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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수필과비평』[2019년 3월호, 통권209호 I 세상 마주보기] 해저터널 - 이동실

신아미디어 2019. 4. 26. 09:44

"터널이 옛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 또한 깨달음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구나 싶다. 선조들의 한이 서린 구조물이기에 터널은 그런 석연찮음을 내게 전해주었으며, 아픈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섣부른 채색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저터널     -    이동실


   1월의 바람이 포근한 날. 지인의 혼사를 축하하기 위해 통영엘 갔다. 식사자리에서 통영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며 약간은 어눌한 추임새가 매력으로 보이는 박 선생이 말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자신의 차로 토영(통영을 사투리로 하는 말)을 안내하겠다며 가득 인정을 담아내는 것이 아닌가. 이럴땐 내숭 한 점이라도 떨어야 하건만 나는 함께한 지인들을 졸라 시간을 동여맸다.
   앞뒤가 띠처럼 길게 산으로만 이어지는 합천, 그곳에 사는 나에게 바다란, 펄떡거리는 물고기의 에너지와 섬사람들의 끈질긴 활기가 넘치는 곳만이 아니다. 갈매기 날고 바다 위로 꿈을 띄워 보낸다는 미지의 섬 소년을 아직도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선생은 친구가 북경을 가면서 복잡한 통영 시내를 다닐 때 안성맞춤이라며, 주고 간 차에 우리를 태우고, 요리조리 내달려 지하도 같은 입구에다 차를 세웠다. 여기가 1932년에 완공된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이라고 한다.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길. 현재는 충무교와 통영대교가 있어 이용객이 많지는 않지만, 동양 최초라는 신비함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가끔 이어지고 있단다.
   언젠가 통영의 정취를 맛깔나게 풀어내는 유영희 수필가의 ≪옹기의 휴식≫에서 읽은 ‘해저터널’ 안으로 들어온 것임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작가의 글을 읽으며, 일본은 우리의 주권과 영토만이 빼앗는 것도 모자라, 우리의 정신까지 말살하려는 파렴치함에 치를 떨기도 했고, 이순신 장군 한산대첩의 승전을 읽어 내려가면서는 가슴이 뜨거워졌던 이곳에, 꼭 한 번 와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잊고 지내왔기에 감회가 새롭다.
   그런 나의 기대와는 달리 회색 콘크리트 터널은 생각했던 것보다 투박하기만 하다. 마치 험한 세상을 헤치고 나온 촌로의 뭉툭한 손마디처럼 거칠고, 단조롭고 무미건조하며 냉랭한 기운만 감돈다. 예술의 도시 통영에서 이곳에다 멋진 벽화를 그려 넣는다고 하더라도 별 감흥이 없을 듯 입을 굳게 다문 것 같다.
   자전거를 끌고 가는 아저씨, 무표정한 얼굴로 종이가방을 들고 가는 남자, 손수레를 끌고 앞만 보며 바쁘게 걷는 아주머니의 큰 짐은 현실의 불황을 무게로 보여준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들이 엷은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다. 나는 걷다 말고 양팔을 벌려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아본다. “나라는 빼앗겨도 혼은 잃지 말자.”라던 어느 독립투사의 외침이라도 느끼고 싶었던 것이며, 우리의 미래를 햇살처럼 밝게 채우고 싶은 본능이었으리라. 그렇게 한참을 다시 걷다 보니 용왕님이 계시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육지에 도달한다는 뜻을 가진 용문달양龍門達陽 현판이 칙칙한 낯빛을 드러내고. 우리는 터널 밖으로 나왔다.
   입구에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문득 이들은 터널의 의미를 얼마나 크게 두고 살아갈까.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하나의 통로쯤으로 생각하며, 오래된 길이라는 것쯤으로 기억하는 것은 아닐까. 터널의 역사를 애국심으로 고취하고 싶은 뒤늦은 열정이 안달로 되살아난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해저터널> 글을 다시 읽어 내려갔다. 우리의 노동력을 착취해 만들었다는 아픈 역사가 박힌 곳, 저들의 선조들이 몰살당한 현장인 바다 위를, 조선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못하도록 만든 곳이라면, 그들의 침탈에 유리하도록 나라를 개조하기 위하여 우리의 선조들이 흘린 피땀은 또 얼마란 말인가. 그런 곳에서 현대의 과학적이고 세련된 건축기법을 떠올리며 외형적인 것에 의미를 두었던 나의 짧은 생각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터널이 옛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 또한 깨달음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구나 싶다. 선조들의 한이 서린 구조물이기에 터널은 그런 석연찮음을 내게 전해주었으며, 아픈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섣부른 채색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선생이 쓴 <해저터널> 글을 터널을 찾는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도록 한다면, 해저터널을 찾는 이들도 애국심에 둑을 쌓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것이다. 젊은이들에게는 살아가야 할 불쏘시개 같은 에너지 하나 더 불어넣어주기에도 충분하지 않은가. 나 역시 터널 입구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은 나라사랑의 석방렴으로 삼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