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수필과비평』[2018년 11월호, 통권205호 I 세상 마주보기] 살신자애殺身慈愛 - 백남일
“거미만도 못한 모정이야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딱샛과의 나이팅게일이 어린 새끼가 보이지 않을 때에만 울고 있다는 사실을 짚어볼 일이다."
살신자애殺身慈愛 - 백남일
“애 앵―!”
어둠을 찢는 모깃소리에 소름이 쭉 끼쳤다. 스르르 몰려오던 잠이 일순 천 리 밖으로 돛단다. 방충망 어딘가를 비집고 고놈이 또 침투한 모양이다.
집사람의 코골이는 태평성대라도 구가하는지 아리랑고개를 휘돌아 넘나든다. 한데, 종아리에 꽈리마냥 부르튼 모기 물린 자리가 왜 이리도 욱신거린단 말인가.
단것을 탐하는 소음인少陰人 체질 때문인가. 모기는 유난히 물것을 타는 내 살갗에만 삼지창三枝槍을 꽂아댔다. 한두 방울의 피쯤이야 미물에게 적선한들 뭐 그리 대수이랴. 하나, 문제는 흡혈 시 혈액이 응고되지 못하도록 타액을 주입하고 있는데, 이것이 가려움증과 각종 종양의 원인이 된다는 끔직한 사실이다.
처서處暑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데, 금년은 지구 온난화 탓인지 이미 가을로 접어들었는데도 모기떼가 극성이다. 돌이켜보면 자연 이변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달포 전에 뜰의 화단을 정리하면서 집안 구석구석에 늘어져 있는 거미줄을 모조리 걷어냈었다. 그 결과 감나무는 개운하다는 듯 싱그럽게 속잎 피워냈으나, 그러나 해만 지면 어디에 잠복했다가 출몰하는지 모기떼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마치 물풀을 걷어낸 개울로 송사리떼 몰려오듯 말이다.
거미는 어부가 그물을 쳐 물고기를 잡듯, 허공에 거미줄을 늘여 곤충을 사냥한다. 점성이 강한 이 거미줄은 글리콜과 알라린이 주성분이라고 하는데,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800여 개의 가느다란 가닥이 꼬여서 마치 동아줄을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 거미줄이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실보다 10배나 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담홍색으로 물든 서녘 하늘을 배경으로 은실을 토해 꾸며내는 설치예술의 달인達人! 그렇다. 거미는 목수가 집을 지을 때 도리 위에 대들보를 걸듯, 실을 잡고 번지 점프로 나뭇가지에 중심축을 잡아맸다. 이어 자전거 바퀴살 모양의 골격을 설계도나 권척卷尺도 없이 기하학적으로 배치했다. 그리고 그 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동심원의 궁전을 짓는 솜씨가 가히 도목수의 경지를 능가했다.
거미는 새집을 지을 때 발끝에 걸리는 묵은 줄은 가차 없이 먹어치웠다. 대량 소비의 후유증으로 양산되는 쓰레기의 범람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대인에게 귀감이 아닐 수 없다.
내 초등학교 시절에는 쥐꼬리를 잘라 담임선생님께 제출해야만 했다. 보릿고개의 가파른 언덕을 넘어야 했던, 춘궁기가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던 시절의 이야기다. 겉보리마저 들끓는 쥐떼가 먹어치우니, 우리의 양식을 지키기 위한 사생결단의 한 방편이었다. 오죽했으면 정부에선 매월 ‘쥐 잡는 날’을 정해 놓고 ‘서생원 소탕작전’을 전개시켰을까.
문제는 쥐약의 폐해였다. 극약을 먹고 비실대는 쥐를 천적인 고양이가 얼씨구나 하고 잡아먹었으니, 쥐가 아닌 고양이의 씨가 마를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약육강식에서 오는 적자생존의 연결고리가 와해됨으로 해서, 생태계의 개체수가 불균형을 이루는 혼란을 초치招致한 결과가 됐다.
우리 주변엔 수없이 많은 곤충들이 우리와 더불어 공생하고 있다. 개중에는 해충이 있는가 하면, 인간생활에 도움을 주는 익충益蟲도 있다. 후자에 속하는 꿀벌과 같은 곤충은 우리에게 달콤한 봉밀蜂蜜을 선사하며, 절족동물에 속하는 거미는 해충을 잡아먹어 간접적으로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특히 보랏빛 점무늬가 있는 염낭거미는 둥근 통꼴의 집을 짓고 알을 낳는데, 여기서 부화한 새끼들이 어미의 살을 파먹고 자라도록 기꺼이 몸을 내맡긴다. 그런데 작년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의하면, 한 해 동안 부모로부터 버림받는 아이가 물경勿驚 9,000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거미만도 못한 모정이야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딱샛과의 나이팅게일이 어린 새끼가 보이지 않을 때에만 울고 있다는 사실을 짚어볼 일이다.