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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월간 좋은수필 2018년 10월호, 신작수필23인선 I 호상 - 이상분

신아미디어 2019. 4. 9. 12:04

"그러나 그 길이라는 것이 우리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기에 불안감이 더하는 것이 아닐까. 마주하고 싶지는 않지만 늘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이 죽음이고 또, 그것을 삶의 한 과정으로 여긴다면,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을 테지만, 그래도 부고는 언제나 무겁고 슬프다. 호상은 산사람들의 꿈이고,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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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상           /    이상분 


   친정 당숙모님의 부고가 전해졌다. 올해 아흔넷의 연세다. 사람들은 호상好喪이라 했다. 왠지 마음이 아프다. 호상이라는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복을 누리고 산 사람의 상사”라고 쓰여 있다. 과연 그분이 복을 누리고 살았을까. 그 복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건강하게 오래 사신 것만이 복일까! 많은 생각이 스친다.
   당숙모님은 정이 많고 예의 법도를 잘 지키셨던 분이다. 남에 대한 배려가 너무 지나쳐 오히려 상대방이 더 불편해할 정도로 예의를 차리셨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어른들을 따라서 큰댁이라고 부르며, 당숙모를 큰댁 아주머니라 불렀다. 그 아주머니가 소천召天한 것이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아들만 바라보며 평생을 수절하셨다.
   옛날 고사를 보면 청상과부에 대한 가십거리가 참으로 많다. 당숙모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내 기억에 당숙모님은 늘 배가 불러있었다. 마치 임산부와 같았다. 친정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그 당시는 병명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배가 남산만 하게 불러와 걷는데 불편함을 느낄 때쯤이면, 할머니와 함께 수원에 있는 도립병원으로 가물을 빼내었다. 훌쭉한 몸으로 돌아와 생활하다 보면 다시 배가 차올라오고, 이 일을 주기적으로 반복한 것으로 기억된다. 처음엔 과부가 배가 불러오니 온갖 해괴한 소문이 다 돌았다고 한다. 그때 당숙모는 그 어려운 시기를 신앙에만 매달리셨다. 누가 뭐라 해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셨다.
   지금은 교회의 종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새벽마다 종을 치면 그 소리를 듣고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곤 했는데, 그 종지기를 연약한 당숙모님이 자처한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새벽마다 시간을 어기지 않고 종을 치셨다. 새벽 맑은 공기 덕분인지 아니면 기도와 말씀과 묵상으로 이끈, 하나님의 보살핌 덕인지 그 배가 서서히 꺼지더니 어느 순간에 말끔해졌다. 교회를 부정하는 사람들마저도 하나님이 고쳐 주셨다고 믿을 정도이니, 얼마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서둘러 장례식장을 찾았다. 상주인 오빠와 언니를 보니 그새 참 많이도 늙어 있었다. 그분들의 연세가 칠십이 훨씬 넘었고, 보살핌을 받을 나이에 어른을 모셨으니 얼마나 고되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더구나 망인이 오래전부터 치매까지 앓았으니 그 마음 고생이 오죽했겠는가!
   그동안 뵙지 못했던 일가친척이 한자리에 다 모였다. 나이 드신 당숙· 고모· 재당숙· 육촌· 사촌들이 서로 인사하기 바쁘다. 몰라보게 변해버린 일가들이다. 근감하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어찌 보면 초상집이 아닌 잔칫집 분위기와도 같다. 일찍이 혼자 되셨기에 상주는 아들 하나뿐이지만, 집안이 많다 보니 손님이 꽤 많다. 상주의 곡 대신 찬송소리가 하늘을 감동시킬 듯 우렁차다. 당숙모님은 지금쯤 그토록 원하셨던 천국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계실 것이다. 정말 그러리라 믿는다.
   “네가 상분이냐?”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호호백발皜皜白髮의 당고모님이 묻는다.
   그 이름을 불러주는 억양이 소싯적으로 돌아간 듯 싫지가 않다. 얼마만인가, 반갑다.
   당고모님은 여전히 기억력이 대단하시다. 당숙모님이 혼자서 외롭고 적적할까 봐 가끔 고모와 함께 큰댁으로 잠자리를 옮겨 간 것 까지도 기억하시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게 언제적 일인데 이제 와 새삼 들추어내는지 민망하고도 부끄러울 따름이다.
   “오빠네 식구가 올케한테는 큰 울타리였지 뭐.”
   사실 당숙모님이 젊었을 때는 바로 옆에 사셨던 우리 아버지와 할머니를 많이 의지하고 사셨다. 남정네가 없는 시골 살림살이인데 불편한 것이 어디 한두 가지였겠는가. 콩 한 쪽도 나눠먹던 옛일이 떠올라 마음이 푸근해진다.
   “젠장, 아프지 말고 나도 얼른 갔으면 좋겠어.”
   낮술에 취한 홀아비 경수 아저씨가 큰소리로 떠들고 있다. 지어미를 향한 그리움이 사무쳐 깊은 병이 되었다니, 측은지심으로 금세 마음이 편치가 않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결코 괜한 말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이제 아버지가 집안 최고의 어른이다. 그래서일까! 오늘따라 아버지의 장유유서長幼有序와 호상에 대한 의견이 길어지고, 죽음에 대한 소견도 끝이 없다. 죽음은 모든 것의 마지막이고 끝마침으로 어둠을 말할진대, 나이가 들면 그 죽음도 초월하는가 보다.
   “어차피 누구나 다 가는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이라는 것이 우리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기에 불안감이 더하는 것이 아닐까. 마주하고 싶지는 않지만 늘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이 죽음이고 또, 그것을 삶의 한 과정으로 여긴다면,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을 테지만, 그래도 부고는 언제나 무겁고 슬프다. 호상은 산사람들의 꿈이고,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이모! 이모!”
   급히 달려온 망인의 딸 같은 질녀(조카딸)가 목 놓아 운다.



이상분 님은 수필가. 《좋은수필》 등단. 수필집: 《아름다운 이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