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수필과비평』[2018년 11월호, 통권205호 I 세상 마주보기] 달구질 - 이태선
“지난 설날에는 시어머님과 시숙모님이 나란히 누워 시집 살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가 눈물을 닦아내더니 올 설에는 저승에서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아니, 서로 만나기나 했을까."
달구질 - 이태선
시숙모님을 산으로 모시는 날이었다. 초겨울 바람은 소나무 숲을 흔들어 괴기스러운 소리를 내고 달구질은 처량했다.
“휘익, 쏴아쏴아”
“어 야 어허 야 아 야.”
“지금 가면 언제 오나.”
숙모님은 나보다 한 살 위였다. 나는 초례청에서 시조부내외와 홀시어머님께 큰절을 올리고 위패로 모신 시아버님께도 큰절을 올렸다. 집안 어른들께도 큰절을 올리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을 때 주위에서는 숙모님도 절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숙모님은 절을 받지 않았다.
숙모님은 그때 다섯 살짜리 사내아이를 둔 엄마였다. 순박하고 활달하고 붙임성이 있었으며 건강했고 힘도 셌다. 어른들의 눈에 딱 드는 참한 며느리였지만 정작 지아비의 눈에는 들지를 못했다.
시삼촌은 군 복무 중일 때 집에서 보낸 “아버지 위독”이란 전보를 받고 달려왔고 시조부님은 숙모님과 강제로 결혼을 시켰다고 했다. 시삼촌은 음독이란 극단의 수단으로 저항했지만 관습과 효도라는 명제 앞에 더는 버티지 못했다고 했다.
시삼촌은 가장 치사하고 치졸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조부님과 맞섰다. 숙모님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당신들의 마음에 쏙 들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고 애잔하기까지 한 며느리의 고통은 조부님에게는 아킬레스건이고 시삼촌은 동물적 희열을 즐기는 것 같았다.
일을 저지르면 시조부님 등 뒤에다 몸을 숨겼다. 자신의 불행은 아버지 때문이니 해결해 내라고 넉장거리를 쳤다. 그런 일들이 거듭되면서 습관으로 굳어졌고 돈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기웃거렸다. 노름판과 마작판을 전전했다. 그런 와중에도 삼거리 어디에서 살림을 따로 차렸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다.
한번 집을 나가면 몇 년간 소식 없이 지내기도 했지만 계절풍처럼 돌아왔다. 그런 후면 숙모님의 배가 불러왔다.
저녁 답이었다. 물김치가 맛이 들었기에 한 양푼 퍼 갔더니 숙모님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인기척에 나오며 머리에 쓴 수건을 벗어 몸을 터는 척 부른 배를 가리며 흰죽보다 더 멀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팔자하고는….”
어둠살이 내려앉는 사립을 바라보는 눈에는 아궁이에서 나오는 불빛이 얼비춰져 핏빛으로 어룽거려 처연했다.
시삼촌은 점점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친척집을 전전하며 숙식을 해결했으나 삼 형제는 숙모님의 독려로 공부를 잘했다. 대신 숙모님의 심신은 피폐해져 병이 들었다.
숙모님은 자궁암 말기 진단을 받았고 의사는 석 달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숙모님을 버티게 했다. 아들 셋을 두고 죽을 수는 없었다. 눈을 부릅뜨고 입을 앙다물고 몸을 꼿꼿이 세워 운명과 맞섰다. 여자는 약하다지만 엄마는 강했다. 모심기 철이면 모판에서 갓 찐 모를 지게에 얹어지고 가는 숙모님의 치마 밑으로 황토 빛 흙물이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계절이 바뀔 때면 더 허망해하던 숙모는 맏이를 장가들이고는 생의 기운이다 소진됐는지 된서리 맞은 호박처럼 주저앉고는 다시는 일어나질 못했다.
시삼촌은 상복 입기를 거부했다. 자식들에게는 장례의 예를 다하라고 다그치면서도 정작 본인은 상복을 입으려 하지 않았다. 봉분은 높아가고 달구질소리는 이승의 문을 닫고 저승의 문을 여는지 더욱 구슬퍼졌다.
“이 산소를 잡을 적에.”
“에이허리 달궁.”
“어느 누가 잡으셨나.”
“에이허리 달궁,”
“김 지관이 잡으실 때.”
나는 상복을 들고 쪼그려 앉아 줄담배를 피우고 있는 시삼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상복을 내밀며 말했다.
“입으시지요. 이제 마지막 잔을 올리면 이생에서의 인연은 끝입니다. 한번쯤은 지아비가 되어 주셔야 하지 않겠는지요.”
부스스 일어나 팔을 내미는 시삼촌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어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어쩌면 시삼촌도 여느 지아비들처럼 상복을 입고 지어미를 떠나보내는 의식을 치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나는.
짧은 초겨울 해는 산을 넘어가고 달구질도 멎었다. 산소는 숙모님의 고된 삶에 보답이라도 하듯 높았고 돌아가면서 마지막 잔을 올렸다. 잔을 올리는데 손이 수전증 들린 사람처럼 떨렸고 일어서는데 다리가 휘청 앞으로 꺾였다.
‘요만큼 살다 갈 거면서….’
지난 설날에는 시어머님과 시숙모님이 나란히 누워 시집 살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가 눈물을 닦아내더니 올 설에는 저승에서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아니, 서로 만나기나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