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 월간 좋은수필 2018년 11월호, 신작수필23인선 I 아배의 흐느낌 - 강희동
"나 또한 모든 걸 팽개치고 부모를 모시고 살 용기와 자신이 없다. 아배의 흐느낌 소리가 들린다. 참 허망하다. 현대판 고려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나와 이 시대가 가소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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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배의 흐느낌 / 강희동
사람 사는 세상은 살아가면서 변하고 살아가는 방식도 바뀐다. 편리한 것을 많이 얻으면서도 그 대가로 잃어버리는 것 또한 적지않다.
가을비가 촉촉이 내려 제법 서늘하다. 노부모가 계시는 시골집은 보일러를 열어 놓았지만 훈기가 돌지 않는다. 지난 시절은 삼대가 같은 지붕 아래 살아가는 대가족 제도이었지만 요사이는 도시든 시골이든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요즘 시골에서는 젊은사람과 아이 우는 소리를 들어보기 힘든 지 오래 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가 도회지로 나갔기 때문이다. 이 마실도 마찬가지 이다. 한 스물 남짓하던 동성부락인 당골 마을도 이제 서너 집만 남았고 대부분 집들은 비어 있다. 남아 있는 집들마저도 병든 노인네 사는 두 집과 팔십 가까이 되는 아재뻘 어른 한집인데 이마저도 비닐하우스 딸기 농사로 낮에는 텅 비어 있다. 오늘 비마저 내려 더 을씨년스러운 것은 마당 넓은 집에 달랑 두 분만 남겨두고 자식들은 저마다 도시로 나가 살기 때문인 것 같다. 올해 아배 연세 팔십 육 세, 두 분과 얼마나 오래 같이 할 것인지 알 수 없고, 또한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매월 한 번 정도는 옛집을 찾아 부모님과 같은 방에서 잠자리를 함께하여 왔다.
오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일찍 잠이 들었다. 새벽녘 선잠이 깨어 꿈결인지 생시인지 어디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을 들어봐도 분명 흐느끼는 소리이다. 깜짝 놀라 불을 켜 보니 아버지가 방구석 모퉁이에서 쪼그려 앉아 울고 계시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놀라 잠은 달아났고 흐느끼는 아배를 진정시키고 영문을 물어 보았으나 좀처럼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연세 드신 분들은 예측할 수 없는 병들이 많은지라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한잠 지난 후 사연을 들어 보니 어매 때문이란다.
“너 어매가 밥을 안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래서 굶어 죽지는 못하고 내가 밥 끓여 먹은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래서 이게 무슨 변고인지 세상이 서글프고 너 어매가 불쌍해서 운다. 아마도 너 어매가 무슨 병에 걸린 듯하다.”는 것이었다.
어매는 열일곱 살에 시집을 와서 큰집 십남매 맏며느리로 죽도록 고생만 하신 분이다. 대가족 속에서 내 눈에 비친 어매는 바느질도 집안 큰일도, 시부모 섬김도 모두가 훌륭한 전형적인 구시대 한국형 여인인데 그럴 턱이 없다. 그런 어매가 밥하는 것을 마다하다니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배는 사실이라 했다.
아들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그냥 형식적으로 찾아뵙는 것만이 자식의 도리라 여기며 속사정은 까맣게 모르고 무심하였던 것이다. 이 시대의 생활풍습이 이렇듯 부모와 매정하게 의식주를 함께하지않는 것을 당연시하게 된 것이다.
날이 밝아 아침이 되어 사실을 확인하여 보았다. 일상적인 어매의 말이나 거동에는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밥을 왜 하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실실 웃으시면서 “야가 왜 이노, 내가 밥할 줄 모를까봐, 내가 평생 해왔고 너 아부지가 잘 하는데 뭐 할라꼬 내가 하노, 이제는 안 할란다.”라고 하신다. 그런데 뭐가 좀 이상하다. 말씀이야 연세가 들어 음식하는 것이 귀찮을 듯 한, 제법 논리가 맞는 것 같은데 웃는 행동이나 생활방식에 대한 인식이 평소와는 다른 게 이상하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집을 다녀간 숙모로부터 뭐가 좀 이상한 것 같다고 치매검사를 한번 받아 보라고 하던 것이 생각났다.
치매! 치매라니. 치매에 대한 나쁜 기억과 하얗게 지워지는 기억들이 연쇄적으로 떠올라 황당한 마음이 앞섰다.
날이 밝기 바쁘게 여기저기 전화로 이것저것 알아보니 치매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밥하는 공정이 쌀을 씻고 물의 양을 조절하고 불의 세기, 시간 등을 감안한 단순하지 않고 상당히 복잡하고 세심한 판단을 요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매일 반복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쉬운 것 같지만 치매가 와서 막상 일과 마주하면 그 순서를 잊어버리고 피하게 되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미안해서 자꾸 웃는다는 것이다. 다음 날 부랴부랴 병원 찾아 검사를 해보니 치매 초기현상이라 했다. 상시적인 치매교육과 관리를 병행 한다면 진행을 늦출 수 있지만 더 나아지거나 완치할 수 없는 노인병이라 했다.
아배의 흐느낌과 어매의 웃음이 상반되는 그 빈 공허 사이에 자식들의 무관심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평생 부모를 모시고 봉양하시면서 살아 온 부모님 세대는 아무리 연세가 높고 거동이 불편해도 자식들로부터 직접 섬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나부터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 시대 생활방식이 부모를 현대판 고려장으로 내몰고 있다. 이 시대 누가 시골로 내려가서 부모를 모시고 살아가려 하겠는가. 요양병원과 요양원에 맡기고 일상에서 외면하고 드문드문 문안드리는 것을 자식 도리를 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모든 걸 팽개치고 부모를 모시고 살 용기와 자신이 없다. 아배의 흐느낌 소리가 들린다. 참 허망하다.
현대판 고려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나와 이 시대가 가소롭다.
강희동 님은 시인, 수필가. (주)지엘종합개발 대표, 시집: 《지금 그리운 사람》 《금강송 이주촌》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