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수필과비평』[2019년 4월호, 통권210호 I 사색의 창] 유품 정리하기 - 장길성
"아내가 수습한 어머니의 유품을 소중히 다루고 있는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러한 어머니의 유품은 언젠가는 소멸할 수밖에 없는 물건이지만, 어머니의 마음이 오롯이 살아 있어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유품 정리하기 - 장길성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는 것은 당연히 산 자의 몫이다. 유품을 정리하고자 꺼내 놓으면 의외로 자질구레한 것들이 많다. 장례 후 혼백魂帛처럼 간단히 불사르는 일이라면 번거롭지도 않으련만, 험하게 다루어도 괜찮은 유품과 고인의 명성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유품을 가려서 정리하는 것은 수고가 만만치 않다. 고인의 유품은 대부분 유족의 손에 의해 정리되고 처분되기 마련이다. 유품 중에는 고인을 기리기 위해 유족이 수습하여 간직하는 것은 그다지 많지는 않다. 고인이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내가 수습한 어머님의 유품은 돌침대 하나, 민무늬 금반지 한 개, 왕소금이 담긴 소금독 두 개 등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남긴 자질구레한 유품을 정리하는 일은 아내가 맡았다. 오랫동안 병치레로 누워 계셨기 때문에 당신이 사용하시던 물건은 어느 정도 미리 정리해 두었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겠다는 아내의 의견에 따라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안방을 병실로 바꾸었고, 침대는 환자를 일으켜 세우거나 눕히는 것이 자동으로 조절되는 전동식 병상으로 바꾸었다
아내가 시부모 있는 집안으로 시집을 온 후, “부모님 안방에 돌침대 하나 놓아드려야겠어요.”라고 해서 부모님이 계시는 안방에 두 분이 넉넉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돌침대를 놓아 드렸었다. 안방을 병실로 바꿀 때에 아내는 오래된 돌침대를 버리겠다는 내 의견을 못마땅해 했다. 아직은 틀만 바꾸면 더 쓸 수 있다면서 약간의 비용을 들여 돌침대의 틀만 바꾸어 우리 방으로 옮겼다. 옮겨놓고 보니 새 침대나 다름없었다. 이 돌침대는 부모님 두 분이 사용했던 것이다. 부모님 두 분이 이 돌침대에서 돌아가셨고 침대 머리판이나 침대 테두리가 오랜 세월 험하게 사용한 흔적이 역력하였는데도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가끔은 어머니의 돌침대에서 포근한 어머니의 품을 느끼곤 하였다.
어머니는 노환과 치매로 장기간 병상에 누워 계셔서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으므로 내의는 그다지 필요치 않았다. 몇 벌 되지 않는 외출복이 옷장에 걸려 있을 뿐이다. 병상에서는 다루기 쉬운 담요만 있으면 되므로 차렵이불도 장롱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내는 어머니가 집착할 정도로 아끼던 옷붙이 중에서 많이 해진 험한 옷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꽁꽁 뭉쳐 내다버렸다. 당신이 집착한 옷들은 지난날 가난으로 몹시 힘들었던 시절을 보내면서 몸에 습관처럼 배었던 옷매무새에나 어울렸던 옷들이었다.
사실 여기까지는 엄연히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단순히 아내의 결정으로 어머니 방의 옷장이나 장롱을 정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내는 늘 옷을 정리하면서 내다버리는 기준을 ‘감동의 여부’에 두었다. 자신을 비롯하여 가족의 옷장에서 옷을 정리할 때 꺼내놓은 옷이 조금이라도 감동을 주지 않는 경우 미련 없이 내다버려도 좋다는 것이다. 사실 감동을 주지 않는 옷이라면 이를 다시 입을 일은 없을 듯하다.
유품을 선택하는 것에도 감동의 여부가 도움이 되겠지만 유족이 돌아가신 이를 기리기 위하여 소중히 여기면서 보존하는 유품이 진정한 유품이겠다. 그 이외의 소소한 유품은 사후 소각으로 정리하게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내는 남의 도움 없이 어머니의 유품을 깔끔하게 정리하였다.
어머니의 치매는 차도 없이 꾸준히 진행되었다. 병원의 처방에 따른 투약이 치매의 진행을 더디게 하였다거나 증상을 호전시킬 기미는 없어 보였다. 더욱이, 시도 때도 없이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섬망증상은 당신과 가족을 몹시 힘들게 하였다. 생전에 무슨 원한이 그리 많았던가? 갑자기 발작하는 증상으로 누군가를 원망하고 설움에 북받쳐서 저주로 몸부림치는 어머니의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였다. 이러한 발작은 그렇지 않아도 여위어가는 당신의 육신과 조금 남아 있을 뿐인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어머니의 몸은 날이 갈수록 야위어 갔다. 특히 손은 눈에 띄게 창백해지고 손가락은 마디가 두드러진 댓가지처럼 가늘어져 갔다. 어머니는 항상 왼손 약손가락에 당신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금반지’를 끼고 계셨다. 이 금반지는 세 돈짜리로 내가 첫 월급을 탔을 때 마련해드린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어머니는 한 번도 이 반지를 빼신 적이 없다. 처음 금반지를 해드렸을 때에는 돋을새김의 꽃무늬 장식이 있었는데 오랜 세월 지나면서 민무늬가 되어 버렸다. 마치 꽃다웠던 어머니의 모습이 오랜 세월 세파에 시달려 변했듯이.
어머니는 발작에서 나와 평온을 되찾으면 가족에게 희미한 미소를 띠우면서 당신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하는 것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보이곤 하셨다. 의식이 있고 없고 간에 어머니는 항상 왼손을 꼭 쥐고 계셨다. 가끔은 가늘어져만 가는 손가락에서 점점 헐렁해진 반지를 돌려보고는 혹여 빠지지나 않을까 하고 왼손을 꼭 움켜쥐고 계셨다. 당신은 아들의 정성을 영원히 붙잡고자 하였나 보다.
아내는 이러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아 왔기에 당연히 보존해야 할 유품으로 이 민무늬 금반지를 수습했다. 어머니에게는 동생네가 선물한 열 돈쭝 정도 나가는 행운의 열쇠와, 옥과 금붙이로 만든 노리개도 한 쌍 있었다. 아내는 당신께서 이것들을 장롱에만 넣어 둔 것을 알기에 감동 없는 유품으로 분류하였다. 아내는 지체 없이 이것들을 동서에게 돌려보냈다.
아내는 어머니 신변의 유품으로 금반지를 수습하고 돌침대를 개조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유품을 정리해 나갔다. 그리고 하나 더, 아내는 왕소금이 담긴 두 개의 소금독을 유품의 목록에 넣고 마무리했다. 생전에 어머니는 모든 것을 아껴야만 하는 살림을 꾸리셨다. 그 시절에는 어느 누구에게나 살림살이에서 가장 긴요한 것 중 하나가 소금이었을 것이다.
신도시의 아파트 베란다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생뚱맞은 독 두개가 볕을 즐기고 있다. 생전에 어머니가 생활을 주관하실 때 가족의 입맛을 맞추기 위하여 사용하시던 소금이 담겨 있는 독이다. 이 독은 이곳으로 이사할 때 이삿짐에 딸려 왔다. 그러니까 이 독은 30여 년 동안 어머니 곁을 지킨 것이다. 어머니는 이 소금으로 김장 배추를 절이고 간장을 담그고 하셨다. 점점 가족 수가 줄어들고 식생활이 변화하면서 소금독은 어머니의 아린 그리움으로 채워졌을 게 분명하다.
독에는 지금도 왕소금이 남아 있다. 어머니는 다른 살림살이와 마찬가지로 오래 사용할 요량으로 소금도 많은 양을 구입하셨다. 소금 가마니를 오랜시간 받침막대에 올려 간수를 뺀, 뽀송뽀송하고 새하얀 꽃소금을 두 개의 독에 나누어 담아 놓으셨다. 아마 어머니는 소금에 대하여 남다른 정성을 보이신 것 같았다. 이러한 정성으로 저 독 안의 소금은 변치 않고 다감한 어머니의 손맛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이따금 베란다에 놓인 소금독을 정리하고자 아내의 의중을 떠본다. 아내는 마른 수건으로 독의 겉을 닦으면서 소금을 다 쓰고 나면 다시 채울 것이라며 빙긋이 웃는다.
아내가 수습한 어머니의 유품을 소중히 다루고 있는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러한 어머니의 유품은 언젠가는 소멸할 수밖에 없는 물건이지만, 어머니의 마음이 오롯이 살아 있어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