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수필과비평』[2019년 2월호, 통권208호 I 지상에서 길찾기] 그녀 몰래 찍은 사진 - 지홍석
"슬픈 일을 당했다고는 하나 그것도 엄연한 해외여행, 기념사진 한두 장쯤은 있어야 될 것 같아서였다."
그녀 몰래 찍은 사진 - 지홍석
그녀의 어깨가 들썩였다. 소리 내어 울지도 슬픔을 표현하기도 어려웠던가보다. 가볍게 등을 두드려주었지만 위로가 되지 못함을 알았다. 붉게 상기된 얼굴 위로 눈물자국이 번졌고 축축하게 젖은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방도가 없음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해가 떨어지자 대국의 땅에도 어둠이 밀려왔다. 진한 회색빛들은 일제히 대지 위로 내려앉았고 서쪽 하늘 아래에는 불그스레한 빛 몇 줄기만이 저물어버린 해를 안타까운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날 자정이 임박한 시간에 대구를 출발해 북경에 도착했다. 세 시간 가량의 비행시간마저 더해져서인지 호텔에서의 취침시간은 더욱 짧아져, 서너 시간의 잠으로 피로를 대체해야만 했었다.
오전의 일정은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이었다. 워낙 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이다 보니 정신없이 돌아다녔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니 3박 5일의 일정 중 이틀이 벌써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 밤 우리들이 여장을 풀어야 할 호텔은 하북성 래원현에 있었다. 내일 돌아볼 예정인 이수호와 백석산이 인접해있는 작은 도시였다.
취침시간이 짧았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피곤함에서 밀려오는 나른함 때문이었을까. 천하의 항우장사도 이기지 못한다는 무거운 눈꺼풀에 속수무책일 때 구세주처럼 잠을 깨워준 건 휴대폰 소리였다. 그런데 그녀는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이내 수신거부를 해버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이나 더 전화가 걸려 왔어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 발신자에게 국제전화 요금이 발생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불현듯 좋지 않은 예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여행 날짜가 정해지면 떠나기 전부터 마음이 들뜨고 설레기 마련인데 이번 여행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는 그녀의 말이 떠올라서였다. 그리고 출발 당일에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다가 손가락까지 다쳤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여행은 참으로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처음 네 명의 요청으로 갑자기 여행팀을 만들었지만 정작 그 당사자는 항공 발권을 하고나서 취소를 해버렸다. 출발일을 며칠 앞두고는 묵어야 할 호텔이 영업을 중단했고, 여행 목적지의 케이블카도 수리를 핑계로 운행을 중단한다는 통보가 있었다. 그리고 아침엔 쇼핑센터 방문 기념으로 받았던 옥환玉環이 갑자기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불길함도 있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걸려온 전화가 누구였는지를. 그랬더니 하나뿐인 언니라고 했다. 어제 저녁 출발할 때부터 휴대폰을 꺼두었고 조금 전에 켰다는 설명도 같이 덧붙였다. 그래서 더욱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국제전화비가 만만치 않은데 언니가 계속 전화를 걸었다는 건 그만큼 급박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전화를 받아보는게 좋을 것 같아요.”
그녀가 언니와의 통화를 시도했다. 처음엔 나지막했지만 대화가 이어질수록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고 심각해졌다. 급기야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가 싶더니 자지러졌다. 남동생에게 교통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어제 밤늦게 운전 중 사고가 일어났는데 당사자가 사망하는 바람에 가족들에게 연락이 오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녀의 나이 이제 오십대, 남동생이라면 사십대 후반이거나 막 오십대로 접어들었을 나이였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귀국할 태세였다. 북경공항까지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지만 그깟 택시비가 무슨 대수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주말인 토요일이라 항공권이 남아있을 리 없었고, 단체비자로 입국을 했던지라 그녀 혼자서는 절대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행의 분위기가 일순간에 침울해졌다. 모두 안타깝다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3일간의 일정이 더 남아있기에 계속 우울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각자 위로의 말을 건네고는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던지 저녁식사를 거부하고 누군가와 계속 통화하고 있었다.
북경보다 훨씬 더 북쪽이라 그랬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밤새도록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그녀의 마음이 한이 되어서일까. 10월의 중순인데도 날씨가 마치 초겨울처럼 추웠다. 거기다 뿌연 안개마저 더해져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이수호는 거대한 인공 호수로 웅대한 스케일의 영화 <적벽대전>의 촬영지다. 그리고 백석산은 해발 이천여 미터에 달하는 바위산으로 북태항산 줄기에 위치한 중국의 대표적 명산이다. 두 곳 모두 다 탄성을 자아낼 정도의 비경을 자랑하는데, 천 길의 험한 바위벼랑에 선반처럼 달아낸 길이 아기자기하고 스릴이 있어 절대 잊지 못할 아찔한 경험을 선사해 준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그녀는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지 혼자서 내내 걷기만 했다.
세상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어느 누구는 슬픔에 빠져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왜 우리들 눈에는 보이는 경치 모두가 그토록 빼어난 절경들뿐일까. 나머지 일정을 소화하고 대구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5시, 그녀는 입국수속을 마치고 동생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으로 달려갔다. 가족들이 장례식을 하루 더 미루었다는 것이다.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깨달음이다. 이번 여행에서 얻었던 가장 값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칠십여 년을 넘어선 남북이산가족의 슬픔이 어떤 것인가를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여행을 다녀온 지 일주일 후, 나는 그녀에게 3장의 사진을 보냈다. 그녀 몰래 찍어 두었던 그녀의 사진으로 이수호와 백석산, 그리고 마지막 여행지였던 백리협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마른하늘 날벼락처럼 갑자기 들이닥친 비보에 그녀가 망연자실해 있을 때,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그것밖에 없었다.
슬픈 일을 당했다고는 하나 그것도 엄연한 해외여행, 기념사진 한두 장쯤은 있어야 될 것 같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