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수필과비평』[2019년 3월호, 통권209호 I 세상 마주보기] 어머니와 마늘 - 김상환
"마늘은 수확의 계절인 가을에 심었다가 봄철에 수확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도 남들이 포기의 계절이라고 하는 노년에도 새로운 씨 뿌리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차피 인생의 봄은 개별적으로 오고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어머니와 마늘 - 김상환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는 일기예보다. 문득 지난가을에 심어 놓은 마늘이 걱정되어 옥상 텃밭으로 올라가 봤다. 영하 15도의 추운 날씨 속에 난초 줄기처럼 곧은 잎이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 풍경을 보고 있으려니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겨울철 마늘밭 풍경은 특별한 운치가 있다. 춥고 삭막한 겨울철에 파란 마늘잎이 시골의 정취를 한껏 돋우어주기 때문이다. 특히 하얀 눈 속의 파란 잎들은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롭다. 누구든 그런 풍경을 봤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집은 동네 끝자락, 산밑에 자리 잡고 있었다. 뒤뜰에는 동백나무와 대나무가 사철 푸른 숲을 이루고 집터는 500평이나 되었다. 어머니는 해마다 첫서리가 내릴 무렵이면 그 넓은 텃밭에 마늘을 심었다. 토질과 자연환경이 좋아 마늘 농사가 잘되었다. 우리 집은 밭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었는데, 마늘을 심어 좁은 땅에서 고수익을 올렸다. 가난한 살림에 효자 작물이었다.
봄철이 되면 어머니 일손을 돕기 위해 나도 가끔 마늘종을 뽑았다. 마늘종을 뽑아주지 않으면 줄기로 영양분을 빼앗겨 뿌리 마늘이 크게 자라지 못한다. 우리 인생살이도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전심전력을 다해야 좋은 결실을 얻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마늘을 팔아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준치(청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와 내 검정 고무신을 사 오셨다. 할머니께서 준치국을 맛있게 잡수시며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식구들이 그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은 자주는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그날이 어느 명절날보다 더 즐겁고 행복했던 날로 기억된다.
어머니는 남자도 힘든 농사일을 하느라 얼굴은 퉁퉁 부어오르고 부드러운 피부는 뙤약볕에 화상을 입어 벌겋게 되었다. 상처가 나도 치료를 못하여 허물이 벗겨졌다가 다시 아물기를 반복하여 피부가 소나무 껍질처럼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생활이 어려워 농한기 때는 낯선 동네를 돌아다니며 떡장수, 생선 장수까지 하셨다. 그렇게 힘든 생활 속에서도 할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그래서 두 분이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고, 할머니께서는 어머니가 고생하는 것을 늘 가슴 아파하셨다,
할머니께서 중풍으로 거동을 못 하시게 되어, 대소변을 받아 내면서도 어머니는 불평 한 번 않으셨다. 할머니께서 82세로 세상을 떠나신 이후에는 혼령을 모시는 상방喪房에 제사상을 마련해 놓고 삼 년 동안 아침마다 밥상을 올렸다. 그리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에는 더 많은 제수祭需를 장만해 올리고 곡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삼 년 동안 밝은색 옷을 입지 않았으며, 항상 삼베로 만든 리본을 달고 사셨다.
마늘이 견디어야 하는 자연의 겨울은 아무리 혹독해도 정해진 기간만 참고 견디면 어김없이 봄이 찾아온다. 그런데 어머니의 봄은 기약이 없고 계절의 순서도 없었다. 어머니의 계절은 마늘이 겨울의 모진 추위를 견디어야하듯 그런 날들로만 계속되었다.
어머니에게 자식이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고 삶의 중심이었다. 마늘이 사람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면역력을 길러주듯이 어머니 또한 자식들에게 그렇게 되어 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그 어머니의 노년을 외롭게 해드렸다. 옛 속담에 “부모는 열 명의 자식을 기르지만, 그 자식들은 한 부모를 모시지 못한다.”라고 했는데 바로 나와 같은 자식들을 두고 하는 말이지 싶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겨울도 어린 나이에 찾아왔었다. 남들은 봄을 노래하며 나날이 성장하는데 나는 살아남기도 버거웠다. 내 삶의 현장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가슴속에서는 삭풍이 몰아쳤다. 봄은 언제쯤 올지 기약이 없었고,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계절을 기다리며 치열하게 살아야 했다. 내가 그 맵찬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마늘처럼 강하게 길러 주셨기에 가능했다. 덕분에 어머니께서는 살아 보지 못한 봄을 지금 내가 대신 살고 있다.
마늘은 수확의 계절인 가을에 심었다가 봄철에 수확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도 남들이 포기의 계절이라고 하는 노년에도 새로운 씨 뿌리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차피 인생의 봄은 개별적으로 오고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