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 월간 좋은수필 2018년 7월호, 신작수필26인선 I 도서관글 읽고 한 숟가락 글을 쓰는 까닭 - 김용옥
"이런 책임감 없이 어찌 글을 쓰랴. 제 잘난 맛에 너스레 일상을 풀어내는 것은, 정말이지 문학이 아니다. 인생과 문자의 뼈대 없이 조사만 널려있는 글은 이미 문학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에게 반짝, 반짝, 경고등을 켠다."
도서관글 읽고 한 숟가락 글을 쓰는 까닭 / 김용옥
대부분의 현실적인 사람들처럼 시인도 짧다란 시 한 편을 얻기 위해 고심하고 좌절한다. 겨우 몇 분 만에 읽어버리거나 아무도 읽지않는 수필 한 편을 쓰기 위해 끙끙 씨름하기 일쑤다. 문인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현실을 사는 것일까?
나는 쓸 만한 글 한 편 건지기 위하여 지식과 인식을 표현하는 사유와 언어의 새로운 별세계를 확장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런 어느 때에 글로서 마광수를 만나고 윤재천을 만났다. 사유의 결과를 표현하는 방법과 개척하는 문학정신을 만난 것이다. 수없이 읽어댄 구태의연한 문법과 사색의 문학이 아니라 다양하게 발전 진보된 지성시대에 걸맞는 문학을 하고 싶어진 것이다. 나는 미래에 읽어도, 읽기에 알맞은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나의 시와 수필에선 구태의연한 음풍영월이나 사랑타령, 서정타령을 쓰고 싶지 않다. 그러니 갖가지 분야의 책들과 요지가지 전람회와 공연장을 들락거리고 또한 최고의 서적이며 최후의 스승인 자연 속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천태만상의 인생의 문을 아는 만큼 열 수 있고 열어보아야 제대로 사유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언젠가는 그림 같은 시를 쓰고 음악 같은 수필을 쓰고, 영혼과 지성의 좁은문을 열어주는 문학을 생산하고 싶어서였다. 문학의 현자에게 공감 받고 인정받고 싶은 건 한참 뒤의 일이다.
나의 문학적 수준이 높아졌는지, 독자의 수준이 어느 선에 있는지 같은 건 알 수도 없고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게다가 별로 대중적인 글재간을 부릴 줄도 모르고 그렇게 영합하고자 하지 않는다. 작가는 결국 창녀나 마찬가지로 자기를 파는 직업일 뿐이라고 폄하하기 싫어서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개성과 창의성을 빌어 취향대로 능력만큼 글을 짓는다. 그게 그거 같은 유행가를 부르는 게 아니라, 작곡가 아무개하면 명곡 000을 떠오르게 하는 것처럼 절창의 글을 창작하고 싶은 것이다. 욕심이 아니라 작가정신이며 소망일뿐이다.
혼자 일하는 것이 글쓰기다. 남을 가르치는 사람 중에 자기 학문을 깊이 천착한 사람이 드물다 했다. 나도 남을 가르치며 밥벌이 돈벌이를 하는 동안엔 초보적이고 기초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질 못했다고 할까. 그 일은 아무리 핑계를 대고 변명을 해도 소용없다. 돈을 얻기 위해서 나분대는 동안에 문학적 능력이 정체되고 분실되고 퇴화하고 있음을 자각해야 했다. 더 늙어서 어휘와 사유와 시간을 잃기 전에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벌었다. 문학은 외로움과 고독을 먹고 성장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사색할 시간이 길어지고 문학적 깊이와 너비를 확장할 능력이 많아지자 창의성이 신장되어갔다. 인생관과 종교관, 생사관의 뿌리를 손질하며 줄기를 꼿꼿하고 탄탄하게 세울 수 있었다. 이순을 지난 지혜와 도심道心을 느낀 것이다.
아직도 범람하는 시와 수필에 대해서 뭔가 진짜 문학적인 치아가 숭숭 빠지고 썩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범典範이나 고전古典에서처럼 인생의 철학, 문학의 미학, 사회역사의 사회성을 쓰고자 열망한다. 그러므로 나의 문학이 끊임없이 미래를 위해 변화발전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살아온 나이만큼 육신이 주름지고 늙어가듯이 문학정신에 골골이 깊은 물이 흐르고 완숙하기를 바란다. 현명한 독자 혹은 미래의 독자들이 나의 문학을 읽고 비판하길 바란다. 생각하는 도도한 깊이가 있는 글, 시간을 뛰어넘는 삶이 있는 글로 공감한다면 좋겠다.
이런 책임감 없이 어찌 글을 쓰랴. 제 잘난 맛에 너스레 일상을 풀어내는 것은, 정말이지 문학이 아니다. 인생과 문자의 뼈대 없이 조사만 널려있는 글은 이미 문학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에게 반짝, 반짝, 경고등을 켠다.
김용옥 님은 《시문학》 시 등단. 시집 『누구의 밥숟가락이냐』외 4권. 수필집: 『생각 한 잔 드시지요』와 6권. 수필선집:『찔레꽃 꽃그늘 속으로』, 『길 없는 길을 간다』, 화시집 『빛. 마하.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