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수필과비평』[2019년 3월호, 통권209호 I 사색의 창] 때 늦은 후회 - 전일환
"고어皐魚처럼 세상을 떠돌다가 부모가 돌아가신 것도 모르고 뒤늦게 귀향한 뒤에야 “나무가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된다. 돌아가신 연후에는 그 어떤 뉘우침이나 반성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것이 우리가 사는 인지상정의 세상이다."
때 늦은 후회 - 전일환
단풍이 꽃처럼 아름답던 가을도 어디론가 흘러가고, 겨울이 오더니 동장군도 겨울을 떠날 채비를 하나 보다. 미당이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라 했던 선운사 그 고운 단풍도 정녕 “가을 꽃자리”가 아니다. 꽃보다 아름답던 단풍도 어느 땐가 물기를 잃고 꺼칠한 고엽枯葉이 되어버린 채, 향방을 잃고 어디론가 흩날려 사라져 간다.
생로병사에 달관했던 선승 월명사月明師도 죽은 누이의 제를 지내면서 못내 그를 그리워하는 한과 서러움을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에 실었다. “생사의 길은 예 있음에 저히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갔느냐?/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들처럼/ 한 가지에서 나고서도/ 가는 곳을 왜 모르는가”라며 애통해 했다.
연년이 가을이 가고 또다시 오건만, 오는 가을은 작년의 그 가을이 아니며 겨울도 작년의 그 겨울이 아니다. 우주 만물의 운행법칙은 끊임없이 반복되어도 지나간 그 봄은 다시 오지 않고, 그 여름이나 그 가을도 오지 않으며, 오는 겨울도 또한 그러하다. 우리 인생의 삶, 또한 이런 우주의 운행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한번 가버린 사람도 다시 오지 않으며, 지나간 세월도 또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나 불가에서는 우리의 인생을 전생과 현세, 내세라 하여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윤회輪廻의 법칙으로 설명하면서 자비慈悲롭게 살아야 한다는 위안을 주고 있다. 윤회라는 말은 본디 고대 인도의 사상과 세계관으로 정립된 스페인어 ‘삼사라(Samsara)’라고 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말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이나 초목들까지도 살아있는 ‘중생衆生’들이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사이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몸뚱이인 ‘물物’은 죽어 없어질지라도 그 넋인 ‘혼魂’은 영원히 살아서 다른 물체로 옮아가는 것이라 했다. 마치 수레바퀴처럼 멎지 않고 이승과 저승으로, 새로운 세상에 다시 태어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삶과 죽음을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새로 태어나는 사람은 정녕 지나간 옛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는 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슬픈 존재라 했나 보다. 일시 잠깐 왔다가 가을날 떨어지는 낙엽처럼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는 게 우리네들의 인생사다. 그런 줄도 모르는 우리들은 스스로가 천년, 만년이나 살아갈 것처럼 큰소리 떵떵 치며 자신만만 만용을 부린다. 그래서 불가에선 우리 인간들을 중생이라 일러왔다.
중생이란 말은 어원적으로 보면 ‘짐승’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게 옳다. 정말 우리 인간들이란 때론 짐승보다 우매愚昧하고 더 바보스러울 때가 많다. 자기 스스로 몸소 느끼거나 겪어보지 못한 것들은 애시 당초 느끼거나 전혀 알지 못하는 존재가 우리 인간들이다. 부모가 살아 있을 땐 느끼지 못했던 존재감도 돌아가신 연후에야 아무런 대가없이 쏟아 부은 부모님의 끝없는 사랑을 비로소 깨달으며 아쉬워한다.
뒤늦게나마 그 내리사랑의 일부분이라도 바치려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때늦은 후회를 ‘바람과 나무의 탄식’ 곧 풍수지탄風樹之嘆에 오롯이 담아 때론 우리들 가슴을 저며 내린다. 흔히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라는 속언도 자식들이 많은 부모는 그런 아들 딸 때문에 근심걱정이 떠나질 않는다는 자식사랑을 말할 때 항용 쓰이는 말이다.
이 풍수지탄은 7언시인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오롯이 남아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들을 사랑하고, 자식은 자식답게 부모를 공경해야 함을 일깨우는 명구가 되어 전해온다. 흔히들 우리 인간을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들 하지만, 세상만물 중에 인간처럼 무지몽매한 존재는 없는 것 같다. 인간의 희로애락, 이 모두가 몸소 스스로 겪어보지 않고는 어떤 기쁨이나 슬픔, 화남이나 즐거움 등 인간 제반사의 진면목을 깨닫지 못하는 게 어디 한둘이던가.
우린 남의 어려움을 알려면 언필칭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아야 한다고들 말한다. 어려움에 처한 사정을 알려면 그 처지나 입장을 바꾸어 상대편이라면 어떠할까라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말이야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러나 사람이란 자기 스스로 겪어보지 않고는 다른 사람의 그 어려운 상황을 헤아릴 수 없다는 걸 뒤늦게야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고어皐魚처럼 세상을 떠돌다가 부모가 돌아가신 것도 모르고 뒤늦게 귀향한 뒤에야 “나무가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된다. 돌아가신 연후에는 그 어떤 뉘우침이나 반성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것이 우리가 사는 인지상정의 세상이다.
* 중국 전한前漢 때 경학자 한영韓孃이 지은 ≪시경詩經≫의 해설서로 잡다한 고사古事와 설화를 인용한 책이다. 고어皐魚란 사람이 세상을 떠돌다 돌이킬 수 없는 사내로서 큰 뜻을 이루지 못한 것, 절친한 친구와 멀어진 것, 부모가 돌아가신 것도 모른 것 등 세 가지 슬픔이 기록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