때면 귀를 막고 다녔다.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며 산다는 것은 이 세상의 작은 생명도 소중하게 여기는 겸손함을 가르쳐 주었다. 내 작은 손길로 누군가가 행복할 수 있다면, 내 아픔과 허물이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오늘의 봉사 수업이 내 인생의 전부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수업 내내 아침에 보았던 민들레가 궁금했던 터라 수업을 마치자마자 단숨에 달려갔다. 예쁘게 꽃을 피운 민들레는 간들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팔랑나비 한 쌍이 꽃방석에 앉아 정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나도 민들레 앞에 살포시 앉았다. 거칠고 험한 땅에서 잘 피어났다고 속삭여 주었다. 어둠의 시간을 견디어 햇살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이 장하다고 어루만져 주며 좋아하는 민요 한 대목을 불러주었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날 저물면/ 꽃에서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면/ 잎에서라도 자고 가자.”
어디론가 온 힘을 다해 날아가는 나비의 몸짓은 눈부시도록 찬란하다. 오, 이 세상을 건너는 것이 너는 두렵지 않니. 그래, 나비야, 가자. 어디론가 날아가야 하는 일이 힘겹지 않을 때가 있던가. 저만치 힘들게 혼자 떠돌고 있어도 내 그림자는 끝내 나를 버리지 않고 지켜주고 있지 않던가.
밤늦은 시간에 일을 마치고 들어온 남편에게 민들레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남편도 모처럼 웃음을 띠며 TV를 켠다. 뉴스에서 삼십 대 여인이 다섯 살 아이를 안고 투신했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입버릇처럼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견디면 되는 것을, 견디다 보면 살게 될 것을, 힘겹게 날아가면 될 것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고미자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재능 시낭송가. 색동 동화 구연가, 재능 시낭송협회 제주지회장, 제주 장애인 종합복지관 봉사회 팡돌회 회장, 제주 수필 아카데미 회원, 제주 무용예술원 예닮 회원, 백록민속예술단 단원, (사) 한국 전통 꽃꽂이 하경회 사범, (사) 색동회 제주지회 회원, (사) 한국오카리나 팬플룻 총연합 제주 동부지부 회원, (사) 제주어보전회 회원.
당선소감
좋은 소식에 기쁘고 감사드립니다.
6월이면 아리던 가슴에 살결 고운 민들레가 피었습니다. 드러내기엔 용기가 필요했고 한편으로는 감추고 싶은 허물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봉사를 다니면서 따뜻한 희망의 빛을 보았습니다. 작은 생명의 소중함과 모든 사물을 귀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겸손을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새삼 알았습니다.
하늘과 바다 지킴이로 군 복무중인 두 아들과 묵묵히 지켜봐주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남편 사랑합니다. 초심으로 배우고 나누며 살아가겠습니다.
아낌없는 격려로 지도해주시는 교수님과 문우 선배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항상 응원해주는 가족, 친구 덕분입니다. 심사위원님과 수필과비평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