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 2019년 3월호[제209호]의 신인상 당선작가분들을 소개합니다.
수필과 비평』 2019년 3월호[제209호]의 신인상 당선작가분들을 소개합니다. 좋은 씨앗을 많이 뿌리는 농부로 성장하시기를 기대합니다.
≪수필과비평≫은 작품수준, 신인다운 치열한 작가정신, 앞으로 창작활동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작품을 신중하게 검토하여 다음과 같이 신인상 당선작을 결정하였습니다.
심사위원 | 유인실, 엄현옥, 김지헌
| 김진열 <솟대>
| 이숙자 <상자 속 세월의 조각들>
| 정정님 <민달팽이의 집>
신인상 심사평
김진열 - <솟대>
일반적으로 신앙과 관련된 인간의 경험은 신성에 대한 경이감을 비롯하여 신적인 권능에 대한 의존감, 그로부터 생기는 평화로운 감정 등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근대를 넘어오면서 그러한 신앙을 중심으로 종교와 종교 아닌 것을 나누는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의 영역도 경계가 있다고 착각해 왔다. 그러나 무수한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성찰을 통해 인간 이해의 새로운 통로로 탈경계에 대한 관심이 부상되고 있다. 이 글은 솟대(종교심)와 일상이 서로의 경계를 어떻게 넘나드는지를 통해 종교적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솟대의 소재를 찾기 위해 온 산을 헤맨 일, 솟대의 완성을 위해 염원을 담아 온갖 정성을 다하는 일, 학생들에게 희망과 꿈의 메신저로 솟대를 선물하는 일 등 솟대에 대한 애정과 일상이 씨줄과 날줄로 직조되어 있다. 이 글 곳곳에는 경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종교적 행위의 경계를 넘어서는 삶의 신앙적인 몸짓의 결이 잘 누벼져 있다.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을 담아 희망의 솟대를 나누는 행위에서는 종교적 결이 느껴진다. 자신의 체험을 화려한 수사가 배제된 직설적인 서술법을 사용하여 전체적 의미 맥락을 부각시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당선을 축하한다.
이숙자 - <상자 속 세월의 조각들>
집에 쌓인 물건들이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인들은 생활 필수품은 물론 디자인과 각종 편의성을 갖춘 생활용품과 레저용품까지 많은 물건을 소유한다.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을 줄이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으로 살아가는 단순한 생활 방식인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서는 생각부터 단순해져야 한다.
물건을 버린 공간엔 일상의 여유와 소소한 행복이 찾아온다는 말도 수긍하지만 무언가를 버리는 일은 쉽지 않다.
<상자 속 세월의 조각들>의 주된 화소인 보관 상자에는 연애편지부터 시작하여 오래된 육아일기와 투병의 기록과 부모님을 위해 마련해둔 수의壽衣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많은 사연이 담겨있다. 삶의 애환과 개인의 역사가 함께한 상자에 대한 에피소드로 시작하여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 이르기까지 안정된 문체로 진행된다. 아무리 낡고 오래되었을지라도 내 손에 들어온 물건을 다시 내놓기가 쉽지 않은 심리적 편향인 ‘소유효과’를 담담히 피력하여 공감에 이르게 한다.
신인상 당선을 축하드리며 마음 속 상자를 가득 채울 작가의 수필 세계를 기대한다.
정정님 - <민달팽이의 집>
<민달팽이의 집>의 화자는 아내지만 서술 대상은 남편이다. 이런 이야기 방식은 화자가 경험한 인생사를 직접 서술하는 경우와는 달리 훨씬 다채롭게 말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결혼 후 늦게 공부를 시작한 남편이 고생 끝에 교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본 화자의 따뜻한 시선에서 감동이 느껴진다. 외롭게 한 길을 가는 남편의 고독한 모습을 품어주는 모습 또한 수필가로서의 넉넉한 품으로 인정된다. 가난한 시간강사인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는 화자의 입버릇처럼 하는 기도가 그 한 예이며, 산길에서 만나는 돌탑에 돌멩이 하나 얹으며, 소박한 밥상을 차리거나 진수성찬 앞에서조차 기도하는 태도가 이를 방증한다.
이 수필의 더 큰 장점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남편의 직장과 집을 달팽이의 집에 환치시켜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설정은 뒷부분까지 ‘민달팽이의 집’이라는 의미가 주제를 굳건하게 하는 한 틀로 흔들림 없이 사용하고 있는지 사유해야 할 일이다. 첫 출발의 글이 다양한 논의거리를 지닌다는 것은 이 작가가 문학적 능력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여 기꺼이 선에 넣는다.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