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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수필과비평』[2019년 2월호, 통권208호 I 사색의 창] 사랑을 받아요 - 조향순

신아미디어 2019. 3. 18. 10:55

"눈이 내린 공원, 곳곳에 사랑해 또는 하트가 새겨져 있었다. 남들의 사랑을 구경하며 산책을 하던 중 흔적이 없는 눈앞에 섰다. 사랑한다고 써 달라는 내 말에 남편이 멈칫하며 주위를 둘러보더니 눈 덮인 쪽으로 말없이 걸어갔다. 혹시나 하며 등을 돌렸다."


 





   사랑을 받아요      -    조향순


   결국 애니팡에 접속을 하였다. 하트가 화면 상단에 뜨자 ‘어서 오세요’ 또는 ‘사랑해요’ 라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외로움도 무료함도 사라졌다.
   참 신났던 날이었다. 내 손을 잡고 통신사로 불쑥 들어간 아들이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눈짓을 했다.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통보였다. 거절할 수 없는 표정 앞에 사용하고 있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받은 급여로 멀쩡한 물건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 주려는 아들의 돈이 아깝기도 했지만 싫지 않았다. 아니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지인들과 단체방에 초대가 안 되어 별도로 연락을 받으며 미안함을 느끼고 있던 즈음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렇게 스마트 세상이 열렸다. 아들은 사용방법은 물론 애니팡이라는 게임을 즐기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신고를 하지도 않았는데 드디어 입성했네요. ‘추카 추카’라는 글이 쏟아진다. 똑똑해진 기계의 사용법을 더듬더듬 익히며 애니팡도 즐겼다.
   애니팡은 같은 동물 세 마리를 수직 또는 수평으로 놓으면 터져 버리는 게임이다. 터질 때는 소리가 난다. 언젠가 전철 운전기사가 전철 안에서 도축을 할 때는 옆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소리를 죽여 달라는 방송을 했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고 재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막상 게임을 해보니 도축이란 말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었다. 동물 셋이 모이면 죽는 것이 아니라 폭죽이 터지는 것이다. 폭죽은 축하할 때나 기억하고 싶은 날 터뜨리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놓을 수가 없었다. 게임에 익숙하지 못하기에 폭죽을 몇 번 터뜨리지도 못하고 끝내야 했다. 다음에는 잘될 것 같고 게다가 아는 사람들의 순위가 화면에 뜬 것을 보면 묘한 승부욕도 생기며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버스에서, 전철에서 휴대폰에 코를 박고 바쁘게 손을 움직이던 사람들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었다. 이제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트가 배달되었다. 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하트를 주고받을 수가 있다. 내 기록을 보고 반가웠다며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도, 연하장만 주고받는 친구들도 하트를 보내 주었다. 남편도 수시로 하트를 보냈고 감사한 마음으로 게임을 즐겼다.
   자꾸 하트가 아른거린다. 하트는 사랑의 표현인데…. 이 하트가 단지 게임을 즐기라는 의미가 아닐 수도 있다는 착각이 든다. 게임 제작자도 다양한 모양 중 하트를 선택한 이유가 이런 현상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나와 남편은 표현에 인색하다. 우리는 결혼 이후에는 물론 연애할 때도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은 기억이 없다. 마음에 있으면 됐지 하며 그다지 섭섭해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게임에 접속을 하여 하트가 뜨면 순간적으로 ‘사랑해.’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게임을 빙자해 마음을 드러내는가 싶기도 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세월 앞에 내가 변해 있었다.
   눈이 내린 공원, 곳곳에 사랑해 또는 하트가 새겨져 있었다. 남들의 사랑을 구경하며 산책을 하던 중 흔적이 없는 눈앞에 섰다. 사랑한다고 써 달라는 내 말에 남편이 멈칫하며 주위를 둘러보더니 눈 덮인 쪽으로 말없이 걸어갔다. 혹시나 하며 등을 돌렸다.
   “됐지.”라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던 순간 손뼉을 치며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그곳엔 “향순아 사랑해.”라고 쓰여 있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남편은 주먹으로 써 놓았다. 그동안 듣지 못했던 ‘사랑해.’와 앞으로 들어야 할 사랑해가 모두 들어 있었다. 그의 차가워진 주먹을 감싸 쥐고 돌아오며 다시는 시험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퇴근한 남편은 리모콘을 쥐고 온 방송국을 돌아다닌다. 말 상대가 그리웠던 나, 옆에 앉았다. 그러나 그 자리는 방청석일 뿐이었다.
   스마트폰을 집었다. 남편이 슬그머니 팔을 뻗었다.
   “카톡.”
   “남편님이 ♥를 보냈어요.”
   끼워 맞춘 사랑에도 온기는 흐른다. 미소가 지어졌다.
   동물들이 폭죽을 터트렸다. 팡 팡 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