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 월간 좋은수필 2018년 6월호, 신작수필23인선 I 정말 그랬을까 - 강향숙
"건물을 나오는 순간 기침이 딱 멈췄다. 내 기침은 정말 긴장감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사람의 마음까지 읽어내는 명의란 말인가. 내 처방은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는 것이다. 이것으로 모험은 끝이다."
정말 그랬을까 / 강향숙
병원을 다녀올 때마다 기분이 상했다. 처음 그곳을 찾은 것은 어머니의 어지럼증 때문이었다. 티브이에 명의로 출연한 그의 병원은 집 부근에 있었다. 유명세를 타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오랫동안 기다려서야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의사는 고개를 들지 않고 무덤덤한 목소리로 현재 상태와 복용하는 약을 물었다. 천식으로 종합병원을 다니며 흡입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불쑥 끼어들었다. 처방이 잘못되었다며 그것이 내 잘못인 양 화를 냈다. 전문용어를 사용해가며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병원을 나서며 다시는 오지 말자 다짐했다. 그런데 그는 실력자였다. 며칠씩 가던 어머니의 증상이 하루 만에 잡혔다. 때로는 내가 진료를 받을 때도 있었다. 그의 권위에 눌려 과장된 진료를 고분고분 받아들이는데도 갈 때마다 큰소리를 쳤다. 그는 한 번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사람들과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내게 그곳은 모험의 세계였다.
그도 오래가지 못했다. ‘떽떽거리기나 하지 그 전 병원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어머니의 거부로 발길을 끊었다. 진전 없이 끝난 관계에 아쉬움이 남았다.
딸아이가 감기에 걸렸다. 단골로 다니던 의원이 접수가 마감되어 허탕을 치고 돌아서며 그곳이 떠올랐다. 한쪽 귀와 코가 막혔으니 이비인후과로 가는 것이 빠를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서도 선뜻 내키지 않았다. 길 한가운데서 서성이다 다시 도전에 나섰다. 뜬금없이 마음이 향한 것이 호기심 때문인지, 아니면 묻어두었던 숙제를 풀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대기실에 들어서자 갑자기 기침이 났다. 한 번 시작된 기침은 그치지 않고 계속됐다. 다급한 상황에서 정신없이 뛰고 난 후 이런 증상을 경험한 적이 있다. 감기로 진료를 받으러 온 딸아이는 멀쩡하게 앉아있다.
오랜만에 간 병원은 분위기가 달라져 있다. 예전만큼 북적대지 않고, 여러 명이던 간호사도 한명 뿐이다. 벽면에 붙여진 여섯 개의 화면에는 그가 티브이에 출연했던 영상이 변함없이 돌아가고 있다.
아이를 앞세우고 진료실에 들어가니 대뜸 누가 환자냐고 묻는다. 멈추지 않은 기침에 나도 접수를 해 놓았으니 둘 다 환자인 셈이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그는 두꺼비처럼 불거진 눈으로 재촉하듯 쏘아보았다. 흰머리가 조금 났을 뿐 까칠한 말투나 행동은 예전 그대로다.
그는 차트를 보며 나에 대한 정보를 책 읽듯 읊어댔다. 십년 전에 다녀갔으며 그때 나눴던 말까지 확인시켜 주었다. 그밖에도 나에 관한 많은 기록이 저장되어 있다고 했다. 안에서 모니터로 지켜보니 기침을 계속한 사람은 어머니였으며 아이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아이가 밤새 고생했다는 말은 귓등으로 넘기고 엉뚱하게 나를 물고 늘어졌다.
멈추지 않은 기침은 혼자 떠난 여행에서 시작되었다. 지도로만 익혀왔던 스페인을 향해 가던 날이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은 여행객들은 경유지인 러시아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남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혼자라는 홀가분함도 잠시 불안감이 덮쳐왔다. 공항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탑승구를 확인하니 그사이 게이트가 바뀌어 있었다. 그 앞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시간이 되어도 직원이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다시 확인하니 그새 또 반대쪽으로 바뀌었단다. 현재 위치에서 최대한 달린다 해도 간당간당한 시간이다.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무작정 뛰었다. 재촉에 저항하듯 다리가 뒤틀렸다. 입을 크게 벌리고 서 있는 거대한 동체 앞에 선 순간 기침이 터져 나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기침은 갑자기 나온 거예요.”
“환자분은 ‘갑자기’라는 말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군요. 나도 그 말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
빠르게 웅얼거리는 뒷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에게 또 걸려들고 말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보세요. 환자분이 얼마나 긴장을 했으면 멈출 수 없게 기침이 나왔겠어요. 계속 기침을 해대는 것을 내가 다 지켜보았어요.”
그는 확신하듯 단호히 말했다.
“다른 곳은 아프지 않아요. 침을 잘못 삼켰을 뿐이에요.”
“이대로 두면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구요.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고 관리를 해야 합니다. 또 질문할 것은요?”
“선생님은 항상 환자에게 취조하듯 그렇게 말씀하시나요?”
제 말만 하고 귀를 닫아버리는 권위적인 그와, 그것을 못견뎌하는 뒤틀린 내 심사가 날카롭게 부딪혔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약국을 들어서며 “아니, 저 선생님은 원래 저러세요?”라는 날선 내 질문에 약사는 알 듯 모를 듯 묘한 미소만 지었다.
건물을 나오는 순간 기침이 딱 멈췄다. 내 기침은 정말 긴장감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사람의 마음까지 읽어내는 명의란 말인가. 내 처방은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는 것이다. 이것으로 모험은 끝이다.
강향숙 님은 《수필과 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