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 2019년 1월호[제207호]의 신인상 당선작가분들을 소개합니다.
수필과 비평』 2019년 1월호[제207호]의 신인상 당선작가분들을 소개합니다. 좋은 씨앗을 많이 뿌리는 농부로 성장하시기를 기대합니다.
≪수필과비평≫은 작품수준, 신인다운 치열한 작가정신, 앞으로 창작활동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작품을 신중하게 검토하여 다음과 같이 신인상 당선작을 결정하였습니다.
심사위원 | 허상문, 강돈묵, 유인실
| 고용석 <단풍의 사색>
| 김근우 <빈손>
| 김순옥 <아버지, 그 삶의 무게>
| 이형숙 <비나리>
신인상 심사평
고용석 - <단풍의 사색>
수필은 사색의 광장이다. 한 편의 수필에는 글쓴이의 삶에 대한 통찰과 세상에 대한 사색이 깃들게 된다. 작은 사물을 통해서도 작가는 그것을 형상화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나름대로의 감정과 정서를 독자에게 전달하여야 한다. 작가가 느낀 사색의 진폭이 클수록 독자들이 느끼는 감동도 크다.
고용석의 <단풍의 사색>은 늦가을 주말 오후에 찾은 생태숲에서 바라본 낙엽에 대한 사색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바람이 낙엽을 길 위로 몰아세우고, 한 생애를 품은 붉은 단풍이 어지러이 날리는 쓸쓸한 가을의 풍경은 작가를 그늘진 사색의 뜰로 이끌어 간다.
낙엽은 작가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어느새 자신에게 다가온 이순耳順이라는 나이, 지나간 회한의 시간은 철학적·시적으로 승화되어 한 편의 수필로 이루어진다. <단풍의 사색>에서 또 하나 주목할 사실은 사물에 대한 작가의 묘사 능력이다. 일반적인 수필이 진술을 위한 서술에 그치고 있다면, 이 작품은 서술보다는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 이런 노력은 시적이고 서정적인 수필의 새 단계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앞으로 더욱 깊은 사색을 이룬 작품으로 좋은 작가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근우 - <빈손>
김근우의 <빈손>은 집안 어른의 죽음 앞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글이다. 떠나는 사촌형의 염습을 지켜보며 그의 일생을 헤아려 본다. 대소사를 다 챙기는 집안의 큰어른이면서도 주위에 전혀 누를 끼치지 않고 살다 가신 분, 오로지 베풀기만 하고 대가도 물리치신 분, 그분이 떠날 때는 수의 한벌에 빈손뿐이다. 시신을 덮은 홑이불 사이로 내민 꼬부라진 발가락과 두꺼운 발톱을 바라보며 녹록지 않았던 삶을 유추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그린다. 인간의 삶이 수백 년을 살 것 같은 어리석음으로 만든 짐인데, 그것도 모르고 늘 집착하고 갖가지 울타리를 쳐놓고 그 안에 갇혀 자책하거나 비난하며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마침내는 그 짐을 내려놓고자 한다. 화자는 혼란스러운 도로 위에서 짐을 내려놓고 유연해지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내려놓는다는 것은 포기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속박하는 짐을 줄이는 일이라고 다짐한다.
신인 작품으로는 힘에 겨운 주제에 도전하는 패기가 가상하다. 앞으로 깊이 있는 글을 기대한다. 정진을 주문한다.
김순옥 - <아버지, 그 삶의 무게>
이 글은 단순히 기구한 아버지의 한 생애만이 아닌, 한국동란 이후의 우리의 힘들었던 삶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는 한국동란을 겪으면서 이산가족이 되거나 혹은 가난으로 인해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화자는 그런 삶을 사셨던 아버지의 신산했던 삶을 지켜보면서 그 삶의 무게를 회억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넋두리가 되어 나오는 중얼거림과, 북의 가족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을 찾지 않을까 싶어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서 아버지의 삶의 무게를 짐작해 볼 뿐, 이 글의 화자는 현실에 울분을 터트리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오히려 절제된 진술을 통해 독자들을 아버지의 슬픔에, 역사적 아픔에 동참하게 한다. 우리 민족의 아픔이기도 한 아버지의 한스런 삶을 직정적 태도와 화법을 늦추지 않으면서 그려내는 묘사적 기법에 신뢰가 간다. 화자의 녹록지 않은 마음의 경지가 느껴진다. 흔쾌히 선에 넣는다.
이형숙 - <비나리>
<비나리>는 ‘살풀이춤과’ 엄마의 ‘비나리’의 이미지를 병치시켜 인간의 슬픔과 번뇌가 어떻게 화해하고 승화되는지를 보여주는 글이다. 세상의 번뇌와 슬픔을 춤으로 승화시키려는, 인간의 숭고한 아름다움이 표현된 살풀이춤을 보면서 어린 시절 아버지의 건강의 위해 무당 앞에서 비나리를 하는 어머니의 슬프고도 애달픈 몸짓과 교차시켜 지극한 경지를 그려 나가는 힘이 돋보인다. 신 앞에 인간은 비록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이지만 신을 향해 인간의 슬픔과 번뇌가 승화되는 과정은 아름답다. 유년 시절 경험한 엄마의 비나리의 프리즘을 통과해온 인간의 개개인의 버거웠던 슬픔과 번뇌가 화자의 삶의 의식에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매력적으로 보여준다. ‘서사적인 것’과 ‘묘사적인 것’의 절묘한 결합으로 전개되는 서사가 묵직한 여운을 준다. 비선형적으로 흐르면서 ‘정중동’의 역동적인 선율을 제공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메시지 전달을 극대화하는 플롯을 설정함으로써 수필의 참신함과 성실함이 돋보인다. 앞으로 기대되는 바가 크다. 등단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