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월간『수필과비평』[2019년 4월호, 통권210호 I 세상 마주보기] 옹기 항아리 - 장미자

신아미디어 2019. 5. 29. 20:20

"집으로 돌아와 옹기항아리를 보는 내 눈이 편안해졌다. 저 자리에 가만히만 있어도 언젠가는 어머니의 유품이 될 물건들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필요에 의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들도 있으니까. 어머니의 손길과 눈길이 스며 있는 항아리를 만지며 어머니를 그리워할 때가 있을 것이다. 괜히 코끝이 매워왔다. 시린 겨울을 견디고 꽃을 피운 매화 한 가지 항아리에 꽂아야겠다."


 






   옹기 항아리     -    장미자


   베란다 한쪽에 옹기종기 항아리들이 앉아있다.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을 받고 하릴없이 꾸벅꾸벅 졸고 있다. 유리창에 감나무도 보여 시골에 온 듯한 착각을 잠깐 일으킨다. 아파트의 차가운 사각 콘크리트 속에 갇혀 있는 항아리들은 유리문을 활짝 열어야만 겨우 간접적으로 햇볕과 바람을 맞을 수 있다.
   이것들은 친정집에서 데리고 왔다. 내가 예쁘다고 욕심을 내자 어머니께서 내주셨다. 어머니가 쓰실 날보다 내가 요긴하게 쓸 일이 많을 거라 생각하셨을 게다. 항아리 안은 텅 비어있다. 무턱대고 가지고 와서 거기에 무엇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베란다 한쪽 귀퉁이에서 이런저런 살림살이들에 치여 눈에 띄지도 않는다. 겨우 사용한다는 것이 옹기뚜껑을 접시 삼아 음식을 몇 번 담아보았다. 사기 접시와는 달리 왠지 옹기 뚜껑으로 음식을 담으면 운치도 있고 건강한 맛이 날 것 같았다.
   반질반질하며 맵시가 제법 있는 옹기들, 윤기 없이 투박하게 생긴 옹기들, 뚜껑이 깨져 요즘 나온 신식 유리 모자를 쓴 여남은 옹기들은 우리 집 식구 개성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들 중 내 마음에 쏙 드는 옹기는 윤기가 없는 투박한 옹기다. 생각해보니 그 옹기에는 작년에 개복숭아 효소를 담그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찾아가며 어설프게 담가 보았다. 동글동글한 항아리 속에 개복숭아와 설탕을 켜켜이 넣으며 맛있게 발효가 되기를 빌었다. 시시때때로 저어 주며 정성을 들였다. 하지만 단맛을 맡고 날아온 초파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냉장고로 옮겨야 했다.
   요즘 웬만한 발효 음식들은 냉장고도 모자라 김치냉장고에 저장한다. 그곳은 콘센트 하나만 꽂으면 땅속 온도와 같이 유지되고 벌레 꼬일 일도 없다. 특히 옹색한 아파트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이 해오던 습성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나 보다. 아파트에서도 간혹 앞 베란다에 옹기항아리 몇 개가 된장, 고추장 냄새를 풍기며 익기도 한다. 뭇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천연덕스럽게 냄새를 풍기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릴 적 외할머니 집 장독대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었다. 할머니 손길로 쓰다듬어진 항아리들은 항상 반질반질했다. 된장, 고추장, 간장을 비롯해 말린 시래기와 소금에 절인 생선들이 그 안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고구마줄기김치를 담근 항아리를 잊을 수 없다. 외할머니가 담그신 통통한 고구마줄기김치가 시금시금 익어갈 즈음이면 나의 밥맛은 살아났다. 신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 김치가 익을 때쯤이면 입에 침이 고였다. 놀다가도 심심하면 옹기항아리 뚜껑을 열고 고구마줄기김치를 꺼내 먹곤 했다. 뽀글뽀글 고구마줄기김치가 익어가는 소리에 옹기항아리 옆을 떠나지 못했다.
   올해도 김장김치를 플라스틱 통에 담아 김치냉장고에 저장했다. 일 년동안 먹을 김치에 가슴이 뿌듯하지만 베란다 한쪽에 있는 항아리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영 불편하다. 옹기 항아리들은 앞으로도 제 할 일을 찾지 못할 것이다.
   오랜만에 식구들과 전통찻집에 들렀다. 현대식 건물 안에 옛 물건들을 모아 인테리어를 멋지게 한 찻집이었다. 한지가 발라진 문짝부터 맷돌, 곡식을 까부르는 키, 서랍장 등 모두 옛 물건들이었다. 서까래에서 뜯어왔음직한 나무들은 탁자와 의자로 다시 만들어졌다. 나무의 묵은 세월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무게가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내 눈에 가장 띈 것은 다양한 모양의 항아리들이었다. 꽃병 역할을 하는 항아리부터 여러 가지 수경식물들을 키우는 항아리들이 많았다. 또 큰 항아리 속에 물을 담아 금붕어도 기르고 있었다. 항아리 위에는 유리가 덮여 금붕어를 구경하며 차를 마셨다. 또 작은 옹기 뚜껑은 화분받침으로 쓰기도 하였다. 모양이 다양한 옹기항아리들이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채 엎어져 있어도 마치 제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는 듯했다. 역시 옹기항아리들은 옛 물건들과 같이 있을 때 더 잘 어울렸다.
   집으로 돌아와 옹기항아리를 보는 내 눈이 편안해졌다. 저 자리에 가만히만 있어도 언젠가는 어머니의 유품이 될 물건들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필요에 의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들도 있으니까. 어머니의 손길과 눈길이 스며 있는 항아리를 만지며 어머니를 그리워할 때가 있을 것이다. 괜히 코끝이 매워왔다. 시린 겨울을 견디고 꽃을 피운 매화 한 가지 항아리에 꽂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