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좋은수필/좋은수필 본문

『좋은수필』, 월간 좋은수필 2018년 7월호, 신작수필26인선 I 은평구에 대한 추억 - 하길남

신아미디어 2019. 2. 11. 11:13

"이렇게 시 한편을 읊으면서, 서울 은평구에 남긴 사연을 마무리하고자 하는데, 문득 성철스님의 오도송 중 몇 줄이 생각난다. “문득, 한번 웃고, 머리를 돌려보니, 청산은 예대로 흰 구름 속에 있네.” 그리고 나의 안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며 눈시울까지 붉혀주던 안과의사 선생님의 고마운 마음도 늘 가슴에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래, 은평구야, 잘 있거라!"

 

 

 

 

 

   은평구에 대한 추억        /    하길남

 

   이 제목으로 수필을 쓰려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우리 집 막내가 살던 곳이 서울 은평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내가 결혼을 하면서, 목동으로 이사를 한다는 것이 아닌가. 막내 집에 가끔 들리기도 했지만, 내가 서울 아산병원에서 위암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그곳에 얽힌 사연들이 깊을 뿐 아니라, 겨울이나 여름방학 등 학교를 쉬는 때는 예외 없이 서울 막내 집에 와서, 보내곤 했기 때문이다.
   혼자 살기 때문에, 단 한 끼라도 어머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이라도 해먹이고 싶다는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을 수 없어, 나는 늘 방학 때마다 서울 막내 집에 같이 가곤 했다. 막내 집에서 나는 아침마다 산책을 했다.
   매일 집 옆, 나무와 풀이 우거진 개울길을 운동 삼아 걸었다. 병원에서 매일 운동을 하라는 권고도 있었지만, 걷는 것이 오랜 습관이 된 탓이기도 했다. 또 하루에 세 번씩 집 옆에 설치된, 운동기구에서 운동도 했다. 등 허리 지압, 자전거 타기, 어깨근육 풀기, 좌우로 몸통 돌리기 등이 나의 중요 운동 종목이었다.
   산책을 할 때는, 길을 걷다가,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나폴레옹의 일화를 되새기면서, 내 병은 틀림없이 낫는다는 신념을 다지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집에는 그때, 뜯어온 네잎클로버 마흔 다섯개를, 그대로 코팅해서 간직하고 있다. 그 중에는 잎이 다섯 개 달린 것도 두 개나 있다.
   집사람이 장을 보러 연서시장에 갈 때는 심심해서 가끔 같이 가기도 했다. 거기에 가서, 한겨례신문과, 문화일보, 그리고 추억의 먹을거리인 옥수수 등을 사오곤 했다.
   한 번은 아들과 같이, 식사를 하러 가는데, 하늘에 벌겋게 노을이 타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평소처럼, ‘그렇다. 저 타오르는 해처럼, 나의 병은 틀림없이,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마음을 뜨겁게 감싸는 것이었다.
   은평구를 생각하면, 특별히 잊히지 않는 사연이 있다. 막내 녀석이 나와 제 어머니를 데리고 가서, 가끔 킹크랩과 진흙오리구이 등을 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야래향이라는 중국음식집도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서울에 있을 때, 주로 이 집에서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나와 집사람은 둘 다 식사량이 많지 않다. 그래서 무엇이든 한 사람 분만 시켜서, 둘이 같이 나누어 먹곤 했다. 그래도 사람 좋은 중국음식점 여자 주인은 늘 반갑게 맞아주면서, “식성과 식사량은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인데, 자주만 와주시면 그저 감사할 뿐이죠.” 하고 말하면서 늘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아주곤 했다.
   은평구는 새로 발전하는 도시답게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나는 아침만 먹고 나면 예외 없이 바로 집 앞에 있는, 스타벅스라는 커피숍에, 책을 갖고 가서 읽었다. 한 번은 거기서, 미국 여인을 만나 서로 담소를 나눈 일이 있다. 그 후 그녀와 나는 얼마간 거기서 만나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함께 보내곤 했다.
   그녀가 남긴 말 중에 잊히지 않는 것은,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것이다. 기도하는 마음, 그렇다. 그런 마음이라면, 어찌 괴로움인들 찾아들겠는가. 미국의 33대 대통령 트루먼 은 여섯 살 때, 첫눈에 반한 베스에게 무려 삼천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 기도하는 마음, 기도하는 삶이 바로, 자신을 행복에 이르게 하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바로 예술적인 삶, 바로 자신을 승화시키는 참된 삶이 될 것이다. 병에서 벗어나는 삶, 또한 기도하는 삶이라 하겠다.


추억의 서울시 은평구
나는 너와 눈 한번 맞추기 위해
이승에 왔다 간다.
백로 한 마리, 산수화를 그리고 있는
서울시 은평구에서
나는 너와 얼굴 한 번
마주치기 위해
일생을 살다 간다.


   이렇게 시 한편을 읊으면서, 서울 은평구에 남긴 사연을 마무리하고자 하는데, 문득 성철스님의 오도송 중 몇 줄이 생각난다. “문득, 한번 웃고, 머리를 돌려보니, 청산은 예대로 흰 구름 속에 있네.”
   그리고 나의 안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며 눈시울까지 붉혀주던 안과의사 선생님의 고마운 마음도 늘 가슴에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래, 은평구야, 잘 있거라!

 

 


하길남 님은 수필가, 시인, 문학평론가. 저서: 『수필문학 연구와 비평』, 『좋은 수필 쓰는 법』, 『비평언어와 사상의 유희』, 『닮고 싶은 유산』, 『그리운 이름으로』, 『수필문학 연구와 비평』 등 20여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