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 월간 좋은수필 2018년 7월호, 신작수필26인선 I 여름이 춥다 : 김대규 선생님 가시던 날 - 김산옥
"어디선가 비둘기가 꺽꺽 운다. 마지막 가시는 길, 아지랑이가 피었고, 제비꽃이 피었고, 할미꽃이 피었다. 선생님이 그토록 애착을 가지시던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피었다. ‘저만치’에…. 흙의 시인, 위대한 시인, 김대규 시인은 그렇게 봄빛 속으로 떠나셨다. 선생님 가신 빈자리는 여름이 춥다."
여름이 춥다 - 김대규 선생님 가시던 날 / 김산옥
흰 국화 속에 둘러싸인 사진 속 선생님 모습은 평화로워 보인다. 예전과 다름없이 베이지색 바바리코트를 입고, 금방이라도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실 것만 같다. 사진 속에 입고 계신 옷은 이십 년 전에도 입으셨던 한결같은 옷이다.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나니 “너희들 왔구나” 하는 모습으로 바라보신다.
1995년 안양여성회관 창작반 교실에 첫 수업을 가던 날, 수업시간에 늦을까 봐 계단을 숨이 차도록 뛰어 올라갔다. 햇빛이 가득한 창가에서 베이지색 바바리코트를 입고 무심히 밖을 내다보는 중년신사를 만났다. 그분에게 창작반이 어디에 있느냐고 다짜고짜 물었다. 느닷없는 내 질문에 말없이 손으로 가르쳐 준 곳으로 들어갔다. 한참 후, 선생님이 들어오시는데 바로 그분이다. 희끗희끗한 단발머리가 귀 뒤로 살짝 걸리고, 무표정한 얼굴에는 문학의 향기가 물씬 풍겨났다. 그렇게 김대규 시인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시인이 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를 파악하신 선생님이 어느 날, “산옥이는 글로 보나 인간성으로 보나 시 보다는 수필을 쓰는 게 더 낫겠다”라고 하셨다. 그 이후로 망설임 없이 수필만 썼다. 선생님 말씀대로 나는 수필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1기에서 5기까지 함께 공부한 문우들이 「文香」이라는 동인을 결성하고, 이태쯤 지나서였을까. 우리는 스승의 날이라고 선생님께 빨강색 바탕에 흰색 체크무늬가 새겨진 남방셔츠와 벽돌색 바탕에 흰색 사선이 들어간 넥타이를 선물로 드렸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동안에도 선생님은 변함없이 그 넥타이를 하고 그 남방셔츠와 베이지색 바바리코트를 입으셨다. 그 외 다른 옷을 입은 모습을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내 기억에는 그렇다.
선생님은 병실에서 입고 있는 옷 그대로 주머니만 털어내고 입혀서 보내달라고 유언을 남기셨단다. 병실에서 입고 있던 옷이 빨강색 체크무늬 남방셔츠였다고, 병실에서 지켜본 분이 전해주었다.
우리는 밥상 앞에 마주 앉았다. 돌아보니 다들 우느라고 밥을 먹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육개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밥 한 그릇을 거뜬히 먹어치웠다. 꼭 그래야만 되는 것처럼 옆에 놓인 떡과 과일도 우걱우걱 먹었다. 몇날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달고 맛있게 먹었다. 선생님이 주신 마지막 밥상이기 때문이다.
동인들은 여전히 눈물바다다. 육개장이 아니라 눈물국이 되었다. 아직 이별 준비도 못 했는데 느닷없는 이별통고를 받고 황망히 앉아들 울고 있다. 누군가 톡 건들기만 해도 대성통곡이 터질 것 같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선생님 생전에 「문향」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마중물처럼 뜨거운 눈물을 끌어 올린다. 선생님께서 문향 동인에게 주신 사랑은 남달랐다.
「문향」은 선생님에겐 막내제자 동인이니 만큼 어여삐 여기시고 늘 방목해서 수업을 하셨다. 선생님 앞에서 실컷 떠들고 마음껏 토로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셨다. 그런 모습을 빙그레 지켜보다가 우리들 수다가 어느 정도 시들해질 즈음, “자, 이제 내가 마무리를 하마” 하시고는 문학에 대한 광범위한 수업을 시작하셨다. 이번에는 어떤 책을 읽었는데 이 대목이 마음에 와 닿더라 하시면서 사전에 읽고 오신 책 소개와 중요한 부분 부분을 일일이 우리의 마음속에 저장시켜 주셨다. 우리를 만나러 오시기 전에 선생님은 양식이 될 많은 책을 읽고 오신다. 그 지식을 우리에게 소화불량이 일지 않도록 꼭꼭 씹어서 먹여 주셨다. 선생님으로 인해 하이네(Heine, Heinrich.독일)를 알았고, 헤세(Hermann Hesse 독일)를 알았으며, 릴케(Reiner Maria Rilke 독일), 예이츠(Yeats, William Butler 아일랜드), 괴테(Goethe, J0hn Wolfangvon독일) … 김소월을 알았다.
선생님은 입버릇처럼 “좋은 책은 거듭 살기를 잘 해주는 것이다.”, “다 읽지 못한 책은 못 다한 삶이다. 살다가 그만 둔 것 같다. 다시 읽는 것은 다시 산다는 것이다.”, “스스로 깨우치지 못한 것은 사람에게서 배우고, 사람에게서 배우지 못한 것은 책에서 배운다.”고 말씀하셨다.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시詩고, 철학이고,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한 달에 한번 수업이지만 문학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선생님 영결식은 안양 아트센터 앞 광장에서 안양예술인장으로 치러졌다. 이른 아침, 시장님을 비롯하여 많은 문인들과 시민들, 기관단체, 선생님 제자들로 안양 아트센터 광장이 비좁다. 선생님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화장터로 떠나셨다.
선생님이 한줌의 재가 되어 선산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문인들은 서성인다. 아직은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결을 맞으며, 평소에 “나는 흙에서 태어났고, 흙에서 살았으며,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셨던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드리기 위해서다.
오늘따라 봄빛이 따사롭다. 바람결도 보드랍다. 아, 그러고 보니 하늘도 파랗다. 선생님 선산에는 묘지마다 할미꽃이 피어있다.
선생님 유언은, 화장하여 온 산에다 흙이 되게 훌훌 뿌려달라고 하셨지만, 가족의 애틋한 마음은 그럴 수가 없다. 일부는 부모님 봉분 위에다 뿌리고, 나머지는 종이에 싸서 나무상자에 넣고 아버지 묘 바로 아래에다 묻어 드렸다. 선생님 뜻대로 흙으로 돌아가셨다. 평생을 흙을 사랑하고 청렴한 시인으로 고향을 지키다 먼 길 돌아가셨다.
선생님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에 흙으로 돌아가셨으니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어디선가 비둘기가 꺽꺽 운다. 마지막 가시는 길, 아지랑이가 피었고, 제비꽃이 피었고, 할미꽃이 피었다. 선생님이 그토록 애착을 가지시던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피었다. ‘저만치’에…. 흙의 시인, 위대한 시인, 김대규 시인은 그렇게 봄빛 속으로 떠나셨다.
선생님 가신 빈자리는 여름이 춥다.
김산옥 님은 2005년 《현대수필로》 등단. 수필집: 『하얀 거짓말』, 『비밀 있어요』, 『왈왈』, 선집 『,를 찍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