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수필과비평』[2019년 2월호, 통권208호 I 사색의 창] 오름에 정을 붙여 - 서경림
"김영갑 님을 붙잡고 끝내 놓아 주지 않았던 저 오름과 초원은 우리의 넋을 정화시키는 야생의 대자연이다. 가끔은 바다 건너, 산 너머 어딘가에 살고 싶은 이상향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여기 오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 평화로운 초원이야말로 그런 곳이 아닐까."
오름에 정을 붙여 - 서경림
1970년대 중반쯤 화창한 봄 어느 날, 나는 한라산 동쪽 자락, 산굼부리 주변의 산야를 거닐고 있었다. 질펀하게 펼쳐져 있는 초원에 태양은 따스하게 비치고, 사방에는 ‘오름’들이 오손도손 모여 앉아 속삭이고 있었다. 잔디와 띠, 그리고 억새잎들이 미풍에 살랑거렸다.
아늑하고, 아름답고, 정다운 오름들이 젊은 여인의 젖가슴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누워 있었다. 생전 느낄 수 없었던 평화가 자연에 가득 차고, 그것은 나의 가슴에도 한 아름 흘러들었다.
잠들고 싶었다. 이 위대한 대자연이 주는 평화와 부드러움 속에 포근히 안겨 잠들고 싶었다. 초원에 한 줌 흙으로 잦아들고 싶었다.
나는 이미 유년 시절 4·3사건으로 공포에 절었고, 청년 시절에는 베트남 참전을 통해 전쟁이란 그 명분이 무엇이건 간에 살육전에 지나지 않으며, 그때에 평화야말로 인류의 지고한 가치라는 것을 가슴으로 절절하게 느꼈다.
고려 때, 제주도를 백여 년이나 지배했던 몽고족들이 이 아름다운 초원을 달리면서도 그 호전성이 순화되지 않았다면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하겠다. 틀림없이 그들도 이 오름 기슭에서 쫓겨나지 않고 평화롭게 한평생을 살고 싶었을 것이다.
제주도는 오름 왕국이다. 아버지 격인 한라산이 368개의 ‘오름’을 자기 자식처럼 거느리고 있다. ‘오름’이란 원추형의 기생화산 또는 측화산을 가리키는 제주어이다.
오름은 덮칠 듯 가파른 산이 아니다. 한없이 이어지는 산줄기도 아니다. 압도하지도 않고, 오르는데 벅차지도 않다. 잘나고 번듯한 산이 아니라 우리와 다정하게 비벼대고 있는 산이다. 슬플 때나 괴로울 때도 항상 우리를 어루만져 주는 산이다. 잔인한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끝내 오름을 떠날 수 없었던 사진작가 김영갑은 이렇게 쓰고 있다.
선이 부드럽고 볼륨이 풍만한 오름들은 늘 나를 유혹한다. 유혹에 빠진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 달 밝은 밤에도, 폭설이 내려도, 초원으로 오름으로 내달린다. 그럴 때면 나는 오르가슴을 느낀다. 행복감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문학평론가 안성수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대자연이 연출하는 오르가슴은 김영갑에게 삽시간의 황홀로 찾아오곤 했다.”라고 한다.
오름은 제주 사람들의 한恨의 산물이다. 태초에 제주인들은 거신巨神 ‘설문대할망’에게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면 그녀가 입을 속옷 한 벌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속옷 한 벌을 만드는 데 명주 100동이 필요한데, 아무리하여도 99동밖에 모으지 못했다. 그 사이에 이 할머니는 치마폭에 흙을 담아 다리를 놓다가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흙덩이를 흘렸는데 그것이 오름이 되었다 한다. 끝내 약속 불이행으로 다리를 놓는 작업도 중단되었다.
아쉽게도 백百에서 하나가 모자라 소원 성취를 못 하여 슬프고, 한스러웠다. 오름은 결국 제주인들의 한이 응어리져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이 한은 제주의 곳곳에서 나타난다. 서귀포시 대정읍 소재의 송악산 굼부리(분화구)주변의 넓은 초원에는 작은 알오름들이 ‘아흔아홉 봉’이 있다. 한라산 서북쪽 기슭에는 깊은 계곡들로 이루어진 ‘아흔아홉 골’도 있는데, 실제의 수와는 관계가 없다.
여름날, 오름이 없다면, 보이는 것은 초록의 벌판과 푸른 바다일 뿐이므로 이상李箱이 평남 성천에서 느낀 ‘권태’까지는 아닐지라도 지루함이 스며들법하다. 그러나 오름이 있어, 제주인들은 바다와 함께 부지런히 삶을 이어왔다. 오름 어귀에 신당을 모셔 놓고 빌었고, 중산간 자갈투성이 거친 흙에 메밀을 심었다. 오름 자락에서 자라는 띠를 베어다가 초가집 지붕을 이었다. 굼부리에 소와 말을 풀어 길렀다.
오름은 삶의 터전이면서 주검의 고향이다. 양지 바른 오름 허리는 물론, 바람 타는 오름 위에도 영혼의 안식처가 된다. 제주 사람들은 오름에서 살다가 오름으로 돌아간다.
김영갑 님을 붙잡고 끝내 놓아 주지 않았던 저 오름과 초원은 우리의 넋을 정화시키는 야생의 대자연이다. 가끔은 바다 건너, 산 너머 어딘가에 살고 싶은 이상향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여기 오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 평화로운 초원이야말로 그런 곳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